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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우리 몸이 증거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들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회’에 참석해 조속한 피해보상과 가해 기업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우리 몸이 증거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들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회’에 참석해 조속한 피해보상과 가해 기업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왕종현 씨의 몸이 흔들렸다. 추도사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목소리를 꾹꾹 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고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병원에 마음대로 다닐 수 있도록 해주신다고 약속한 지 일 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다시 우리는 목청을 높여 원통하고 억울하다고 외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암담하기만 합니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다시금 없어져야 할 사회적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란 주제로 제7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2011년 8월 31일 정부가 '원인 미상의 간질성 폐렴은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고 발표한 뒤 매년 열려왔다. 이번 주최는 가습기살균제피해자단체협의회, 주관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와 정의당 이정미·추혜선 의원이다. 후원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 환경부가 맡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이날 결의문에서 피해 인정 범위 확대와 정부의 지원 강화 등을 촉구했다.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수만 50만 명"이라며 "전대미문의 독성 나노물질 환경재난 참사를 단순 사고·사건만으로 보는 대한민국 정부는 각성하라"라고 했다. 이어 "참사 초기 폐섬유화 외에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성이 낮거나 거의 없다고 단정해 피해 규모를 축소하고 결과적으로 가해기업의 편에 섰던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은 각성하라"라고 말했다.

이들은 청와대는 물론 환경부와 복지부 등 모든 정부 관련 부처와 각 위원회 소속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3자 보고회 정례화도 요구했다. 또 "발암물질인 동시에 뇌를 비롯해 전신·면역·유전·생식·신경독성을 지닌 가습기 살균제 나노물질로 발생한 모든 관련 질환을 공식 피해로,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하거나 건강상 피해 입은 모든 이를 정부 구제 대상자로 인정하라"라고 했다.

피해자들은 검찰의 각성도 요구했다. 이들은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생산업체 옥시를 수사하기까지 5년이나 걸린 것을 두고 '증거 인멸을 도운 셈'이라고 비판했다. 또 옥시 영국 본사와 다른 독성물질이 검출된 가습기 살균제를 생산한 SK케미컬, 애경은 수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특검을 요구했다.

이들은 옥시를 변호한 법률사무소 김앤장도 비판했다. 이들은 "김앤장은 옥시가 이 엄청난 참사를 은폐하려는 것을 도왔으며,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는커녕 짓밟으려 했다"라며 "옥시는 최소한의 처벌을 받았으나 김앤장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전대미문의 참사... 단순 사고·사건 아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회 참석한 김은경-우원식-김관영-이정미 31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피해자대회에 참가한 김은경 환경부 장관(왼쪽부터)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주요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헌화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들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회’에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리며 헌화하고 있다. ⓒ 유성호
이날 행사에는 김은경 환경부 장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장완익 가습기 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등도 참여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돌이켜보면, 정부가 지켜야 할 어린이, 임산부들을 중심으로 최악의 환경 비극이 일어났으나 그 대응이 늦었고, 정부차원의 지원도 너무 소극적이었다"라고 인정했다. 이어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발생한 원인과 사고 이후 대응 과정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환경 안전에 무심하고 취약한지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점 보완과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김 장관은 "의학적 근거가 확보된 질환은 특별 구제 대상에서 우선 지원하고, 성인 간질성 폐질환 등도 신규로 지원하겠다"라며 "증빙 자료가 없더라도 질환별 금액을 추정하여 지급하는 등 피해자 입장에서 세심하게 지원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라고 했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한 관련법 개정을 준비하고, 안전관리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정부가) 제도를 엉성하게 만들어서 기업이 탐욕을 채울 수 있는 여지를 줬다"라며 "국가가 책임을 피하고 뒤로 미뤘다,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구제급여는 신청자의 10.4%밖에, 특별구제 계정은 전체 1250억 원 중 4.25%(지원인원 135명)밖에 지원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우 의원은 "과학이라는 굴레에 묶여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이 참으로 답답하다"고 했다.

이정미 대표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는 "흡입하면 폐가 굳어서 죽을 정도의 독성물질이 과연 폐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대상을 너무 좁게 해석했다."라고 했다. 그는 "원료물질을 생산한 SK케미칼은 왜 검찰 조사를 하지 않았을까"라며 "사회적 참사 특조위가 이 두 가지를 진상 규명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1부 추모행사에 이어서 2부에선 피해자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피해자들은 결의문을 낭독하고 끝으로 이렇게 외쳤다.

"피해자가 증거다. 우리 몸이 증거다"

한편 31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피해를 신청한 사람은 총 6072명이며, 이 가운데 사망자는 1341명이다.
산소호흡기로 살아가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회’에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이 참석해 조속한 피해보상과 가해 기업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목소리 들어주세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회’에서 학생들이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자 구제, 대책마련 등 요구하는 글을 적고 있다. ⓒ 유성호
태그:#가습기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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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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