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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장애등급 5급인 50대의 A씨. 그는 경력단절로 취업이 쉽지 않아 생활고를 겪었다. 궁리 끝에 주민센터에 찾아가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사정을 들은 주민센터 직원은 서류를 건넸다. 

A씨가 받아든 서류는 못해도 5장은 넘었다. 서류에 써야 할 내용을 보니 금융정보 공개에 동의해야 한다는 란이 여러 개 있다. 그 여러 개의 동의란에는 이미 40여 년 전 이혼해서 따로 사는 어머니의 금융정보 공개에 동의서를 받으라는 항목도 있었다. A씨는 기가 막혔다. 장애가 있고 취업이 되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려고 했더니 헤어진 부모님의 금융정보 공개에 동의서를 받아오라니.

A씨는 50대의 결혼한 성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모가 그의 부양의무자다. 스무살만 되면 어엿한 성인이고 투표권도 있는데 나이 50에 부양의무자가 있고, 그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를 공개하는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니, 납득하기 힘들 일이라 여겼다. A씨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류를 던져버렸다고 한다.


10월부터 주거급여 부양의무제 폐지... 이것의 의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3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4거리에서 '부양의무제 폐지'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3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4거리에서 '부양의무제 폐지'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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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야기는 기자가 2012년 5월 쪽방촌 공동체 활동을 할 때 상담했던 분의 사연이다.

부양의무제란, 일정한 재산과 소득이 발생하는 가족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그동안 정부는 중위소득의 30∼50% 이하 가구에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등을 지원했다.

하지만 소득인정액이 수급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직계가족 등 부양의무자가 일정한 소득·재산이 있으면 실제 부양을 받지 못해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법률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가족과 인연을 끊어야 하며 근로능력을 평가받아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장애인계는 2012년 8월 25일부터 2017년 9월 5일까지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광화문 지하철 역사에서 부양의무제 폐지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는 농성을 했다. 정권이 바뀌자 보건복지부는 오랫동안 '적폐'로 지적받은 부양의무제의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을 찾았다. 그리고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 탈시설'을 약속했다. 현장 농성자들은 그 약속을 믿고 1842일간의 광화문 농성을 중단했다.

올해 10월부터 주거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제가 폐지된다. 재산이 있는 부모가 있거나, 소득이 있는 자녀가 있어도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급 대상 기준은 소득과 재산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소득인정액으로 판단한다. 기준 중위소득의 43% 이하인 가구이며, 2인 가구의 경우 월 소득인정액이 122만 원, 4인 가구는 194만 원 이하인 경우에 해당된다. 주거급여 신청은 8월 13일부터 9월 28일까지 주소지 관할 각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하면 되고, 선정이 되면 10월 20일부터 받을 수 있다.

정부는 2019년부터 생계급여 수급자에 대한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기로 했고, 의료급여 부양의무제는 2022년에 폐지하기로 했다. 언론은 이를 '단계적 폐지'라 명명했다.

오랫동안 부양의무제의 족쇄에 걸려서 형편이 어려워도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부양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국가는 모른 척 했던 문제가 하나씩 풀리고 있다. 그만큼 지난한 싸움을 통해 이룬 결과이기에 의미가 크다.

홈리스에 자활 의지를 불어넣어줄 듯

주거급여를 받으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추워지기 전에 이들도 아무제약 없이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서울역에 모여 있는 노숙인 주거급여를 받으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추워지기 전에 이들도 아무제약 없이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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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급여 부양의무제 폐지로 가장 피부에 와닿는 혜택을 받는 분들은 홈리스(Homeless)일 것이다.

"그동안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이 안 되신 분들이 많았어요. 가족관계 단절 사유서를 내도 인정을 받지 못했고, 실제로 가족이 나 몰라라 해도 구상권 청구가 잘 이뤄지지 않았어요. 사회보장제도가 국민의 권리지만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구청에서 봐준다는 형식으로 접근했기에 시혜적 요소가 포함되었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부양의무자 기준만 아니면 수급을 진행할 수 있는 케이스는 엄청 많거든요. 주거급여가 저희 분야에는 수급을 가능케하는 중요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거주지가 없거나 일정치 않아 주거지원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딱이죠. 

10월부터 주거급여도 부양의무자 기준이 없어지고, 중위소득의 43% 1인 71만9005원 이하의 소득이 있는 경우 누구나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죠. 자활근로를 하시면서 주거급여를 받으시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첫 달은 저희 주거지원을 통해 고시원이나 쪽방에 입실하고, 주거급여 신청 및 수급 신청을 한다면 저희가 지원할 수 있는 케이스는 훨씬 많아질 것 같습니다."

노숙인 관련 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의 말이다. 주거급여를 받아 안정된 주거지에 정착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확연히 달라진다.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는데도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 달에 6만원으로 생활... 그 이유

박정희때 지은 아파트라고 하니 지은 지 50년이 돼간다. 이 아파트에 홀로 살고 계신 어르신을 만났다.
▲ 새마을 아파트 외관 박정희때 지은 아파트라고 하니 지은 지 50년이 돼간다. 이 아파트에 홀로 살고 계신 어르신을 만났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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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22일, 서울역 인근의 쪽방촌, 지은 지 50년이 넘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82세 홀몸 어르신을 만났다. 그곳의 월 임대료는 14만 원. 고령이고 거동이 불편해 일을 할 수 없다. 아무런 소득이 없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이유는 아들이 2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아들과 떨어져서 산 지 10년이 돼 가요. 아들이 2명 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부담주기 싫어서 나왔어요. 나이가 많아서 일을 못 해 소득이 없으니 살기 힘들죠. 14만 원이나 되는 월세는 꼬박꼬박 내야 하고... 작년 하고 재작년에 수급을 신청하려고 두 번이나 동사무소에 갔었어요.

그때마다 아들들이 있어서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까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월세만 지원해줘도 노령연금이 나오니까 근근이 살 수 있죠. 먹는 것은 주변에 있는 교회나 단체에서 가져다 주는 도시락을 먹으면 되니까 식비는 많이 안 들어요."

서울역 인근에 사는 홀몸 어르신. 어르신은 "쪽방촌 주변의 비영리단체와 교회에서 도시락을 주기도 하고, 아플 때 약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라고 말했다.
 서울역 인근에 사는 홀몸 어르신. 어르신은 "쪽방촌 주변의 비영리단체와 교회에서 도시락을 주기도 하고, 아플 때 약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라고 말했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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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르신은 아들들이 있어도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뉴스를 보고 사흘전에 주민센터에 가서 급여를 신청했다고 한다. 11월에나 급여가 나온다고 한다. 지금 내는 월세만큼 받을 수 있는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고. 어르신은 그동안 20만 원의 노령연금을 받아 월세 14만 원을 내고 나머지 6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 믿기 힘든 일이다. 아무리 주위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월 6만 원으로 어떻게 살았을까? 아픈 곳도 많다는데 약값은 어떻게 해결했을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했다.

동네 곳곳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흔히 본다.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갖다주고 받는 돈이 고작 1만~2만 원이라고 한다. 격동기의 한국사회를 이만큼 키우는 데 기여했던 분들이다. 국가는 그분들에게 20만 원의 '노령연금'을 주는 걸로 모든 책임을 다한 듯이 한다. 9월부터는 노령연금도 20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오르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르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왜냐면 노령연금도 추가소득으로 잡혀서 수급비에서 25만 원이 도로 삭감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생색내기 복지는 없어야 한다.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세금을 안 내려고 발버둥 치고 없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거리를 누비며 발품을 팔아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회, 이 불평등한 사회에서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주거급여 14만 원을 받게 돼 마음이 놓인다는 어르신의 표정이 저녁 먹는 내내 떠올랐다. 자식과 떨어져 사는 쓸쓸함을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과 바꾼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 이것은 한국사회의 복지 수준을 보여주는 좌표다.


태그:#부양의무제, #주거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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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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