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우리는 이 시기의 전쟁을 보통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선 15년 전쟁 혹은 대동아 전쟁이라고 부른다. 일본은 대담하게도 미국령 하와이를 기습 공격했고,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도 공격해 점령했다. 일본군이 가는 곳마다 학살이 일어났고 뒤이어 일제 물건들이 들어와 시장을 뒤덮었다. 그리고 일본군 주둔지마다 '위안소'가 설치됐다.

그동안 우리는 국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연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보고 들었다. 하지만 한국 밖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선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등 여타 아시아 지역에도 수많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있었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 22 >는 중국의 위안부 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다루는 작품이다.

영화 제목 < 22 >의 의미, 그러나 이제는 7명만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박차순(1922~2017) 할머니가 방문객들과 대화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박차순(1922~2017) 할머니가 방문객들과 대화하고 있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 22 > 속 설명에 따르면, 산시성에만 120명이 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생존해 있었다. 궈커 감독이 영화를 찍기 시작했던 2014년엔 22명이 있었다. 영화 제목 < 22 >를 여기서 따왔다. 2018년 현재는 중국 전역에 7명만 생존해 있다고 한다. 궈커 감독은 더 늦기 전에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해 역사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 전역에 살고 있는 생존자 한 분 한 분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말년의 소소한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영화에 따르면 '일본인이 큰 양말 공장을 세우는데 가서 일하는 것이 어떠냐는 말에 속았다'거나 '남편이 항일부대를 이끌었는데 이것 때문에 보복 차원에서 위안소로 끌려갔다'거나 '스스로 항일 빨치산이 돼 일본군과 싸우다가 끌려간' 경우 등 동원경로가 다양했다. 특히 일본군에게 사냥당하듯 거주지에서 납치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식민지와 점령지의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일본의 일부로 취급받는 식민지였기에 주로 '취업 사기'가 많았지만, 중국은 점령지였기에 어느 날 들이닥친 군인에 의해 끌려간 것이다.

영화 속엔 조선족 출신인 고 박차순(1922~2017) 할머니의 사연도 등장했다. 박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했다. 할머니는 이것을 "중국으로 피란갔다"고 표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박 할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살기가 막막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박 할머니의 손을 잡고 멀리 갔다. 어머니는 박 할머니를 버리고 혼자 기차를 탔고 박 할머니가 기차 유리창을 두드리며 울자 승객들이 먹을 것을 던져줬다. 박 할머니는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서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울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할머니가 박 할머니를 찾으러 왔고, 그때부터 박 할머니는 할머니와 살기 시작했다.

박 할머니는 전쟁이 끝난 뒤 이웃에서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해 친자식처럼 키웠다. 할머니는 한국말을 다 잊었음에도 제작진에게 '아리랑'과 '도라지 타령'을 불러 보였다. 딸은 "기자가 오기 전까지 엄마의 사연을 전혀 몰랐다"며 "아버지는 알았을 텐데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오랜 시간 아픔 견뎌온 할머니들, 왜 피해자가 숨어야 할까

 린아이란(1925~2015) 할머니가 일본군이 엄마를 강에 던져 죽였다는 증언을 하는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할머니는 1942년 12월에 항일투사가 됐다. 자신이 직접 기관총으로 일본군을 2명 죽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린아이란(1925~2015) 할머니가 일본군이 엄마를 강에 던져 죽였다는 증언을 하는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할머니는 1942년 12월에 항일투사가 됐다. 자신이 직접 기관총으로 일본군을 2명 죽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박 할머니를 비롯해 영화 속에 등장한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속엔 아픔과 상처 이전에 분노도 있었을 것이고, 원망과 울분도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들은 그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담담하게 행동하고 말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큰 용기를 갖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내면에 상처와 고통을 품고 오랜 시간을 지냈기에 할머니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기까지는 오랜 인내와 설득이 필요했을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오래 걸렸을 것이고, 감독 및 제작팀과 사적인 친밀감이 쌓일 만한 시간도 필요했을 것이다. 22명의 피해 생존자 중 자녀들에게 누가 될까 두렵다며 끝내 촬영을 거절한 분도 한 분이 계셨다. 가해자는 오랫동안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되레 당당한데 피해자가 숨고 기피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할머니들 중엔 심지어 문화대혁명 때 일본인의 첩이라며 공격받고 고초를 겪은 분까지 계셨다.

초심자나 국내 감독의 경우 좋지 못한 여건에서 촬영하다 보니 카메라를 하나 들고 혼자서 간소하게 찍는 방식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작지만 팀을 이뤄서 영화를 찍었다. 조감독과 촬영감독이 따로 있고, 촬영장비를 동원해 찍은 컷들도 보인다. 영화용 붐(Boom) 마이크를 사용했고, 스크립트도 썼다. 그래서인지 만듦새가 깔끔하다. 국내 다큐 작가들이 부러워할 만한 제작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용 텔레비전 다큐의 경우 유명인사의 내레이션을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내레이션을 쓰지 않았다. 대신 등장인물의 육성만으로 담백하게 이끌어간다. 배경 설명이 꼭 필요할 땐 간소한 자막만 넣어 이해를 도왔다. 시도 때도 없이 내레이션이 나오는 방송용 다큐보다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개입할 여지를 주었기에 화면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이 할머니들의 이야기 들을 마지막 기회"

 리메이진(1926~) 할머니가 활짝 웃고 있다. 하이난섬 출신인 리 할머니는 마을로 쳐들어온 일본군에게 잡혀서 일본군 기지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낮엔 비행장을 건설하고 밤엔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할머니가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너무 기뻐서 울었다고 한다.

리메이진(1926~) 할머니가 활짝 웃고 있다. 하이난섬 출신인 리 할머니는 마을로 쳐들어온 일본군에게 잡혀서 일본군 기지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낮엔 비행장을 건설하고 밤엔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할머니가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너무 기뻐서 울었다고 한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특히 기자는 오키나와의 위안부 피해자였던 배봉기 할머니(1914~1991)가 떠올랐다. 배 할머니는 1991년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 이전에 이미 1970년대에 존재가 알려진 최초의 위안부 피해 증언자였다. 1978년에 야마타니 데쓰오 감독이 다큐 <오키나와의 할머니>를 만들었고, 그즈음에 할머니를 찾아간 기자 가와다 후미코가 <빨간 기와집>을 썼다. <오키나와의 할머니> 속엔 중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 소속 엔지니어로 중국에 파견돼 직접 위안소를 지었다고 고백한 중년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최창규 전 건축가협회 회장이다. 당시는 피해자들이 비교적 젊었을 때이고,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증언을 해줄 만한 사람도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오로지 할머니들의 육성만이 남았다. 우리의 관심과 지지가 너무 늦게 도달한 탓이다. 그래서 궈커 감독은 "지금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이전에 단편영화 1편을 연출한 것이 필모그래피의 전부다. 장편 영화는 이 작품이 처음인데도 진중하게 영화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첫 작품 < 32 >도 위안부 피해자와 일본인의 피를 가진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 22 >는 국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 100만 위안을 조달해 어렵게 제작·개봉한 한중합작 영화다. 지난해 8월 개봉한 중국에선 무려 5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기도 하다. 개봉 첫날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제작비의 60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중국에서 투자 대비 수익성과 1위를 기록했다. 국내에선 '세계 위안부 기림일'인 오는 14일에 개봉한다.

위안부 성노예 위안소 22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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