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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난민인권센터 주관으로 '난민제도 운영하며 차별 양산하고 혐오에 동조하는 정부 규탄한다' 기자회견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렸다.
 20일 오후 난민인권센터 주관으로 '난민제도 운영하며 차별 양산하고 혐오에 동조하는 정부 규탄한다' 기자회견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렸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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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 500여 명에 대한 정부의 조치가 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차별과 편견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난민인권센터 등 12개 시민단체는 20일 서울 종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난민 혐오'를 묵인하며 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정부에 항의했다. 특히 이들은 6월 1일부로 법무부가 예멘을 '무사증 입국 허가국'에서 제외하고 난민들의 추가 입국을 막은 것을 규탄했다.

예멘 난민들은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예멘을 탈출해 말레이시아로 도피했다가, 체류 기간 연장을 하지 못해 올 초부터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은 총 549명이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 어제(19일)에서야 인도주의적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는 발표가 나왔을 뿐이다. 또한 그동안 언론 보도를 통해 난민 신청자들의 제주도 체류 사실이 알려지며 '난민 수용 반대' 청와대 청원이 20만 명이 넘는 등 '난민 혐오'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난민이란 박해의 위험으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기에 다른 나라에 머물 수밖에 없어 국제적인 보호를 하는 이들이다"라며 "한국은 1993년에 난민제도를 도입하고 2013년엔 난민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부실한 난민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황 변호사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는 난민인정/보호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겠다'고 언급했다며 "그러나 현재 난민문제에 관련하여 정부와 공무원들은 난민의 인권보호를 방치하고, 난민 문제를 난민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함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법무부는 지금까지 3만8169건의 난민신청 접수 중 2% 가량인 825명만을 인정했다. 난민심사 담당 공무원이 전국 38명에 불과해서 1년에 1만여건에 달하는 (2017년 9942명 신청) 난민 신청에 대한 심도 있는 심사도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인 당 40만 원 가량 지급되는 생계비도 전체난민신청자 중 3.2%만 받았다.

이날 난민인권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이밖에도 정부는 "난민 심사 절차에서 생기는 접수거부, 폭언, 협박, 오역 등의 문제에 대해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난민 신청자들이 정착하는 것에 있어서 방관적 태도를 취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난민 신청자들 상황 파악하지 못해"

한국이주인권센터 박정형 활동가는 "올 4월부터 갑자기 정부는 예멘인들의 육지로의 출도를 금지시켰다. 정착 기반도 없고 생계비 보조도 되지 않은 채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식사를 해결할 돈도 없이 노숙하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정부는 난민 신청자들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난민 문제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지적했다.

박 활동가는 "제주도에서만 취업을 허가했지만, 난민신청자들과 사업주 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해결할 소통 창구가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에 예멘 난민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책임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난민에 대한 혐오표현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의 김진 활동가는 "예멘 난민 신청자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서 기인한 혐오표현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는 정부가 난민을 의도적으로 정책에서 배제하고 차별한 결과"라며 "난민 혐오 및 차별에 대해 적극적인 방지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 활동가는 "매우 참담하고 가슴 아픈 심정으로 서 있다"면서 "예멘 난민들로 인해 여성 인권이 붕괴되고, 난민들이 여성들을 성폭행할 것이라는 글들이 한국사회에서 반복되어 온 혐오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여성 억압' 문화를 가지고 있는 무슬림 남성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나영 활동가는 "두려운 마음을 무시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무엇에 근거하는지 살펴봐야 한다"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전쟁 이후) 소년들은 전쟁터로 끌려가고 소녀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계문제로 인해 강제 결혼에 내몰립니다. 15세 이하 소녀들의 조혼 비율은 전쟁으로 인해 급증한 것입니다. 2006년 14%이던 15세 이하 조혼 비율은 전쟁 이후 45%까지 급증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예멘 여성들의 피해 사례를 타자화하여 우리의 공포와 혐오를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하는 것은 오히려 매우 윤리적이지 못한 행위입니다."

이어서 이날 자리에 함께한 한 아랍 여성 활동가는 "예멘 사람들은 한국이 안전하고 민주적인 나라라서 선택했다. 아랍 사람들 중에는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제발 한 마음으로 도와줬으면 좋겠다"며 난민 수용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난민의 인권 없이는 한국은 결코 평등한 사회로 나갈 수 없다"며 "혐오 발언에 대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법적 조치를 취하고, 언론도 난민 혐오 조장의 유통경로가 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인권보도지침을 준수하라"는 주장이 담긴 성명을 발표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태그:#세계난민의날, #제주난민, #예멘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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