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워하는 한국 남자 농구대표팀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에서 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 아쉬워하는 한국 남자 농구대표팀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에서 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허재 감독이 또다시 아시아 정상 도전에 실패했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농구대표팀은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GBK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준결승전에서 '숙적' 이란의 벽을 넘지 못하고 68-80으로 패했다. 결승전은 이란과 중국의 대결로 압축됐다. 3·4위전으로 밀려난 한국은 오는 1일 오후 2시 30분 대만과 동메달 결정전을 벌이게 됐다.

한국농구는 유재학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이란을 극적으로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준결승전에서는 사실상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완패를 당했다. 대표팀은 경기 초반부터 내내 이란에게 끌려다녔고 단 한 번도 리드를 빼앗거나 점수차를 좁히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한국농구는 홈에서 열린 인천 대회 이후 이란에게 국제대회에서 더 이상 이겨보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천적' 하메드 하다디(218cm)를 막지 못했다. 아시아 최고의 센터로 곱히는 하다디는 23점 7리바운드 8어시스트의 전천후 활약을 선보이며 한국의 골밑을 유린했다. 한국의 기둥인 라건아는 37점 12리바운드로 개인 기록에서는 하다디를 능가했지만 영양가 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못했다. 하다디는 혼자 무리하지 않고도 영리한 팀플레이로 동료들을 십분 활용하는 노련미를 보여줬다.

반면 라건아는 경기 내내 동료들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한국은 이날 슈터진이 이란의 수비에 꽁꽁 묶이며 외곽에서 활로를 찾지 못했다. 한국은 전반까지 단 한 개의 3점슛도 성공시키지 못했고 후반에야 겨우 4개가 터졌으나 이미 점수차가 벌어지고 경기 흐름이 넘어간 뒤였다. 전준범-허일영-허웅-이정현으로 이어지는 포워드라인은 도합 8득점을 합작하는데 그쳤고 3점슛은 한 개도 기록하지 못했다. 차라리 화끈하게 슛이라도 던져봤으면 몰라도 한국은 이날 이란의 수비에 막혀 3점슛을 14번밖에 시도하지 못할 정도로 찬스 자체를 만드는 데 애를 먹었다.

수비 면에서도 아쉬움이 컸다. 하다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란의 기본적인 픽앤롤과 하이 로우 게임에 대한 대처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 필리핀과의 8강전에서 보여준 다채로운 변형수비나 경기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전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높이에서 밀린 한국은 박스아웃에도 실패하며 무수한 공격리바운드를 허용하며 이란에 주도권을 내줬다. 사실상 한국에서는 라건아만 외롭게 홀로 이란 선수들과 1대 5 대결을 하는듯한 모양새였다. 지난 필리핀전에서 NBA 스타 조던 클락슨의 원맨쇼를 팀플레이로 제압했던 한국농구가 이란전에서는 오히려 입장이 바뀌어 '라건아의 원맨팀'으로 전락한 느낌을 줬다.

2년 연속 이란에 가로막힌 농구대표팀

드리블하는 이정현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이정현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드리블하는 이정현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이정현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허재 감독은 이번에도 '국제대회 징크스'를 깨는 데 실패했다. 국내무대에서 '농구 대통령'이라는 불리우며 슈퍼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허재 감독이지만 국제대회에서에서는 유독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현역 시절 허재는 아시아무대에서 아시안게임 각 3회 출전(1986, 1990, 1994), 아시아선수권 6회 출전(1985~1991, 1995, 1999)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정상에 올라보지 못했다. 한국이 우승을 차지했던 1997 사우디 리야드 아시아선수권(현 FIBA 아시아컵),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허재 감독이 현역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감독이 되어서도 징크스는 이어졌다. 허재 감독은 첫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2009년 텐진 아시아선수권에서 7위로 한국농구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데 이어 2011년 우한 대회와 2017 레바논 대회에서는 각각 3위에 올랐고 이번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도 준결승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아직까지 우승은커녕 단 한번도 결승조차 오르지 못했다. 작년 아시아컵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2년 연속 이란에 가로막힌 것도 뼈아프다.

더욱 아쉬운 부분은 이번 농구대표팀이 경기력이나 팀의 완성도 면에서도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이다. 허재 감독이 대표팀 전임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지난 2017 아시아컵에서 한국은 짜임새 있는 수비와 3점슛을 앞세워 당초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뒀고 '한국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경기력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오세근, 김종규, 이종현 등 그동안 한국의 기둥을 이루던 핵심 빅맨들이 대거 부상으로 이탈하며 높이가 크게 약해졌다. 양희종-양동근-조성민-김주성-문태종 등 2014 인천 대회 우승주역이자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도 은퇴하거나 노쇠하여 대표팀을 떠났다. 귀화선수 라건아의 합류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전력은 인천 대회나 작년 아시아컵보다 오히려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였다.

허재 감독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전급 선수들의 줄부상이라는 악재가 있었지만 이를 감안해도 대표팀은 만회할 수 있는 호재 또한 충분히 있었다. 라건아는 이번 대회를 통하여 아시아무대에서도 통하는 정상급 빅맨임을 증명했다. 또한 허재 감독은 전임감독이라는 장점을 활용하여 새로운 선수들을 점검하고 대체자원을 모색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대진운과 일정 역시 역대 아시안게임에 비교할 때 수월한 편이었다.

이번 대회 준결승 패배의 아픔을 교훈으로 삼아야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허재 감독이 보여준 것이라고는 라건아에게 의존하는 원맨팀일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김선형의 돌파와 슈터진의 외곽슛이 터지는 날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그저 라건아만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는 양상이 반복됐다. 국내 선수들이 들러리처럼 외국인 선수 한 명만 바라보고 있는 'KBL식 농구'를 그대로 대표팀에 복사해온 것에 불과했다.

라건아 '덩크슛'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라건아가 덩크슛을 하고 있다.

▲ 라건아 '덩크슛'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라건아가 덩크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냉정히 말해 한국은 이번 대회 준결승에 올라올 때까지 사실상 제대로 된 강팀을 만나지 않았다. 그나마 8강에서 만난 필리핀은 클락슨이라는 NBA 스타 한 명의 존재 때문에 과대평가되었지만, 호주와의 농구월드컵 예선전에서 벌어진 난투극으로 주축 선수들 다수가 징계를 받은 탓에 정상 전력이 아니었고 조직력보다는 선수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급조된 팀이었다. 한국은 그러한 필리핀을 상대로도 종반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사실상 이번 대회에서 '양강'으로 꼽히며 우승을 다툴 만한 팀은 이란-중국 정도에 불과했고, 실제로 이란을 준결승에서 만나자마자 한국의 진짜 실력은 밑천을 드러냈다.

농구대표팀은 선수구성 면에서도 의문부호를 자아냈다. '아들 발탁 논란'까지 일으키며 데려갔던 가드 허훈을 비롯하여 백업 빅맨인 강상재, 김준일 등은 중요한 경기에서 거의 기용도 되지 못했다. 장남인 허웅도 식스맨으로 간간이 출전했으나 노마크 3점슛을 연달아 놓치는 등 큰 활약은 없었다. 주전과 백업의 실력차가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애초에 제대로 써먹지도 못 할 선수들을 데려간 것은 그저 엔트리 낭비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재 감독은 지난해 아시아컵의 성공 이후 보수적인 팀 운영을 고집하며 KBL에서 성장세를 보였던 새로운 선수들의 발굴과 수혈에 인색했다. '아들 발탁' 논란 등 외부의 비판에 대해서는 직접 해명을 기피하거나, 국가대표 경기력 향상 위원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등의 모습으로 일관했다. 결과적으로 경기 흐름에 변화를 줄 만한 다양한 스타일의 선수들을 발탁하지 못한 탓에 이번 대표팀은 그저 '라건아 GO' 혹은 '양궁농구' 외에는 해답이 없는 단조로운 팀으로 전락했다. 이란 등 상대팀들은 한국이 내놓을 수 있는 전술과 선수구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라건아라는 역대급 빅맨을 보유하고도 2006년 도하 대회(5위) 이후 12년 만에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경기력 면에서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을 주거나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들을 발굴하여 세대교체를 기약한 것도 아니었다. 이란-중국 등 경쟁팀과의 전력차는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 허재 감독이 이번 대회의 실패를 통하여 뼈저린 반성과 대표팀 운영에 변화를 약속하지 않는다면 농구협회가 전임감독제를 도입한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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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아시안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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