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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다 보면 노동자든, 고용주든 정형화된 주장들을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고용주들은 노동자의 요구로 월급에 포함시켰다거나 각종 공제금을 사측이 부담해 왔다고 주장한다. 의무가입인 4대 보험 가입 같은 경우는 노동자가 원치 않았기 때문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고용주들의 논리는 상당한 맹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선 근로감독관들이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동조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기자말>

구스두르는 콘크리트 타일, 기와, 벽돌 및 블록 제조업을 하는 업체에서 3년 가까이 밤낮없이 시멘트 섞는 일을 했다. 그는 지난 5월 말 귀국 준비를 하며 사장에게 퇴직금에 대해 물었다. 사장은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외국인은 퇴직금 없으니 더 이상 퇴직금 얘기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사측 외국인 담당자는 그동안 대표명의가 두 번 바뀌는 바람에 퇴직금이 없는 거라고 설명했다. 계속 근로연한으로 따지면 1년 넘는 해가 없다는 것이었다. 덧붙여서 담당자는 한국인들도 퇴직금 못 받은 사람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구스두르가 알기로 늘 같은 사람이 사장 노릇을 했다. 대표 명의 변경이 있었다 해도 그건 사장으로 있는 형과 동생이 본사와 지사 대표를 맞바꾸는 식이었을 뿐이었다. 설사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사장이 바뀌었다 해도 고용승계가 이뤄진 이상 퇴직금은 지급해야 한다는 건 간단한 상식이었지만, 구스두르는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결국 구스두르는 퇴직금을 받기 위해 출국을 미루고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노동부의 출석 요구에 사측은 노무사를 대동했다. 사측 노무사는 퇴직금이나 임금 등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사측이 대응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무사는 4대 보험과 세금, 기숙사비, 통신료 등을 공제하다보면 퇴직금보다 많다는 사측 주장을 앵무새처럼 읊었다.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는 업체들의 특징이야 정형화되어 있기에 구스두르는 이주노동자 상담단체를 통해 ①근로계약서 미교부 ② 퇴직금 지급 기간 초과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사처벌해 달라고 진성서에 밝혔다. 

감독관은 대표 명의 변경이나 월급에 퇴직금을 포함하여 지급했다는 사측의 주장에는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반면, 그동안 내지 않았던 4대 보험과 지방세, 갑근세 등의 세금 외에 기숙사비와 TV, 인터넷 통신료 등을 공제하면 구스두르가 지급해야 할 돈이 더 많다는 주장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퇴직금 차액에 대해서만 지급하도록 합의를 종용했다. 퇴직금은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는데, 차액만 받으라니….

이에 대해 상담 단체는 퇴직금 전액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 사측에서 기숙사비, 통신비, 4대 보험을 공제하겠다는 부분은 민사상 부당이득 반환청구를 할 사안이니, 노동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근로감독관은 부당이득과 같은 민사적 사안까지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런데도 중재하려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사측에서 부당이득 반환을 주장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에 근로감독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측 퇴직금 계산이 맞는지 여부를 살폈다.

퇴직금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에게 4대보험이나 각종 세금을 공제하겠다는 고용주들의 주장은 그야말로 억지다. 원칙적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업체는 통상 임금의 8.3%에 해당하는 출국만기보험을 매달 납부해야 하고, 차액에 대해서는 귀국 전에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 이주노동자 고용업체들이 이러한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구스두르를 고용한 업체 역시 퇴직금 성격인 출국만기보험을 납부하지 않아 왔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더 주려고 공제하지 않은 거라고 마치 호의를 베풀었던 것처럼 주장했다. 이는 사측이 부당 이득을 목적으로 보험 가입을 하지 않았음을 시인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만일 4대 보험 가입을 하면 사측 부담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는 퇴직금 성격의 출국만기보험 등을 수령하려면 출국 전에 고용노동부 고용복지센터에 신고해야 한다.
▲ 고용복지센터 이주노동자는 퇴직금 성격의 출국만기보험 등을 수령하려면 출국 전에 고용노동부 고용복지센터에 신고해야 한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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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대부분 업체들이 퇴직금을 미리 지급했다거나 각종 공제금을 사측이 부담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억지일 뿐이다. 노동자는 세후 급여를 받는다. 세전 금액으로 급여를 받고 세금을 납부한다는 건 상식 밖이다. 또한 원천징수 의무는 사업주에게 있기 때문에 사업주는 급여를 지급할 때 이미 원천징수를 했다고 봐야 한다.

사측은 연말에 세금 정산할 기회도 있다. 그러니 퇴직할 때 공제하겠다는 것은 억지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측과 이주노동자의 임금 약정은 세후로 약정한 임금이다. 다시 뭘 뗀다 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식을 모를 리 없는 근로감독관들은 '차액이나 받으라'는 식으로 중재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고기복 기자는 용인이주노동자쉼터 대표입니다.



태그:#이주노동자, #퇴직금, #출국만기보험, #4대보험, #고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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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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