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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퇴사! 새해 첫날 좌천 통보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무기력한 40대 회사원이던 제가 딴짓을 하면서 퇴사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과연 퇴사할 수 있을까요? - 기자 말

[이전기사] 나는 절이 싫어도 버텨야만 하는 스님이었다 (http://omn.kr/s3ox)

대형마트 한가운데서 울었다. 공황장애 때문에 갑자기 숨이 막혀서 죽는 줄 알았는데, 다시 호흡이 되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이 와중에도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하! 돈 한 푼 없는데, 병까지 생기면 어쩌냐? 참! 내일 회의하는 월요일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회사 걱정을 하는 나는 천생 회사원 체질인 건가. 어김없이 출근한 어느 날 오전 11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내가 김밥을 좀 말아봤지~ 우리 날씨 좋으니까 야외에서 점심 같이 먹자. 식후 커피는 자기가 사~, 시간 맞춰 회사 앞에 도착할게."

회사 앞 지하철역으로 나가니 횡단보도 건너편에 아내가 보였다. 그런데 평소 활발한 모습과 달리 울먹이는 것처럼 보였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뛰어서 그녀에게 달려갔다. 예상대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여보. 힘들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둬. 그깟 회사가 뭐라고..."

아내는 회사 앞으로 오는 중에 가장인 한 남성의 자살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그분은 마지막 결정을 하기 전에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들에게는 주위의 기대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여보, 고마워. 사람이 먼저 살아야지. 그런데, 방법이 없다. 방법이. 죽을 것처럼 힘든데, 월급 끊어지면 진짜로 죽을 수도 있으니...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때 나의 눈에 아내의 도시락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유레카!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KBS <한국인의 밥상> 화면 갈무리
 KBS <한국인의 밥상> 화면 갈무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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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KBS <한국인의 밥상>과 SBS <생활의 달인>의 애청자다. 본방 사수를 못할 경우 반드시 다시 보기로 시청할 정도다. 두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힐링도 되지만, 요식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한 적 있다.

'그래! 나도 식당을 해보자. 작지만 좋은 재료로 정성스러운 음식을 손님에게 대접하고, 손님들과 친구처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왜 나는 백종원이 될 수 없나

나는 '먹방' 이나 셰프 전성시대가 열리기 훨씬 전인 2007년경에 요리 공부를 위한 유학을 생각해 볼 정도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와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했다.

일단 나만의 요리법을 개발해 보고 최후에는 처제에게 김밥을 배워보자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든든해지면서 한편으로는 급해졌다(처제는 성남에서 기가 막히게 맛있는 김밥집을 운영 중이다). 나도 백종원처럼 요식업으로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저녁부터 <한국인의 밥상>과 <생활의 달인>을 다시 보며 메뉴 선정에 들어갔다. 아내는 내가 의욕을 찾은 듯하니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지켜봐 주었다. 약 3주간 형사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CCTV를 밤새워 보는 것처럼, 두 프로그램을 메모하면서 보았다. 그리고 두 가지 2가지 메뉴를 최종 선정했다.

첫 번째 메뉴는 경북 김천을 평정하고 있다는 '손가락 김밥'이었다. 당도가 높은 포도와 양파를 넣고 간장에 졸인다. 오이 속은 파내고, 하루 동안 냉장 보관해 아삭한 식감을 만든다. 이 두 가지가 핵심 포인트였다. 그중 절대 비법은 바로 간장이었다. 퇴근 후는 물론이고 주말마다 간장을 졸이고 또 졸였다. 설탕과 올리고당으로 낸 인위적인 단맛이 아닌, 자연이 준 포도와 양파로만 단맛을 내는 특제 간장을 만들기 위해서! 그 사이 아내의 속도 타들어 가고 있었다.

"여보. <생활의 달인>에 나올 정도의 맛을 내는 특제 간장이 몇 달 만에 쉽게 만들어지겠어? 집안이 온통 간장 냄새야. 벽지가 까맣게 변하고 있다고, 이 인간아!"

 SBS <푸드트럭> 화면 갈무리
 SBS <푸드트럭> 화면 갈무리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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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메뉴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발견한 비장의 카드였다. 평소 자연주의적인 음식을 추구하는 나의 이념과도 맞아떨어지는 음식이었다. 먼저 작은 옹기에 잎 마늘을 깐다. 우리가 고기 구워 먹을 때 흔히 먹는 알 마늘이 아닌 잎 마늘이다. 그리고 삼겹살이건 목살이건 돼지고기를 성인남자의 엄지손가락 크기로 자른 후, 묵은지로 감싸준다. 묵은지 옷을 입은 돼지고기를 잎 마늘 위에 올린 후, 물이 담긴 큰 냄비에 옹기를 넣고 중탕으로 끓인다.

집에서 주말에 시식을 해봤는데, 아내가 엄지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 엄지를 꺾어 내렸다.

"여보. 자기가 요리에 관심 많은 거 알아. 주말마다 해주는 음식도 맛있어. 그런데, 자취 요리의 연장선일 뿐이야."

"나 진짜 자신 있어! 자신 있다고! 왜 시작도 하기 전에 초를 쳐!"

그렇게 주말의 평화는 또다시 날아갔다. 스스로도 식당은 무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 업무 외에 돈을 벌 방법이 지금 현재로서는 전무하다는 사실을. 어쩌면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영어를 잘하게 된 이유

지금이라도 새로운 걸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좋을까? 중국어? 오! 노(No)!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영어 하나 하는데도 온 열정을 다 바치고, 몇 년 동안 탈진했던 기억이 스물스물 되살아났다.

1998년 5월. 복학 후 처음 치른 토익 점수를 받아보고 충격에 빠졌다.

"이게 뭐야? 무슨 토익 점수가 신발 사이즈랑 똑같냐."

200명이 모인 가운데 열악한 음향 시설로 치른 모의 토익이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졸업하기까지 2년, 중소기업 취업 후 1년 동안 영어에 매달렸다. 잠을 줄여 가며 학원에 다니고 공부를 했다. 그래도 겨우 700점이었다. 외국인 앞에 가면 입이 안 떨어지는 것 또한 변하지 않았다. 월급 130만 원으로 학원비 내고, 방세 내고, 1년에 800만 원을 모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연인과의 데이트 따위는 모르고 살았다.

영어와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는 마음으로 캐나다로 떠났다. 고3처럼 공부했다. 한 잔에 800원 하던 커피도 몇 번을 고심한 후에 마셨다. 그 돈을 아껴서 더 많은 수업을 듣고 싶었다. 부모님 지원으로 간 어학연수였다면 이렇게까지 공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제리맥과이어> 스틸컷
 영화 <제리맥과이어> 스틸컷
ⓒ 트라이스타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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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 하게 된 동생에게 집요하게 묻고 또 물었다. 그 녀석의 추천으로 톰 크루즈의 <제리 맥과이어>와 줄리아 로버츠의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 비디오테이프를 샀다. 캐나다에서 산 거니 자막이 없다. 저녁 식사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0일간 4시간 넘게 두 개의 영화를 보았다. 지금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톰크루즈와 줄리아 로버츠의 목소리만은 식별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3개월이 지나니 비디오를 틀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고, 귀에서 정말로 눈물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 켜놓은 CNN 뉴스가 한국말로 자동 번역되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한국에 돌아온 첫 토익에서 듣기평가는 만점을 받았다.

그렇게 처절하게 익힌 영어로 - 중소기업이지만 - 취업도 했고, 나름 안정된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취업할 때 영어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건 내가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번역기가 나 같은 사람의 위치를 대신할 것이다. 나도 요즘 번역기 돌린다. 몇 년 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중국어라고 다르겠는가? 취미로 외국어를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직장을 다니면서 자기개발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외국어가 늘지도 않는다. 그 시간에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손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훨씬 나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어도 중고차도 안 된다면...

요리도 중국어도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면 뭐가 있을까? 전화기 주소록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살펴봤다. 그리고 내가 아는 동년배 중에 현금이 제일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양 사장'을 찾아갔다.

"성님 오셨어라? 앉으세요. 난 우리 성님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지. 일단 앉아 보세요. 결정은 성님이 하시는 거니까."

"어... 근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에이. 성님! 난 사실 진작부터 성님한테 이 중고차 딜러 일 추천하고 싶었다니까. 그리고, 저기 보이시죠? 요즘 외국인들도 중고차 사러 엄청 와요. 성님은 이게 되잖아요. 쏼라쏼라!"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회사만 당장 그만둘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막상 회사를 관두려고 하니 두려움이 더 컸다. (사진은 MBC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회사만 당장 그만둘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막상 회사를 관두려고 하니 두려움이 더 컸다. (사진은 MBC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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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신감이 더 떨어진 상태였다. 맨날 책상에 앉아 있다가 사람들 대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활발한 성격이랑 영업 잘하는 거랑은 완전히 다르다던데... 이것도 기본 자금이 있어야 하는구나. 여기도 돈. 저기도 돈이 필요하구나.

그 이후로, 재기발랄한(?) 성격을 살려 노래강사에 도전해 보려고 관련 학원에 전화를 몇 번 해보기도 했다. KBS 'VJ특공대'에서 노래 강사로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시작한 내 나이 또래의 여자분이 나온 것을 본 결과였다.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회사만 당장 그만둘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막상 회사를 관두려고 하니 두려움이 더 컸다. 이게 무슨 궤변이란 말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아내가 자전거로 제주도를 일주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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