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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 나오고 거래를 하는 몇몇 곳의 서점에 책을 팔러 다녔다. 1인출판사를 운영하는 내가 유일하게 하는 영업 행위. 신간이 나오면 서점 MD들을 만나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 MD는 책을 파는 사람들이니 잘 팔아달라고 부탁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교보 부천점
 교보 부천점
ⓒ 강아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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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책 <고통받은 동물들의 평생 안식처 동물보호구역>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이 극심해서 구조했지만 야생에 방사하거나 개인에게 맡길 수 없는 동물들을 평생 돌보는 동물보호구역에 관한 책이다. 동물보호구역(sanctuary)이 한국에 한 곳도 없고 개념도 생소하다보니 제목이 구구절절 길어졌는데 역시나 MD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동물보호구역. 이게 뭔가요? (설명을 듣고) 아, 그렇군요. 네에~"

이게 끝. MD도 관심이 없으니 이걸 독자들에게 어떻게 파나... 난감해 하며 서점을 돌고 있는데 전 주에 만났던 대형서점 MD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서점에서 한 달 동안 20여 권의 작은 출판사의 책을 선정해서 진열하는데 우리 책이 선정이 됐단다.

일명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있는 책'. 시끄러운 지하철 역에서 전화를 받아서 전해 듣고도 이게 실화냐 했다. 5월 15일부터 6월 14일까지 한 달간 대형서점 각 매장에서 진열을 한다고. ​히야~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1인출판사이니 작은 출판사는 맞는데 순식간에 '강한' 출판사가 되는 순간이군.

요즘 오프라인 서점에 가보면 신간 매대를 제외하고 어느 곳이나 책을 진열한 매대는 다 광고비를 내야 한다. 온라인 서점도 마찬가지여서 이런저런 추천책을 메인에 띄우지만 그것 또한 다 광고비가 들어간다.

우리 출판사 또한 책을 알려야 하니 종종 기획전에 돈을 내고 참가하지만, 책 한 권 당 참가비가 비싼 기획전은 아예 참가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작은 출판사의 책을 알리기는 점점 어렵다. 요즘 출판계에서는 '발견성'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작은 출판사의 책은 큰 출판사에 비해서 독자에게 발견될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전국의 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형서점 광화문점,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
 대형서점 광화문점,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
ⓒ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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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무료로, 그것도 대형서점에서, 좋은 취지의 기획 매대에 진열이 된다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광화문점에 가서 우리 책이 진열된 모습을 찍은 사진과 함께 출판사 블로그와 SNS에 이 소식을 알렸다(작은 출판사의 책을 응원하는 의미로 진열된 책을 몇 권 샀다).​

글 말미에 장난삼아 근처 매장에 가서 신간이 진열된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전국의 매장으로 달려가서 신간이 진열된 모습을 보고 싶지만 나는 또 그새 다음 책 마감을 위해서 모니터 앞에 앉은 터라 불가능했다. 그런데 글을 올리자마자 나만큼 기뻐하며 동네 매장으로 나가보겠다는 독자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전국 매장 소식이 속속 도착했다.

가장 먼저 천안점에 간 독자는 매장이 리뉴얼 중이라서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왔다. 나보다 더 슬퍼하셔서 죄송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슬픈 소식. 인천점을 찾은 독자는 '작고 강한 작은 출판사의 색깔있는 책' 매대는 있는데 우리 책만 없다는 소식이었다.

같은 독자가 다른 대형 서점의 인천점도 들러서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우리 출판사의 책 <후쿠시마의 남겨진 동물들>, <야생동물병원24시>, <토끼>가 농업 분야 서가에 꽂혀 있었다. 영업자가 없으면 책 진열이 이 모양이 되는 거구나. 처음 알았다.

​다음날 아침, 첫 낭보가 울렸다. ​전날 낭패를 본 인천점에 개장과 함께 우리 책이 진열된 것. 심지어 서 있다. 자랑스러워라~~~ ​전날 낭패를 보고도 아침 일찍 찾아준 독자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대형서점 인천점
 대형서점 인천점
ⓒ 토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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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강남점을 찾은 독자가 작은 출판사 매대를 찾지 못했지만 과학 신간 코너에 우리 신간이 잘 있다는 사진을 보내 주셨다. 판매가 안 되면 금방 빠지는 운명의 매대지만 오래 버텨주기를. 그리고 부천점에도 잘 진열되어 있다는 독자 영업자의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책공장의 부산 행사 때면 늘 먼저 도움을 주시는 독자분이 멀리 부산의 소식을 전해주셨다. 일단 부산 서면점은 작은 출판사 진열대가 없다고 했다. 매장 직원에게 물으니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아마도 진열대가 차지하는 공간에 비해서 판매가 안 되니 없어진 것 같았다. 이런 기획을 해주는 게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성과가 없으면 다른 곳도 곧 없어지다가 기획 자체가 없어지겠구나 싶었다.

나보다 더 서운해 하시던 독자는 부산의 다른 지점도 알아보셨는데 부산점도, 센텀시티점도 작은 출판사 매대가 있는 곳은 없다고 하셨다. 공간 리모델링을 하거나 재오픈하면서 책 매대가 많이 줄었다고 했단다. 이는 최근 서점의 추세다.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음료와 소품 등 다양한 것들을 판매하면서 책을 구입하는 곳이자 만남의 장소처럼 만드는 것. 책 판매량이 줄어드는 서점으로서도 타개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 어쨌든 나보다 더 서운해 하시는 독자분에게 내가 더 미안했다. 재미삼아 기쁜 마음으로 가셨을텐데 없다는 얘기를 계속 들으셨으니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우리 출판사 책도 베스트셀러 매대에 '떠억' 책이 진열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서점에 갈 때마다 뿌듯해하는 일이 나 죽기 전에 한 번 있으면 좋겠다.

독자 영업부원에서 영업부장으로 승진

전날 과학 신간 매대에만 진열되었던 강남점에 다음날 다른 독자가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작은 출판사 매대에 진열된 사진을 보내주셨다. 강남점은 매대도 예쁘네. 강남에도 진출하고 책공장의 동물 책이 출세했구만.​ 그리고 잠시 후 같은 독자로부터 영등포점 사진이 날아왔다. ​방금 강남점에 계셨는데 진짜 영업자처럼 움직이신다.

움직이는 동선이 딱 영업자라서 혹 영업자냐고 장난삼아 물으니 원하는 책 찾아 서점 다니는 걸 좋아하신다고.​ 책을 찾아 서점을 옮겨 다니다니 멋지다. ​그래서 이 독자는 영업부원 말고 영업부장 시켜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작은 출판사 매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목동점에서도 소식이 전해졌다. 제일 앞쪽에 멋지게 진열된 모습을 보니 왠지 뿌듯하다.​
대형서점 합정점 아동서
 대형서점 합정점 아동서
ⓒ 연희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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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합정점에도 작은 출판사 매대가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근래에 오픈한 합정점은 오픈하고 바로 갔었는데 책을 전시하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작은 출판사 매대도 없겠지. 독자가 찾아보니 합정점 재고가 1권이었단다. 1권이니 매대에 진열이 될 수가 없지.

그런데 더 문제는 우리 책이 아동책 서가에 꽂혀 있단다. 이 책은 분명 과학, 동물로 분류해서 서점에 보냈는데... 아동 서가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빼곡하게 꽂힌 아동서들 사이에서 우리 책을 찾지도 못했다.

좀 충격이었다. 이 책이 아동서로 분류되어 있다니, 영업자가 없는 출판사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구나 싶었다. 신간이 완전히 다른 분류로 서가에 꽂혀 있으니 신간을 내도 팔 수가 없지. ​

잠시 후 분당점에서도 작은 출판사 매대가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분당점이 꽤 크다고 알아서 그곳엔 있을 줄 알았는데 없구나. 작은 출판사 선정 덕분에 각 매장의 상황을 사무실에 앉아서 파악하고 있다.

소식을 전해준 독자는 본사가 하는 일인데 지점에서 매대도 설치하지 않는다며 나보다 더 속상해 했다. 요즘은 서점의 공간 디자인이 다양한 책을 전시하기 보다는 고객들의 편의가 우선시 되다 보니 그런 것이겠지.

내내 이어지던 슬픈 소식 끝에 일산 백석점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작은 출판사 매대에 예쁘게 잘 진열되어 있었다. 한 영업자가 다녔다면 분당에서 일산까지 고난의 행군이었을텐데 책공장은 영업자가 지역마다 있으니 이게 가능하구나. 뿌듯하다.

5일 만에 한 권 판매

대형서점 목동점
 대형서점 목동점
ⓒ 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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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해서 1인출판사와 독자들의 한바탕 영업부 놀이가 끝나가는가 싶었는데 목동점 사진이 올라온 후 5일 만에 다른 독자가 또 목동점 사진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이미 목동점 소식이 전해진 걸 알고 쑥스러워하셨다.​

'뒷북인가요, 둥둥~~'

뒷북이라니 전혀 아니다. 5일만에 찍힌 사진에 진열된 우리 책이 한 권 줄어 있었다. 책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살펴보는 것 또한 영업자의 일이니 고맙다고 전했다. 앗, 그런데 줄어든 그 한 권은 소식을 전해준 독자가 구입하신 거라고.

독자에게 영업자가 책을 사면 안 된다고 농담삼아 얘기했지만 이래서 작은 출판사 매대가 자꾸 사라지는 건가 싶었다. 공간은 차지하고 있으면서 판매는 되지 않으니. 독자 없으면 어떻게 1인출판사를 운영하나 몰라.

어쨌든 이렇게 대형서점이 상을 잘 차려준 덕분에 독자들이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책을 만들고 온라인에 출간 소식만 올릴 뿐 매장에 다니지 못하는 입장에서 처음으로 전국 매장 영업을 다닌 느낌이었다.

우리 책의 분류가 엉망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고, 서점이 책 판매보다는 다양한 용도로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우리 책이 한 매장에서 5일 만에 한 권 판매되었다는 현실도 직시하게 됐다.

​​왠지 영업 관리가 안 되는 상태로 여러 매장에 있는 우리 책을 보니 아이만 낳아 놓고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는 무책임한 부모의 아이들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혼자 키우는 거 아니고 사회가 함께 키우는 거라고 하지 않나. 우리 책도 각 지역에 있는 독자들이 이모처럼 삼촌처럼 잘 돌봐주고 있으니 됐다. 아, 정말 독자들 없으면 어떻게 1인출판사를 운영하나 몰라.

마지막으로, 이번 책 잘 팔리라고 독자가 찍어 보내주신 사진. 신간아, 가난한 출판사에서 태어났으니 니가 알아서 잘 커야 한다!!! 가는 곳마다 동네 언니오빠 이모삼촌들이 돌봐줄 거야.


고통받은 동물들의 평생 안식처 동물보호구역

로브 레이들로 지음, 곽성혜 옮김, 책공장더불어(2018)


태그:#교보문고, #작고강한출판사, #1인출판, #출판영업, #출판사와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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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고, 먹고, 입고, 즐기는 동물에 관한 책을 내는 1인출판사 책공장더불어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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