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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덕 소장
 유병덕 소장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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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친환경 농가에서 살충제 달걀이 발견돼 전국이 들썩거린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친환경에 대한 숱한 논란을 낳으며 진정한 친환경이 무엇인지, 우리나라가 시행하는 유기농 정책은 문제가 없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생산자는 분명 국가가 정한 친환경 기준에 부합하는 사육환경과 사료를 제공하고 보다 친환경적으로 닭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도 예전 토지 이용자가 수십 년 전에 뿌렸던 농약에 오염된 토양 때문에 DDT 성분이 검출되자 친환경 생산자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국내 친환경 농수축산물 생산환경의 열악함을 그대로 보여준 현실이다.

열심히 정직하게 잘 해와도 유해물질이 한 번 검출되면 농가는 퇴출 대상이나 다름없어진다. 생산자가 의도하지 않은 유해물질의 검출. 반드시 생산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더욱 나은 유기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 제공을 위한 법 기준이 아닌 위반 사례 적발에만 초점을 맞춘 현 유기농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한국 최초로 GLOBAL G.A.P. 공인컨설턴트(Farm Assurer) 자격을 획득하고 미국 IOIA 국제유기심사원협회 리드 트레이너이며 세계 수많은 유기농 현장과 인증과정에 참여한 유병덕 이시도르 지속가능연구소장은 "국민이 건강하게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해당하며 이는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나라 유기농 정책은 이해와 접근방식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특히 식품안전에만 매몰돼 온 우리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유기농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진정한 유기농이 무엇인지 통찰적으로 고찰해 적용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 외국의 유기농과 우리나라 유기농 정책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 목적과 정의를 보면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라고 정의돼 있다. 친환경과 유기농 목적이 식품안전인 것이다. '농약은 나쁜 것'이라고 강조만 한 부정적인 방식이다. 유럽은 농업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가꾸고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진행한다. 나쁜 것을 없애자가 아니라 '좋은 것을 실천해서 살리고 확대하자'는 방식이다."

-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국제표준 코덱스 가이드라인(CAC GL 32)에 나와 있는 유기농의 정의는 생물 다양성, 생물학적 순환, 토양의 생물학적 활성화를 통해 농업생태계의 건강을 증진·강화하는 총체적 관리체계'라고 되어 있다. 농업선진국은 이 가이드라인을 지킨다. 우리나라는 국제표준을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식품안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오로지 검출 결과만으로 결정하며 정말 중요한 생산과정을 살피는 정책이 아닌 생산자만 강제하는 방식이 돼버린다. 심지어 양심 있는 생산자의 도덕성과 진실까지 매도되고 있다."

-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아야 하지 않나?
"나쁜 것이 억제된, 잔류농약 중금속 방사능 환경호르몬 등이 안전기준 이하로 억제된 식품을 안전한 식품이라고 말한다. 약간량을 섭취하더라도 곧바로 질병이 생기지 않고 사람에게 즉시 위해를 가하지 않는 식품인 것. 지금까지는 식품안전이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상당 부분 식품안전이 보장되고 있다. 오히려 과도한 실정이다.

유해물질이 검출돼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유해물질 검출 결과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어느 농가도 마음 편히 유기농업을 하기 어렵다. 생산자가 의도하지 않은 비의도적 혼입으로 유해물질이 검출돼도 정부는 생산자에게 징벌을 가한다. 심지어 원인 규명까지 생산자의 몫으로 떠안긴다. 생산자는 유해물질이 검출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그게 반복되면 유기농업의 의지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지난 시절 우리나라가 한때 엄청나게 농약을 뿌리고 산 것에 대해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

- 그렇다면 우리나라 유기농 인증방식을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유기농을 이해하는 패러다임에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유기농 정책은 대증요법적이다. 환자에게 증상이 생기면 증상 억제에 초점을 맞추는 치료법을 적용하듯 유기농 정책도 유해물질 검출 결과만 가지고 논쟁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원인 해결적인 방책을 취하는 게 아니라 그 문제요인을 억제하고 검출 기준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외국은 피상적인 검사결과로 결정하지 않고 과정 중심이다. 생산 초기부터 모든 과정이 유기적인지, 생물 다양성을 살리며 생태계가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농사를 했는지를 따진다. 그렇게 생물과 토양을 유기적으로 경작하고 관리하고 증진하면 필연적으로 유기농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식품안전에 촉각을 세우고 생산과정을 도외시하고 검출 여부만 따진다. 진짜 중요한 생산과정을 빠트린 인증은 우리가 사는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건강한 유기농을 지향한다고 보기 어렵다."

-. 유기농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WHO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정신 관계가 평안하고 활력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건강은 종합적인 것이다. 유기식품은 성분 위험이 적으면서 종합적으로 건강을 제공하는 식품이다. 유기식품은 영양공급 측면도 있지만 분화된 성분 산출로만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종합적인 완성체다. 이게 유기식품의 가치다. 건강을 이해하는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유기농 식품을 먹는 이유도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고 유기 생산물을 지향함으로써 건강한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식품안전만이 유기농을 추구하는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 어떻게 바뀌는 게 가장 이상적인가?
"국민은 건강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이는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GMO 식품 완전표시제를 주장하는 것도 내가 선택하는 먹거리가 무엇으로 돼 있는지 알고 먹을, 건강을 추구하는 권리인 것이다. 그런데 현행 제도는 NON-GMO 표시조차도 식품에 표시할 수 없다. 식품안전 함수는 동시에 존재한다. 나쁜 것을 억제해서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있고 좋은 것을 드러내서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있다. 부정적인 초점을 부각하기보다 긍정적인 방식을 장려해 건강하게 지속가능한 유기농을 확대해야 한다."

[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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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들은 유해물질 검출 여부에 민감할 텐데.
"미국 농산물 잔류농약 검출현황(표 1 참조)을 보면 유기농과 관행농의 잔류농약 검출량이 현저하게 유기농에서 적게 나왔다. 유기농이라고 농약 검출이 항상 제로는 아니다. 0%는 실재하기 어렵다. 단 유기농에서 몸에 해로운 잔류농약이 훨씬 적게 나온다는 것.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수 있게 생태계를 살리는 농법으로 농사 지은 생산물은 다른 유해물질도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건강에 더 이롭다는 이야기다.

기층소비자들은 유연하며 유기농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고 본다. 유기농 식품에서 간혹 잔류농약이 검출됐을지라도 지속해서 유기농 식품을 구매하는 것은 유기농으로 생산한 농산물이 관행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보다 여러 가지 유해성분이 훨씬 적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유기농에 농약이 검출되어도 여전히 많은 소비자가 유기적으로 생산한 과정을 중시한 유기농을 구매할 의향을 나타난 통계가 있다. 8월에 순천대학교에서 개최할 농업정책학회 학술발표회에서 이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 제도의 혁신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식품안전은 다 부정적 언어로 나와 있다. 최고점이 '0'이고 마이너스로 가는 것을 막는 방식이다. 건강의 함수는 긍정의 언어로 돼 있다. 이걸 추구하는 것이 유기농이다. 안전한 식품과 건강한 식품 두 측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런 제도를 마련하는 시장 형성이 필요하다. 기능주의적 건강론과 소비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잘하면 좋은 것을 더 잘할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해 WHO 건강 정의가 포함된 식품을 생산해야 한다.

어떤 성분 검출만이 중요한 거 아니다. 농업생태계를 증진 강화하는 총체적 시스템 안에서 농사를 지으면 나쁜 물질이 드라마틱하게 감소한다. 굳이 나쁜 물질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아도 얻게 되는 혜택이다. 또 생물생태계는 건강하게 지속가능할 수 있으며 우리는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 유기농 인증의 변화를 꾀한 한살림의 '자주인증'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살림 자주인증은 아주 의미 있고 주목하고 응원해줘야 할 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인증제도 부작용 해결을 위한 방책으로 시도한 제도다. 기존 인증제도는 생산자 소비자 배제된 전문가 주도 방식이다. 자주인증은 생산자와 소비자 함께 참여하는 인증이기 때문에 둘 사이 신뢰와 교류 협력이 가능하며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 이미 이 방식은 세계 120개 지역에서 참여형보장시스템 방식(PGS)으로 채택하고 있다."

- 정부의 개선 방향과 노력에 보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코덱스 기준을 적용해 표본을 만들었다고 한다. 과정중심기준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시행하지 않은 여러 가지 검사기준을 추가했다. 잔류농약 중금속 수질 등 실험실에서 검사해서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을 덧붙이고 이 기준에 좌우되도록 했다. 이게 결정적이다.

우리나라는 위반자 적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부 기만 행위자들에 관심이 조준돼 있다. 유해물질 혼입을 의도하지 않은 생산자까지 포함이다. 실제는 유기농 중심에 있는 가치 높은 생산자들이 더 많다. 이들의 행동을 본받고 확대하고 도와주는 정책으로 가야지, 안 그러면 중심에 서야 할 정책 대상자들이 피해를 본다. 유기농검사 비용뿐 아니라 모든 것을 생산자 책임으로 돌리는데 기존 유기농도 그만두려고 할 정도다. 제대로 하는 생산자를 부각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긍정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한때는 식품안전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농산물 안전수준이 향상됐다. 이제는 식품의 가치를 높여야 할 때다."

> 이시도르 지속가능연구소는?
이시도르 연구소는 2013년 개소했으며 지속가능한 농어업 교육과 인증 관리 등 1차산업과 그 바탕 위에 있는 가공산업이 다음 세대까지 건전하고 건강하게 지속하는데 필요한 제도와 기술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연구 내용을 교육 훈련 컨설팅 심사 검사대행 등을 통해 현장에서 잘 쓰이도록 돕는 활동을 한다. 또한 '책임 있는 소비'를 확대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유기농업, 지속가능한 농수산업, 식품 건강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20~30대 젊은 연구자 5명이 일하고 있다.

> 유병덕 소장은?
2006년부터 미국 IOAI 국제유기심사원협회 트레이너다. IOIA는 유기심사인증을 하기 위한 심사원들이 활동하는 단체며 유기농 인증 심사원 권익과 전문성 향상을 위한 단체다. 유 소장은 한국 최초로 GLOBAL G.A.P. 공인컨설턴트(Farm Assurer) 자격을 획득하고 미국 USDA NOP 인증, 유럽연합 EC834/2007 인증, 일본 유기JAS 인증을 관리한다. 독일 G.A.P.에서는 생산자와 심사원 교육사업을 담당한다. 주로 아시아 트레이너로 활동한다. 또한, 국제 유기 섬유 기준 GOTS 인증심의관을 맡아 국내에서 생산하는 유기섬유제품의 인증 판정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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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병덕, #이시도르, #식품안전, #유기농, #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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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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