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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나드는 '디아스포라'의 시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난민법과 무사증(무비자) 제도 폐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난민법과 무사증(무비자) 제도 폐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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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세계난민의 날을 하루 앞두고, 유례없이 난민이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제주에 약 500여 명 정도의 예멘 출신 난민 신청자가 머무르고 있다고 전국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청와대 인터넷 국민청원게시판에 "제주도 불법난민 신청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 개헌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오자 그 지지자가 며칠 만에 20만 명을 훌쩍 넘었다. 갑자기 다가온 익숙하지 않은 나라 예멘, 그곳의 상황을 알려고 하기보다 당장 이곳의 위험을 염려한다고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미 자의적, 타의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나든다. 외국인노동자와 결혼이주민, 그리고 난민을 포함해 다민족, 다국적의 이주자들이 '지금-여기'에 이미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더 많은 자산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기도 하다. 특히 난민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절박하게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 다수는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행한 식민지 지배와 지금까지 지속되는 그 후과(後果)로 그 나라의 안과 밖에서 분쟁이 지속되어 이주를 감행한다.

지난 6월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참여인원은 6월 25일자 기준으로 40만 명을 넘었다
 지난 6월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참여인원은 6월 25일자 기준으로 40만 명을 넘었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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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역시 지리적 요충지로서 예로부터 밖으로는 강대국의 통치와 개입을 받았고, 안으로는 이념과 종교에 따라 나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분단과 통합, 그리고 충돌을 거듭하는 와중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도 '재외동포' 700만 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에도 식민과 분단, 그리고 전쟁과 냉전으로 고향을 떠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역사가 면면하다. 자이니치와 까레이스키, 조선족 및 탈북민 모두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이주해야만 했던 이들이다. 한국이 스스로의 '정통'으로 헌법에 새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체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설립된 국민회의까지를 결합한 난민들의 망명정부였다. 물론 이 과정에는 당연히 '여성 난민'들도 동참하고 있었다.

난민 남성과 자국 여성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우리'에 대한 위협으로 난민을 생각하는 공포는 힘이 세다. 예멘 난민에 대한 뉴스가 온 매체를 뒤덮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는 반(反)난민 정서가 일렁였다.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그들이 나의 직업과 세금을 빼앗지 않을까'하는 반사적인 적개심을 갖는 이들에게는 난민을 둘러싼 각종 '팩트체크'로 반박이 가능할지 모른다. 예를 들어 지난 25년 동안 한국은 UN 난민협약 가입국이면서도 난민인정률은 3%에 불과했다. 이는 세계평균 38%에 절대적으로 못 미치는 수치이고, 이마저도 작년에는 1.5% 언저리로 떨어졌다. 가장 반감을 샀던 난민 신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비 지원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약 3% 정도의 난민에게만 적용됐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남성 난민'을 받아들이면 자국 여성에 대한 위험이 증가한다는 즉각적인 우려다. 예멘에서 온 난민 신청자 중 대다수가 남성임이 알려지자, 이 난민 남성이 한국 여성을 강간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반대의 증거로 나왔다. 그런데 이러한 '외부의 남성으로부터 내부의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는 가부장적 민족주의자들의 유구한 화법과 일치한다는 데에서 문제적이다.

이는 '제국의 남성이 억압된 식민지 여성을 구할 수 있다'는 제국주의자들의 논리와 정확히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여성의 몸을 경유하여 주장된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전시(戰時) 성범죄는, '자연적인 것'으로 주장되는 남성의 성욕 때문이 아니라, 타자의 완전한 절멸을 기도하기 때문에 자행된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최상의 남성성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믿음에서 조직적으로 방조 된다.

난민 남성과 자국 여성의 이분법 너머, 지금-여기를 사유할 때 

그러므로 단지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의미가 아니라, 특정 사회에서 어떠한 특징을 '남성적인 것'으로 승인해왔는가가 주목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난민이라는 상태 혹은 난민 남성성이란 과연 강간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지, 그와 관련해서는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은 통계를 낼 사건 자체가 희소하다. 다만 외국인 범죄율은 내국인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점만은 확실하며, 여기에 예멘 혹은 무슬림에 대한 통계는 따로 집계된 적이 없다. 그리고 만일 범죄행위의 책임을 오롯이 인종적 지표에 귀속시킬 수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 가장 먼저 추방되어야 할 존재는 따로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난민 문제를 '남성 난민에 의한 자국 여성의 위험'으로만 접근한다면, 민족과 인종, 그리고 종교와 젠더·섹슈얼리티가 어떻게 결합하여 난민의 문제를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런 논리에서 실종되는 존재는 오히려 '여성 난민'들이기도 하다. 과연 남성 난민의 위험을 말하는 것만큼, 그 40여 명 예멘 여성들이 어떤 상황인지 질문했는지. 지금 국제적 규준에 맞게 적절히 난민을 단계적으로 수용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남성 난민뿐 아니라 이들과 더불어 어떠한 여성들이 함께 왔는지, 혹은 다른 여성들은 어디로 갔는지를 이해할 기회도 사라진다. 이미 한국 사회는 단일 민족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하여 '지금-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난민 남성과 자국 여성이라는 이분법 너머를 적극적으로 사유할 용기가 아닌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류진희님은 성균관대 강사입니다.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고 탈/식민 서사, 장르, 매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매체/장르/언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관심 있습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소녀들』,『그런 남자는 없다』를 같이 썼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7-8월 합본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난민, #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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