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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강호순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한테 진짜 초미의 관심인데, 그래서 지난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까 그런 강력 범죄 범인에 대해서 신상·얼굴 공개를 해야 된다가 한 64~65% 되고 그것을 반대하는 게 한 17~18%인데, 그러면 64~65%라는 것은 대다수 국민이 공개를 해야 된다는 것이고..."

세 가지 사실을 알려주는 발언이다. 그때, 범인 신상·얼굴 공개가 여론조사를 했을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였다는 점 하나, 그 전까지는 얼굴 공개가 없었다는 점 하나, 그랬기에 '누군가' 그러한 논란을 촉발시켰다는 것 하나. 2009년 2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노철래 당시 친박연대 의원의 발언이다.

이 발언을 돌아보게 만든 발표가 5일 있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당시 용산 참사를 덮기 위해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활용하라고 청와대가 경찰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 담당관에게 강호순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선도자

 
2009년 1월 31일 '조선일보'는 1면을 통해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했다.
 2009년 1월 31일 "조선일보"는 1면을 통해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했다.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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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31일이었다. 그 날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강호순 얼굴'이었다. 그 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강호순의 얼굴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조선일보>는 당시 '독자 여러분께 - 범인 사진을 공개합니다'를 통해 "범죄 방지의 공익"을 앞세웠고, <중앙일보>는 "흉악범의 인권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이틀 뒤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인권위원회를 조롱하는 내용의 만평을 싣기도 했다. KBS와 SBS도 곧 이들의 뒤를 따랐다.

2000년대 들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얼굴 공개를 둘러싼 논란은 매우 뜨겁게 불붙었다. 덕분에 "용산 사태를 통해 촛불 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란다"면서 "증거물 사진 등 추가 정보 공개"를 경찰에 요청한 의도대로 '프레임'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다 2월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이런 발언이 나왔다.

"오늘 오마이뉴스에는 청와대가 용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을 적극 홍보할 것을 지시한 이메일 공문을 입수해 공개했습니다. 이 문건을 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특히 '용산 참사를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라는 표현을 보면서 말문이 막힙니다. 도대체 이들이 사람입니까?"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관련기사] "용산사태 대응 위해 '연쇄살인' 적극 홍보"

그리고... 국무총리에게 날아간 질문 "청와대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한승수 전 국무총리. 사진은 2009년 2월 13일 정치 분야에 관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는 모습.
 한승수 전 국무총리. 사진은 2009년 2월 13일 정치 분야에 관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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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현 : "그래서 '청와대에 물어보겠다'하셨는데 물어보니까 뭐라 하던가요?"

한승수 : "청와대에 알아본 결과, 제가 정무실장을 통해서 받은 보고 내용은, 청와대 내에서 이와 관련해서 논의한 바가 없다는 것하고, 또 국민소통비서관이라는 사람이 경찰을 상대로 무슨 지침이나 문건을 보내는 기관이 아니라는 보고입니다. 다만 관련된 직원은 개인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아마 제공했던 모양인데...(하략)"


그 이상은 다들 모른다고 했다. 2009년 2월 13일, 국회 본희의장에서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는 그러했다. "청와대에서 보낸 걸 저희가 조사할 입장은 아니라는 것은 이해주기 바란다"고도 했다. 열흘 후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또한 그러했다. 그는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일개 행정관이 한 행위라고 보느냐'는 당시 서갑원 민주당 의원 질문에 "그 이상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기 참 어렵다"고 답했다.

적극적인 '수비수'도 있었다. 같은 해 2월 23일, 조문환 한나라당 의원은 권태신 당시 국무총리 실장과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다.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는 청와대 이메일이 당시 어떻게 작동했는지 보여주는 질문이기도 했다.

조문환 : "강호순 사건 같은 경우에는 연쇄살인 보도를 문제삼는 5일 동안에 4번 결혼하고 이혼하고 그다음 보험금 수령 문제하고 언론을 통한 사진 공개, 시신 매장 장소가 골프장 변경 이런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만 해도 네 번째 처나 장모를 살해했다. 그 다음 농기구에 다른 2명의 여성의 유전자가 추가로 발견되더라라는 연속적인, 오늘만 해도 이래 이슈가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이런 이슈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기사화시키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렇죠?"

권태신 : "예."

조문환 : "이런 걸 가지고 '과다 홍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인 속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이 그렇게 개판입니까?"

그날 권태신 당시 국무총리 실장은 "지금 언론이 뭐 그렇게 정부가 하라는 대로 갈 팀이 아니겠지요"라고도 했다. 이 말대로 실제 당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훨씬 앞서 갔다. 결과적으로 당시 청와대의 뜻은 120% 달성됐다. 백원우 당시 민주당 의원이 2009년 2월 13일 한승수 국무총리를 다그치며 했던 이 발언은 '오늘'의 경찰청 진상조사위 발표가 이제 시작에 불과함을 보여주고 있다.

"연쇄 살인 사건 담당 형사를 인터뷰하고 사건 해결에 동원된 경찰관과 전경들의 수기를 보도하도록 유도해서 용산 참사의 그런 아픔들을 왜곡시키라고 그렇게 지시한 것이 대통령의 비서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 비서실이 그렇게 개판입니까? 청와대 행정관이 자기 상급 비서관과 상의도 없이 이런 일을 경찰한테 마구 지시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대통령의 비서실이 엉망입니까? 이렇게 대통령 비서실이 기강도 없단 말입니까? 명령 체계도 없고 지휘 체계도 없는 곳이란 말입니까?"

 
용산참사 유가족과 생존 철거민들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석기 전 경찰청장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용산참사 유가족 "이명박, 김석기 처벌하라" 용산참사 유가족과 생존 철거민들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석기 전 경찰청장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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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용산참사, #강호순, #조선일보, #중앙일보,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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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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