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워라밸' '저녁 있는 삶' 열풍이 불고 있지만 장거리 통근족에게는 먼 이야기입니다. 4명 중 1명은 길에서 2시간 이상을 보내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이날 저녁 퇴근시간. 서울 사당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경기도 지역이 목적지인 광역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저녁 퇴근시간. 서울 사당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경기도 지역이 목적지인 광역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워킹맘의 새벽5시

네 달 전 나는 경기도 용인에서 서울 서부로 출퇴근을 했다. 왕복 4시간이 걸렸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6시에 집을 나섰다. 출근시간에는 그나마 차가 막히지 않아, 회사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퇴근은 답이 없었다. 퇴근시간대 서울 도심 도로와 경부선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간혹 셔틀버스를 놓치면 서울역이나 강남역에서 빨간 광역버스를 타야 했다. 퇴근시간에는 자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버스 계단까지 빽빽하게 서서 1시간여를 가야 했다. 오래된 버스냄새와 밀착된 사람들의 땀냄새, 너도 나도 피곤한 삶의 모습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서민의 삶, 그 풍경 안에 내가 있는 것이 이상하게도 너무 슬펐다.

밤 9시. 워킹맘의 퇴근은 또 다른 출근이다. 집에 도착하면 이미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린 뒤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씻지도 않고 있었다. 아이들의 씻기와 숙제, 책 읽기를 마치고 10시까지 재우는 것이 매일의 미션이었다. 하지만 바닥까지 에너지를 끌어 모아도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었다. 나오는 것은 짜증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온갖 짜증과 협박을 했다.

"빨리 빨리 못해! 10분 내로 안 하면 혼날 줄 알아!"
"얼른 씻지 않으면 오늘 책 읽어주는 거 없을 줄 알아!"


내 몸이 힘드니 모든 상황이 힘들게 느껴졌다. 남편과 부부싸움도 잦았다. 너무 힘든데 회사를 그만 둘 수 없는 상황이 짜증났고, 내 삶이 힘든 것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보상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가장 가까운 남편과 아이들이 내 짜증과 협박을 받아야 했다.

그 즈음 큰 아이에게 틱 증상이 나타났다. 남자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고 있다가도 없어진다고는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했다. 하루에 엄마를 보는 시간이 고작 1시간인데, 그 시간 동안 엄마한테 주로 혼나는 게 일이었으니까.

새벽에 출근하니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식구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는 건 주말 아침이나 되어야 가능했다. 남편의 얼굴은 평일에 볼 수 없었다. 아침에는 내가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는 남편이 늦었다.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회사에 일을 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털리는 기분이었다.

시간과 돈을 맞바꾸다

셔틀버스 타러 가는 길 새벽에 부지런히 일어난다는 기쁨도 없이 도로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많았다.
▲ 셔틀버스 타러 가는 길 새벽에 부지런히 일어난다는 기쁨도 없이 도로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많았다.
ⓒ 이혜선

관련사진보기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서울로 이사를 하거나, 직장을 집 근처로 옮기거나. 처음엔 서울로 옮기는 것을 고려했다. 하지만 서울 집값이 너무 비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도 회사 근처의 전세를 구할 수 없었다. 지금 집도 대출이 있었다. 서울로 이사를 할 경우 더 높은 금융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아이들 양육자를 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지금은 어머님이 두 아이를 돌봐주고 계신다. 아직 아이들이 손이 많이 갈 때라 어머님의 도움 없이 아이들 키우며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남편의 사무실 위치도 문제였다. 일방적으로 나만 가깝게 이사할 수 없었다. 대출 이자에 아이들 교육비, 돌보미 비용, 남편의 직장까지...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 봐도 답이 없었다.

다음 방법으로는 직장을 집 근처로 옮기는 방법을 찾았다. 다른 회사를 이직하는 것보다 사내 전배를 고려했다. 나이가 많아서 이직하는 것도 쉽지 않았거니와 워킹맘이라 이직 후 다른 회사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 것 같아서였다.

집 근처 경기도권으로 전배를 알아봤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거절의 사유는 좋은 말로 직급이 높기 때문이었고, 사실은 나이가 많아서였다. 사원, 대리급 이동은 쉬웠지만, 차장급 이상의 이동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말 우연히 예전에 같이 일하던 분의 추천으로 집과 가까운 지금의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

팀을 옮길 때 몇몇 지인들은 반대했다. 지금의 경력을 버리고 새로운 분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더 멀리서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좀 참고 다니지 그러냐고 했다.

물론 경기도권에서 다니는 직원들은 많았다. 실제로 우리집 근처에 사는 직원은 아무 불평 없이 잘 다니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와 내가 다른 점이라면 그는 남자였고, 집에 전업주부인 아내가 있었다. 나는 워킹맘이었고, 집에 아내가 없었다. 그와 나의 선택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팀을 옮기고 나서 지인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손해는 있었다. 상반기 평가에서 바닥점수를 받았으니까. 평가점수는 금전적인 손해로 이어졌다. 하지만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긴 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다. 시간과 돈을 맞바꾼 셈이다.

짧은 출퇴근 시간으로 달라진 일상

 이렇게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참 예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자료사진).
 이렇게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참 예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자료사진).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지금 팀이 있는 곳은 집에서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문에서 문까지)로 40분 정도 걸린다. 지하철 시간만 25분 정도. 이전 왕복출퇴근 4시간에 비하면 3시간 이상의 뭉텅이 시간이 주어졌다.

이곳에서 처음 출퇴근 한 날, 가족 모두 아침과 저녁식사를 같이했다. 간절히 원하던 시간이었다. 하루 한 끼 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었겠지만, 나에겐 간절히 바라던 일상이었다. 잃어본 사람만이 그 소중함을 안다.

요즘은 집에 도착하면 저녁 7시가 채 되지 않는다. 퇴근 후 아이들과 축구를 하거나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아주기도 한다. 슬리퍼를 신고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서 동네 산책을 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숙제를 봐주고, 책을 읽어주며 같이 잠든다.

이렇게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참 예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어떤 음악보다도 힐링이 되는 소리였다. 이전에는 왜 몰랐을까? 아마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소리를 듣기보다 내 짜증과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먼저였으므로.

큰 아이의 틱은 자연스레 없어졌다. 틱의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엄마인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면서 없어졌다. 정서안정은 아이보다 엄마가 먼저 필요한 것이었다. 9살, 7살, 아직은 스스로 빨리빨리 무언가를 해내기엔 부족한 나이였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제시간에 무언가를 마칠 수 있는 방법은 함께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들에게 재촉하기보다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생각한다. 이렇게 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운 환경을 바꾸어야만 하는 때,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아마도 왕복 출퇴근 4시간을 견디며 다니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시 그 상황이 온다 해도 주거지와 직장이 가깝도록 노력하고 선택할 것이다. 지금의 행복을 길에서 다시 소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