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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이 둘인데 큰딸은 경화(京和), 작은딸은 현우(玄愚)다. 큰딸은 첫 손녀라고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오천 원짜리 이름이다. 길거리에서 '좋은 이름 짓는 법'이라는 책을 오천 원 주고 사서 반나절 만에 지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뒤로 큰딸은 "내 이름은 오천 원짜리"라며 시큰둥했다.

둘째딸의 어렸을 때 모습
▲ 둘째딸 조현우(玄愚) 둘째딸의 어렸을 때 모습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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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후, 둘째딸을 낳았는데 "이름은 어떻게 할까요?" 했더니 "네 마음대로 해라" 하시고는 끝이었다. 평소 공부해오던 노자 도덕경에 관한 책을 수십 권 꺼내놓고 보름 동안 꼼꼼이 살펴보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 과감하게 어리석을 우(愚)자를 넣어서 현우(玄愚)라고 지었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 큰딸은 '유라'로 개명을 했고 작은딸은 자기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작은딸이 고등학교 입학을 했는데 마침 담임 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었다. 이름의 한문에 '어리석을 우(愚)'가 뜻밖이었는지 아버지에게 왜 이름을 이렇게 지었느냐 물어서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아래는 그 답신으로 내가 보낸 것이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자식을 맡긴 부모로서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아이의 숙제도 할겸 이렇게 글로서 먼저 찾아뵙습니다. 아이의 이름이 궁금하셨군요? 우선 제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짐작하셨겠지만 선생님의 짐작 그대입니다. 현(玄)이라는 한자는 검다, 검붉다, 오묘하다, 심오하다, 신묘하다, 깊다, 고요하다, 멀다, 아득하다, 통달하다, 등등 현지우현(玄之又玄)의 오묘(奧妙)하고 또 오묘(奧妙)하다는 뜻으로, 도(道)의 광대(廣大) 무변함을 찬탄(讚歎)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단순하게 크다, 넓다, 많다, 신기하다, 라는 글자의 뜻과는 차원을 달리 합니다. 현(玄)이라는 글자 하나에 동양의 수많은 사상과 철학이 내포되어있는 것이지요.

조현우(玄愚), 왜 사랑하는 딸의 이름 속에 어리석을 우(愚)자를 집어넣었을까? 흔한 말로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짜로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게 보이는 법이지요. 세상을 남보다 앞서보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여도 현명하고 사람답게 살라는 아버지의 뜻을 이름 속에 감추어 놓은 셈입니다. 조현우(玄愚)라는 이름만 보면 아버지인 제가 딸에게 커다란 욕심을 부리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딸에게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고 살아갈 것이냐에 대한 방향을 일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가 딸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재주가 없거들랑 정직하거나 순수하기라도 해라."

순수하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요, 정직하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사회의 자율적 행위에 대한 규범의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이 너무 영악하고 그악스럽게 살면 이웃이 없는 법이지요. 남들 보기에 조금은 바보 같아도 세상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빈 바구니 같은 자식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마음입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요.

담임 선생님이 내준 숙제는 아버지인 내 몫이었고 숙제를 잘 했는지 어쨌는지 작은딸은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고등학교 3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 덕분에 아버지인 나도 작은딸의 학교에서 몇 달 동안 강의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 일로 작은딸은 학교에서 이름을 드날렸고 지금도 작은딸이나 친구들은 현우(玄愚)라는 이름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름인 줄 안다.

작은딸 친구들 중에 시집가서 아기를 낳으면 아기 이름은 꼭 내가 지어줘야한다며 이름 짓는 일 두 개가 예약되어 있다. 저희들 아버지가 있고 할아버지가 있는데 친구 아버지인 내가 왜? 그저 부르기 쉽고 예쁜 이름이면 되지! 시인 이수종 선생의 이름에 관한 재미있는 시 한 편 보탠다.

김 말자 올림

이수종

아버님,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놀림을 들으며 원망한 적도 있었어요
끝순이 막내라고 너무 가볍게
지은 이름 같아서


어찌어찌해서 김밥집을 내고 보니
문전성시 이름값 톡톡히 잘 돼요
김밥집 차릴 운명인 걸
미리 아신 아버님 예지에
감탄하고 고마워하고 있어요


아버지 김밥 잘 말게요
김 말자 힘낼게요



태그:#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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