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들의 비혼주의가 늘어나고 있다. 육아 부담 때문일까? 아니면 가사 노동?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결혼 후 따라오는 '엄마'와 '아내'라는 호칭과 맞바꿔 포기해야 될지도 모를 '꿈'일 것이다. 2018년 지금 시대에도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수십 년 전인 1960년대에는 오죽했을까.

평범한 엄마와 아내로 살던 일상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속 미국의 한적한 시골 마을 아오아이. 마을 사람들은 모든 집의 사정을 알 만큼 친분이 두텁다. 그 중 커다란 옥수수 밭이 눈에 띄는 한 집. 그 곳에는 미군이었던 남편을 따라 몇 년 전 아오아이로 이사 온 가정주부 프란체스카가 살고 있다.

프란체스카는 여느 집의 아내들처럼 남편이 좋아하는 저녁 메뉴를 만들고 사춘기 아들 딸을 보듬으며 평화롭지만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가끔씩은 젊은 시절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림 그리겠다던 꿈을 떠올리며 부엌 서랍에 넣어둔 스케치북을 꺼내 보기도 한다.

 사진 찍을 다리를 찾던 로버트가 길을 헤매며 프란체스카의 집 쪽으로 오고 있다. (박은태, 차지연 배우)

사진 찍을 다리를 찾던 로버트가 길을 헤매며 프란체스카의 집 쪽으로 오고 있다. (박은태, 차지연 배우) ⓒ 쇼노트


그러던 중 아이들과 남편이 여행을 떠나자 프란체스카에게 꿀맛 같은 휴식이 찾아왔다. 부엌을 나와 밤 하늘 별을 올려다 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 그런데 이 휴식을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한 남자가 집으로 찾아온다.

카메라를 든 채 두리번거리는 이 남자 로버트는 네셔널 지오그래피의 사진작가다.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멋진 사진을 찍는데 이번 과제는 매디슨 카운티에 있는 로즈먼 다리를 찍는 것이었다.

결핍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 끌릴 수밖에 없는 운명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강한 끌림을 느낀다. 첫 눈에 반하는 뜨거운 사랑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보다 더 위험한 서서히 물드는 꽃물 같은 사랑이었다. '운명적인' '사랑 할 수밖에 없는' 이런 수식어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인이 이 두 사람이다.

로버트는 세상을 카메라 밖에서만 바라보며 이 곳 저 곳을 떠돌고 있었다. 그러다 따스하고 순수한 프란체스카를 만나 카메라 안 쪽의 진짜 세상을 살아보고는 정착할 마음을 품는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디모인의 카페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차지연, 박은태 배우)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디모인의 카페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차지연, 박은태 배우) ⓒ 쇼노트


프란체스카는 낯선 미국에서 그리운 고향 이탈리아를 떠올리며 모차렐라 치즈, 유럽식 커피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았다. 남편은 오히려 펜넬을 넣은 야채 수프는 싫다며 타박하고는 했다. 그런데 로버트는 얼마 전 이탈리아 피렌체에 갔었다며 프란체스카의 고향 사진들을 보여줬고 저녁 식사 때는 팔을 걷어 부치더니 직접 텃밭에서 재료를 뽑아왔다. 그리고 펜넬을 들면서 "이게 가장 중요한 재료"라고 말했다.

사실 지금까지 나열한 내용들은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사랑을 명확한 사건으로 설명하고 싶어서였고, 사실 긴 말이 필요 없다. 이들이 주고받는 눈빛과 목소리, 그 순간 흐르는 공기로도 설명은 충분하다.

잔잔함 속 강렬한 이끌림

올해 국내 무대 재연으로 돌아온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소설과 영화로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가 글, 영상, 무대로 찾아오면서 각기 색다른 감동을 주지만 공통된 매력은 '잔잔함 속 강렬한 표현'이다. 특히 뮤지컬은 큰 대극장에서 공연하지만 웅장한 무대 세트나 화려한 노래들은 없다. 마치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감정만 따라가라는 듯이 오로지 조용한 시골만 있다.

이 작품은 감정을 잘 쌓아가는 노래들이 돋보인다. 각 자 살아온 삶과 마주한 사랑, 아픔을 하나씩 꺼내 풀어놓는다. 특히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장면의 노래 '단 한 번의 순간'에는 앞부분 연주 없이 육성으로만 부분이 있다. 떨리는 목소리, 소절 하나 하나 뱉어내는 호흡이 객석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져서 이들의 사랑에 공감해 눈물 흘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외에도 '널 알기 전과 후' 'It All Fades Away' 등 인물들의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한 넘버들이 가슴을 울린다.

사랑 그 이상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운명적으로 만나 함께 보내는 4일간의 시간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지만 이외에 사랑 그 이상의 내용들이 담겨있다. 우선 작품은 프란체스카를 통해 여자의 일생을 표현했다. 그 시절의 젊은 여성들은 사랑도 하고 꿈도 꿨지만 가정이 생기면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충실해야했다. 꿈을 다시 이룰 기회가 와도 포기해야만 했다.

뮤지컬 속에는 다른 이야기들도 있다. 우선 가족의 사랑이다. 나를 잘 몰라주는 남편, 말 안 듣는 자식들이지만... 아이들은 입이 툭 튀어나올 만큼 사랑의 매를 맞은 뒤에도 꾸역꾸역 같이 차를 타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 이웃의 사랑도 있다. 평소에는 툴툴대지만 이웃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간다. 모든 걸 다 알지만 때로는 눈 감아 주며 힘든 이웃을 위해 따뜻한 라자냐 한 판을 건네 위로를 한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가득한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이기 때문에 극장을 찾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작품에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내용 하나 이상은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마치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서로를 공감해서 사랑했던 것처럼 관객들은 작품의 내용에 공감해 이 공연을 사랑하게 된다.

공연장에서 흘린 눈물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함께 카메라 넘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김선영, 강타)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함께 카메라 넘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김선영, 강타) ⓒ 쇼노트


나도 공연을 보면서 눈물이 자주 흘렀다. 극의 초반부가 프란체스카의 입장에서 흘러가다보니 로버트가 등장해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때 내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것 같아서 설렜고 두 사람이 꼭 껴안고 있을 때는 기쁘면서도 다가올 이별이 생각나 눈물 났다. 담담한 두 사람이 같이 떠나자며 울부짖을 때, 이별 후 묵묵히 일상을 살아 갈 때 안타까워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났다.

눈물은 공연에 푹 빠졌었다는 증거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서로에서 서서히 물들어갔듯이 나도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물들었나보다. 이렇게 여운이 긴 작품은 참 오랜만이었다. 두 사람이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았듯이 나도 이 작품을 떠올리며 따뜻하게 살아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10월 28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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