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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살았는데 어느덧 중년입니다. 기대했던 40대, 50대의 모습과 전혀 다른 지금 내 모습이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불안하니까 중년'이라는 말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 중년들의 불안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드라마 <미생> 스틸컷
 드라마 <미생> 스틸컷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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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도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얼마 전에 새해 인사를 건넸나 했는데 벌써 송년회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세상에 흐르는 수학적 시간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겠지만 마음에 흐르는 심리적 시간은 유독 내게서만 빨리 흐르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은 나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만나는 친구마다 비슷한 얘기를 하곤 한다. 비단 내 주변만 그럴까? 아마도 40대 말에서 50대로 넘어가는 즈음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왜 그럴까? 이 또래의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특히 직장에서 효용을 다해간다는 신호가 뚜렷하게 다가오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당신이 탄탄한 궤도에 오른 사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이거나 정년이 보장된 직장인이 아니라면 이러한 위기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직장에서 효용이 다한다는 건 세상에 내쳐진다는 의미. 만약 그 사람이 40대에서 50대의 남자 가장이라면 군대에 다시 가는 꿈보다 무서운 악몽일 것이다. 현실에서 꾸는 악몽.

뭐가 그리 무섭고 두려울까? 아마 우리가 보고 자라며 알게 된 '은퇴 이후의 삶은 이래야 한다'는 관습과 지금 펼쳐지는 사회의 현실이 달라서 아닐까? 그 관습은 사회 통념이자 그 사회를 끌어온 오랜 시스템이다. 예전에는 누군가 은퇴하면 그들의 2세들이 어느 정도는 노후를 지탱해줬다. 2세들을 어릴 적부터 양육하고 학교에 보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보살핀 이유가 노후를 위한 암묵적 계약이었음을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의 삶을 보며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은 이전 세대가 살던 사회와는 다르다. 은퇴하더라도 내가 나를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게 대다수 우리 세대에게 닥친 미래일 것이다. 배우자는 물론 어쩌면 학자금 부채에 시달리며 변변한 직장도 얻지 못하는 자녀들까지. 결혼으로 독립시키기는커녕 자녀와 함께 늙어 갈 수도 있다. 물론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악몽이 당신의 미래에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나도 그즈음 그러한 몽상을 하며 여러 번 몸서리친 기억이 있다. 그동안 뭐하며 살아왔는지도 생각해보았다. 요약해 보니 꾸준히 뭔가를 배우며 살았다. 10대에서 20대에는 학교에서 뭔가를 배웠고 30대에는 직장에서 뭔가를 배웠다.

뭘 배웠을까를 생각해봤다. 세상이었다. 회사와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니 세상을 다 배웠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40대 초반에 새로운 세상에 도전했다. 숨이 쉬이 가빴고 길도 잘 잃었다. 처음 오르는 낯선 산처럼. 40대 중반 즈음에야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내가 겪어야만 했던 세상이 매우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숨을 돌리니 앞이 보였다

숨을 고르며 진지하게 삶을 생각해보았다. 가장 큰 깨달음은 인생은 길어졌다는 것. 인간의 수명이 길어져 오래 사는 건 물론 몸과 정신도 건강한 상태에서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손주 재롱을 보며 살았을 나이에 우리 세대는 생업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더 늙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만 한다.

40대 후반 고민이 한창일 때 공부를 하면 어떨까 하는 주위 이야기에 귀가 쏠렸다. 당시 나는 몸담고 있던 업계를 대표해 모 정부 기관에 들어가 정책 수립과 규제 개편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담당 부처의 공무원과 정책 반영을 협의하고 국회의원과는 법안 발의를 추진하는 일이었다. 나름의 성과가 있었지만, 아쉬움도 많았다. 이론과 실제가 다름을 느꼈던 것. 문제를 직접 풀어보라는 주위의 권유와 추천으로 모 대학의 IT정책전문대학원에 들어갔다.

40대의 마지막 줄에 걸렸던 나는 아마도 최연장자 그룹이 아닐까 예상했는데, 나이순으로 줄을 세우면 딱 중간이었다. 20대부터 60대 초반까지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사람들이 모였다. 젊은 층들은 정부 부처나 그 산하 기관에서 일을 했다.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학생들은 방송국이나 통신회사 등에서 간부로 있는 직장인들이 많았고.

그들 대다수는 나이만큼 오랜, 거의 30년 가까운 직장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쌓아온 노하우에 이론을 접목하고 싶어 했다. 수업 준비나 발표는 젊은 학생들이 주도했지만, 토론은 만학도들이 이끌었다. 책이나 논문 읽고 이해하는 속도는 느렸지만, 핵심을 파고 문제를 파악하는 건 빨랐다. 교수들도 이들의 경륜과 향학열을 높이 샀다.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내게는 금요일이 없었다. 토요일 아침 9시부터 강의가 있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그 전날부터 준비해야 했다. 덕분에 즐겨 찾던 '불금'의 술자리와 토요일의 산행 모임과는 멀어졌다.

대신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모임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들려주는 미래 계획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전우애를 느끼기도 했고. 정년이 가까워져 오는 학생들은 공부를 무사히 마치면 인생 후반전에 뛸 수 있는 선택지가 한 개 더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한 희망이 모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했던 것 같다.

새로운 동력을 구하라
 
 혹자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녀서 얻은 게 뭐냐고 묻는다. 나는 얻은 게 많았다고 단호히 대답한다.
 혹자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녀서 얻은 게 뭐냐고 묻는다. 나는 얻은 게 많았다고 단호히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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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재학 당시 '미래학' 참고도서로 읽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가 인상에 깊이 남았다. 생물학자 관점에서 미래를 진단한 책이다. 저자는 인생을 1기와 2기(책에서는 '번식기'와 '번식 후기'라는 용어를 썼다)로 나누었다. 예전 세대에게 인생 2기는 은퇴해서 뒷방에 눌러앉을 만큼 육체가 약해지는 시기였다면 지금 세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

그래서 그 변곡점인 40대에서 50대 초반 사이에 2기를 위해 정리하는 시기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 방법론으로 "1기만큼이나 긴 2기 인생을 위해 공부를 하고 제2의 삶으로 넘어가라"라고 제안한다. 그래서 '이모작'이라는 단어를 썼다.

나아가 기존의 교육제도가 인생 1기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이니 인생 2기를 위한 교육 시스템도 정규교육과정으로서 고민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요즘에 직업학원에서 지원금 얻으려는 방편으로 이루어지는 기술 교육이 아닌 좀 더 큰 그림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을 지인들에게 소개하니 다들 공감했다. 

혹자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녀서 얻은 게 뭐냐고 묻는다. 나는 얻은 게 많았다고 단호히 대답한다. 변화도 많았다. 가장 큰 변화는 몇 년간 학교에 다니며 내 몸과 마음, 특히 머리가 달라진 걸 느꼈다. 그동안 일하는 몸과 머리였다면 이제는 공부하는 몸과 머리로 바뀌었다고 할까.

물론 예전에도 새로운 걸 배우고, 고민하고, 생각도 짜내고 했지만, 이제는 현실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그걸 어떻게 현실에 적용해야 하는지도.

어쩌면 이런 변화가 나의 인생 후반전 혹은 인생 2기에 힘을 낼 새로운 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살아온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살아가는 나의 미래가 올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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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살던 아파트를 떠나 산 아래 옥상집에 사는 경험과 동화 공부를 하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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