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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종일 내리는 5월 12일(토) 골목 쉼터에 동네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비가 오는데 노래잔치를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 출연자들은 소나기가 퍼부어도 해야만 하는 그 열정이 골목으로 차고 넘쳤다.

강약이 잘 조절된 시를 낭송하는 출연자. 시에 집중하는 출연자와 관객들이 한호흡을 하고 있는 것 처럼 시선이 집중된다.
▲ '나비날개'같은 옷을 입고 장문의 긴 시를 낭송하는 출연자 강약이 잘 조절된 시를 낭송하는 출연자. 시에 집중하는 출연자와 관객들이 한호흡을 하고 있는 것 처럼 시선이 집중된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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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가 있는 골목에 빼곡하게 의자를 줄지어 놓았다. 앞쪽으로 자리잡은 분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연분홍 나비날개 같은 한복을 차려입고 메모지를 계속 보고 있는 여성, 베레모에 분홍빛 체크 옷을 입은 아저씨, 정성들여 드라이어를 한 아주머니 등이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따금 다음달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겨냥하고  주민들이 모인 곳에 온 이들도 보인다.

7기 입주작가들의 이름이 보인다.
▲ 소제창작촌 7기 입주작가들의 이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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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목을 들어서면 입주작가들의 창작공간을 만날 수 있다.
▲ 입주작가들의 창작공간을 들어서는 골목길 이 골목을 들어서면 입주작가들의 창작공간을 만날 수 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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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대전출생으로 '복도'라는 시로 등단.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 작가지만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부채감이 있다고. 글 쓰는 입주작가 세 명중에 먼저 등단했다고 한다.
▲ 2018년 동아일보에 시로 등단한 변선우 작가(모자쓴 이) 1993년 대전출생으로 '복도'라는 시로 등단.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 작가지만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부채감이 있다고. 글 쓰는 입주작가 세 명중에 먼저 등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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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공간에서 입주작가들과 기념으로 컷!
▲ 입주작가들과 기념 단체사진 창작공간에서 입주작가들과 기념으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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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 동광장에서 가까운 대전 동구 소제동 시울마을, 소제창작촌에서 주관하고 대전광역시와 대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시울골목마을축제'는 현재 소제창작촌 7기로 입주한 작가들이 '오픈 아틀리에'로 작업공간을 공개한다. 주민노래잔치를 시작하기 직전, 사람들은 축제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작가들의 작업실을 둘러보고 궁금한 것들을 묻기도 했다.

작업실로 들어간 집의 마당 한켠에는 작가의 글과 그림이 전시된 책과 사진으로 나온 스티커 등이 진열되었다. 책은 정가의 50%에 구입할 수 있다. 작업실공간은 다소 옹색하긴 하지만 그림과 글쓰기 등, 예술인들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학원재학중인 변선우 작가는 2018년 한국일보에 시로 등단했다. 회화와 문학 관련의 변선우, 이지원, 박상우, 조아라, 원동민씨 등이 축제참여 작가들이다.

        입주작가 공간을 들러 보고 나오는 길에 담 위에서 내려다 보는 멍멍이 두 마리가 순한 눈빛으로 궁금해한다.
▲ 어디서왔슈? 궁금하네! 입주작가 공간을 들러 보고 나오는 길에 담 위에서 내려다 보는 멍멍이 두 마리가 순한 눈빛으로 궁금해한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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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 시울마을의 골목은 여러 갈래로 나 있어 미로를 걷는 것 같다. 방향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한눈이라도 팔면 왔던 길을 다시 걷게 된다. 올망졸망 동네의 골목길은 길과 길이 마치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다.

이곳은 우리 부모님 세대가 각자의 도시 생활을 시작하고 애환을 쌓아온 그런 생존과 눈물이 서린 곳이다. 백년우물터가 있었다는 쉼터 근처에는 몇 개의 시들이 보인다. 손으로 직접 쓴 글들은 비처럼 눈물처럼 애틋하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한쪽에선 노래잔치가 벌어지고 어떤 이는 시를 읽으며 그 안에서 자신과 만나리라.

시 '어떤 새벽' 이 놓인 골목
▲ 골목길에 놓인 시 시 '어떤 새벽' 이 놓인 골목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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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냐는 듯/비 내린다//가로등이 오랜만에/ 머리칼을 자르고 있다//백합나무가 온몸으로/도리질을 견뎌내고 있다//흙과 재회하는 낙엽들이 눈 감고 있다/발자국이 진흙탕에 안기고 있다/부드럽게//끝과 끝이 만나/끝내 끝을 참아야했던 눈물들이/마음껏 태어나고 있다//잊었냐는 듯/정말 잊었냐는 듯" (어떤 새벽, 이근희)


점잖게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신명나게 '아파트'를 부른다. 오동나무 바지랑대를 받쳐놓은 천막아래 비를 피해 모인 주민들.
▲ 시울마을 노래자랑 점잖게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신명나게 '아파트'를 부른다. 오동나무 바지랑대를 받쳐놓은 천막아래 비를 피해 모인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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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구멍가게에서 비를 피해 노래를 듣는 주민들.
▲ 골목마을축제 동네 구멍가게에서 비를 피해 노래를 듣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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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응원나왔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아파트'를 불렀어요.
▲ 누구 손녀일까요? 할아버지 응원나왔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아파트'를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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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레모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며 중간에 베레모를 확 벗었다 다시 썼다. 사람들이 와~ 하고 웃는다. 모자를 썼을 때와 벗었을 때의 간격은 엄청났다.
▲ 주민노래한마당의 가왕 베레모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며 중간에 베레모를 확 벗었다 다시 썼다. 사람들이 와~ 하고 웃는다. 모자를 썼을 때와 벗었을 때의 간격은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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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분위기를 달구듯 참가자 중 한 분이 색소폰을 부른다. 노래잔치의 첫 출연자는 '나비날개'같은 한복차림의 여성이 다소곳하지만 결의에 찬 목소리로 시낭송을 한다.

이어 상큼 발랄한 처자가 '사랑의 밧데리'를 부르면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베레모의 아저씨가 무대에 올랐다. 무대매너는 이미 아마추어를 벗어난 듯 아주 매끄럽게 관람객들을 향해 '놀새'의 티를 낸다. 노래 중간에도 말을 하는 놀새 아저씨 노래가 끝나자 박수소리는 두 배로 커졌다.

'엄지엄지척 엄지엄지척 엄지척~' 율동을 곁들인 '엄지척'을 부르며 앉았다 일어서는 출연자. 노래가 끝나자 엄지손을 추켜올리던 그녀가 새된 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케이비에스 리포터 박소현입니다. 오늘 노래자랑은 제 1티브이로 16일(수)에 방영될 거예요. 많이 봐주세요~."

앞줄에서 점잖게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이름이 불러지자 용수철처럼 일어났다. 드디어 무대 위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할아버지는 어디서 그렇게 힘이 솟는지 윤수일의 '아파트'를 맛깔나게 불러 앙코르를 받았다. '화장을 지우는 여자'로 다른 곳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예순여덟의 아저씨는 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이며 어린아이같이 활짝 웃는다.

'화장을 지우는 여자'를 구성지게 불렀던 출연자. 노래가사를 적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노래자랑이 열리는 곳이면 자주 다닌다고 한다.
▲ 노래가 있는 곳에 즐거움과 기쁨이 함께 해요. 밝은 표정의 출연자 '화장을 지우는 여자'를 구성지게 불렀던 출연자. 노래가사를 적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노래자랑이 열리는 곳이면 자주 다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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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가 대상 탈 때 사진이여~, 그리고 이거 봐. 나 가사 안 잊어버릴려구 이렇게 갖고 다녀. 흐흐흐..."

즉석에서 나와 이 마을 아무개 누구의 손녀딸이라고 소개한 앳된 처자는 '쓰러집니다'라는 노래로 관중들을 쓰러뜨렸다가 일으켜 세우며 감칠맛을 더했다. 노래자랑 중간에는 심사위원의 한 마디가 이어졌다.

"모두 어떻게 그리 노래들을 잘하시는 지 심사를 맡은 제가 고민이 많습니다."

심사위원은 시울마을의 통장과 노래자랑강사, 또 대전 문화유산 '울림'의 대표 안여종씨 세 사람이다.

비 오는 날, 마을잔치 천막을 지탱해 주는 오동나무 바지랑대가 눈에 띈다. 늘어진 빨랫줄 가운데를 높여 바삭한 바람이 더 잘 드나들게 해주는 바지랑대처럼 시울마을의 일상에 즐거움의 에너지로 환기가 되는 노래잔치. 마을은 한동안 동네의 늘어진 전깃줄처럼 노랫말이 출렁일 것 같다. 노래를 듣는 순간, 노래 속에 묻혀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없던 축제.

지역에서 가장 낙후되어 현재 개발과 보존의 조율이 필요한 시점에 있는 대전 동구 소제동 일부는 재개발로 분류가 된 상태이다. 젊은 예술인들의 창작과 전시공간인 '소제창작촌'은 주민들과 소통하는 작업을 통해 지역 공동체문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동네는 다르지만 내 유년을 보낸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울마을의 축제에는 추억의 눈물샘을 건드려 눈시울을 붉게 하는 그 뭔가가 있다. 마을잔치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흥겨움'이 마을을 적실 때 주민들 모두가 진정 예술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태그:#시울마을, #소제동, #소제창작촌, #입주작가, #노래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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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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