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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들이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지난 18일 한국 생활과 법에 대해 교육을 받고 있다.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들. 사진은 지난 6월 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한국 생활과 법에 대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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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밝혀둔다. 나는 난민전문가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내 책상 위에는 '난민불인정 결정 통지서'가 놓여 있다. 지난 5월 중순 제주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스물 초반의 예멘 친구 A에게 주어진 결정문이다.

지난 17일, 법무부는 458명의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에 대한 심사결과를 발표했다. 그중 339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 34명은 불인정, 85명은 보류 결과를 받았다. 다시 말해 난민으로 인정된 이는 아무도 없다. 0명이다.

지난 6월 중순 이후 제주에 다섯 번을 오가며 만난 A. 처음 만났을 때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두리번거리던 눈이 아직도 내 눈에 선연하다. A가 받은 '난민불인정 결정 통지서'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수록돼 있다. 
 
"난민법상 난민인정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나, 인도적 측면을 고려하여 '인도적 체류자'로 결정. 신청자는 국제회의 자원봉사로 일한 이유로 후티반군의 위협이 있어서 신청. 하지만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음. 하지만 내전이 장기화하여 귀국 시 생명과 신체에 현실적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인도적 체류를 허가함."

지난 6월 중순, 언론 보도를 통해 예멘 난민에 대한 실상을 접하게 된 후, 예멘이라는 나라와 난민이라는 주제에 관련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접했다. 당시 두 가지가 필자에게 의문으로 와 닿았는데, 하나는 4월 말로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에게 출도금지조처를 내려 육지로 못나가게 한다는 조처와, 6월부터는 아예 예멘인을 무비자로 입국하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사실이었다.

지구상 가장 지옥 같은 나라
 
 지난 10월 24일, 예멘의 수도 사나의 한 학교. 한 선생님과 학생이 학교에난 문 공간 사이로 밖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예멘의 수도 사나의 한 학교. 한 선생님과 학생이 학교에난 문 공간 사이로 밖을 바라보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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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러한 의혹은 프랑스 기자가 예멘에 들어가 다큐멘터리를 작성한 50분의 영상을 독일 TV를 통해 보면서 차츰 풀렸다. 나라 전체가 사우디의 미사일 공격으로 난리가 나고, 부족간의 갈등으로 총격전을 벌인다. 이러한 아비규환의 상황이 현존하는 지구상의 가장 지옥과 같은 나라가 예멘이라고 유엔은 적시한다. 독일 신문을 통해 적나라하게 서술된 예멘 사태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한국 정부의 태도와 제주도 지자체의 반응에 의혹을 갖게 됐다.

하지만 필자의 가슴을 때린 것은 일탈한 수구세력들의 '근거없는 난민' 주장과 '무슬림에 대한 혐오'였다. 난감한 상태로 며칠을 지내다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굶고 있는 '예멘 친구들을 위한 한끼 5000원 1000끼 모금'을 시작했다. 6일 만에 채워진 사랑의 마음을 들고 찾아가 A와 예멘친구들에게 전해줬다. 

내전으로 인해 혼비백산하여 온 젊은 친구들의 모습과 헤진 옷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밤늦도록 그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대화를 하며 '예멘의 세월호'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17세부터 36세까지의 젊은 나이에 무국적자가 돼 부평초처럼 세계를 떠도는 신세가 된 이들을 보며 눈물이 났다. 그날 그들은 가진 돈이 다 떨어져 이젠 노숙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쉼터지원 모금을 해 얼마 후 다시 방문, 누울 자리에 도움을 줬다. 그렇게 지난 넉 달간 다섯 번을 제주를 오갔다.

제주에 온 예멘사람들이 바라는 것 
 
제주 난민쉼터에 온 예멘난민들 지난 여름 제주 난민쉼터에 이층침대를 기증하다
▲ 제주 난민쉼터에 온 예멘난민들 지난 여름 제주 난민쉼터에 이층침대를 기증하다
ⓒ 홍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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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그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나라가 정상화돼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란다. 부모형제와 아내와 자식을 모두 남겨둔 채 동방의 끝자락까지 밀려온 이유는 내전이다.

내전을 통해 나라가 멈췄고, 경제·정치·종교·교육·의료 등 모든 사회적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정부군과 반군의 전장에 끌려나가 죽는 것을 이들은 원치 않았다. 가족들의 일용할 양식을 이국땅에서 모아 보내려고 온 것, 이유는 간명했다. 이러한 사유가 난민 사유에 들어가지 않아 난민불인정 통지를 받은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필자는 이주민으로 독일에서 10년간 산 적이 있다. 유학을 갔지만 독일 체류 내내 이주노동자처럼 노동하면서 지냈기에 이주노동자들의 애환을 조금은 안다. 하여 한국에 온 후 5년여를 이주민들을 위한 센터에서 전문적으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자신이 출생한 나라를 벗어나 타국에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은 '체류허가'다. 필자도 가난한 유학생이었기에 항상 출입국청으로부터 의심을 받았다. 한 번은 달랑 3개월의 체류허가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비참함은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곤 느낄 수 없는 '존재의 비참함' 그 자체였다.

이번에 난민신청을 한 예멘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임계점에서 탈출한 이들이다. 어디든 운신을 하면서 생을 이어가고 고향에 있는 이들의 양식을 벌기 위해 나온 이들이다. 문제는 체류허가다. 한국에는 이렇게 자신의 국적국에서 공포나 박해 위험으로 벗어나 난민신청을 한 이들이 1994년부터 2018년까지 4만2009명에 이른다. 그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들은 고작 849명(4.0%)이다. A처럼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이들은 1540명(7.6%)이다.

난민 때문에 유럽이 무너진다? 독일을 보라
 
독일 난민 센터 2015년에 방문하다 2015년 90만명의 난민을 수용한 독일에서 설명을 듣다
▲ 독일 난민 센터 2015년에 방문하다 2015년 90만명의 난민을 수용한 독일에서 설명을 듣다
ⓒ 홍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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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세계적으로 난민 러시가 불어닥친 2015년에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필자가 공부했던 도시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했는데, 필자와 함께 디아코니아학(개신교 사회실천학)을 공부했던 독일 친구가 난민보호소 대표를 맡고 있어서 자세히 안내를 받은 적이 있다.

2015년 한 해에만 90만여명의 난민들이 몰려왔는데, 그 독일 친구가 맡고 있던 난민보호소는 구(舊) 미군부대였다. 필자는 그곳에서 3000여 명의 난민들을 수용해 체계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2016년 68만 명이 난민신청을 해 26만 명이, 2017년 60만 명이 난민신청을 하여 14만 명이 인정받았고, 한 단계 아래인 '보충적 보호'를 받은 이들이 10만 명, '인도적 체류자'가 4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독일인들의 난민 수용능력과 의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독일엔 140만 명가량의 난민이 존재하는데, 아직도 그들의 난민수용 능력과 의지는 강고하다.
 
혹자는 말한다. 유럽 사회가 난민 문제 때문에 붕괴하고 있다고. 하지만 필자가 접한 독일 사회는 난민에 대한 시민들의 인도주의적 수용 능력이 남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지난 여름, 난민문제로 독일 집권당인 기독민주당(기민당, CDU)과 연정 파트너인 기독사회당(기사련, CSU)이 충돌한 적이 있다. 당시 흥미있는 사건이 기사화된 적이 있다. 두 당 모두 앞에 기독교(Christlich)라는 공통의 단어를 표방하는데, 기사련 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프가 기민당 대표인 현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에게 '난민을 추방하고 난민 수용을 제한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자, 메르켈이 단호하게 '당명에서 기독교를 빼라'고 말한다. 그러자 제호프는 연정을 깨겠다고 응수하다가 타협을 해 조정안으로 대안을 제시해 마무리된 적이 있다. 제호프는 가을에 있게 될 선거에서 극우정당과의 정치적 줄달음에서 난민 문제를 정치 의제로 삼았던 것이다.

정치인의 흥정 사이에 죽어나는 약자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난민대책 국민행동 등 시민단체가 주최한 예멘인 수용 결정 반대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가짜난민 추방'이라고 쓴 손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난민대책 국민행동 등 시민단체가 주최한 예멘인 수용 결정 반대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가짜난민 추방"이라고 쓴 손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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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약자의 생명줄은 정치인들의 흥정물이 되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사이에 항상 피해를 보는 이들은 약자들이다. 기사련의 집요한 공격에 아프가니스탄 난민 67명을 돌려보내게 되는데, 그중 한 명이 자국으로 송환된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준 적이 있다. 

'난민 추방, 그것은 살인이다'는 구호가 떠오른 사건이었다. 선거로 인해 난민 의제를 가지고 공방을 벌였지만 결국 기사련은 이번 가을 선거에서 참패했다. 난민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지닌 녹색당이 이번 선거에서 크게 약진을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필자는 이번 예멘 난민사태가 한국사회에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도록 추동시켰다고 본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독립된 섬처럼 지난 세월을 외부 세계와 절연된 채 살아왔다.

하지만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이제는 이주노동자 100만 명에 전체 외국인들이 200만 명을 상회하는 사회가 됐다. 하지만 이 인구학적 수치는 앞으로 한국 사회의 저출산 경향으로 인해 2030년께 외국인 500만 명 시대가 도래한다는 통계까지 접하고 있다.

이제는 독립된 섬이 아니라 지구상의 여러 이웃들과 소통과 공존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다양성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단일민족이니 순혈주의같은 국수주의적 태도로는 미래의 물결에 적응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지구상에 현존하는 6500만여명의 난민이라는 존재는 앞으로 복합적인 현대사회의 문제로 다가왔고, 현재 우리나라 안에도 3만 여명이 넘는 난민 신청자들이 난민과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철저히 '국외자' '비존재'로 살아간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와 난민연구회주관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난민에 대한 연구보고회 포럼이 있어 참석한 적이 있다. 마지막 정리하는 시간에 어떤 발표자가 말한 게 정곡을 찔렀다. 

"10년 전에 했던 얘기를 똑같이 하고 있다." 

현재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들의 삶도 여러 제약으로 인해 참담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그것이 9명의 연구자들이 말하는 현재 한국에 사는 난민 실태 분석의 결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연설에 답이 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로 공원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이 난민에 대한 차별금지 등을 요구하며 영어로 난민을 환영한다고 쓴 손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로 공원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이 난민에 대한 차별금지 등을 요구하며 영어로 난민을 환영한다고 쓴 손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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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인정자의 처우가 이럴진대, 난민불인정자인 인도적 체류자나 재심을 위한 소송단계에 있는 이들의 삶은 어떠할까. 이번에 인도적 체류자로 통보받은 이들은 339명인데, 이들은 취업허가만 받았을 뿐 지역의료보험을 포함해 4대 보험에서 제외된다. 일부 교육받을 권리, 자유로이 여행할 권리 등 모든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된 채 살아간다. '비인간적'으로 체류한다는 말이다. 1년마다 재심사를 받고 상황 변화에 따라 자국으로 송환돼야 하기에 불안정하게 '견디어내는' 삶이 그들 앞에 놓여 있다.

34명의 단순 불인정 통보를 받은 이들은 어떠한가. 이들은 차후 잠정적으로 강제 송환 대상자들이다. 심각한 우려가 뒤따른다. 아직 결정되지 않고 보류 상태에 있는 이들을 포함해, 이들에 대한 심사 결과는 너무 가혹하다. 정부는 난민협약과 국제 인권법을 준수할 책임이 있다. 34명의 불인정을 철회하고 난민지원제도를 전격적으로 정비해 말로만의 인도적 체류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으로 난민을 '보호'하려는 제도개선이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특히 지난 60여 년의 분단의 장벽을 제거하고 평화와 화해의 프로세스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 통합의 정신처럼 한국의 남북화해는 동북아 평화의 교두보로 이어져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연설은 지금의 과정이 보다 깊은 철학과 에토스에 기반해 진행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에 평화는 자비의 마음과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자어 사랑 '자'와 슬플 '비'의 정신은 무엇인가. 약자에 대한 긍휼과 공감으로 인해 하나되는 마음이다.

필자는 서울의 한 중학교 어린 학생들에게서 다시금 희망과 생명을 본다. 난민신청에서 탈락돼 추방위기에 놓인 친구들의 변호사로 나선 어린 학생들의 마음은 다름 아닌 자비한 마음이 아닐까. 촛불혁명이 정의의 투쟁이었다면, 이제는 약자의 슬픔에 마음이 하나되는 자비의 행진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의와 자비는 대치되지 않는다.
 
평화는 자비의 능선을 넘지 않으면 안 되는 곡선의 모양을 띠고 있으며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세워진다. 난민으로 온 무국적자들의 처지와 공감하는 문화를 확산해 나가자. 평화와 화해, 자비와 사랑, 그리고 공감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길목에 난민은 어쩌면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보물로 우리에게 찾아온 천사들이 아닐까.

필자는 이제 난민심사를 마치고 육지로 향하는 예멘 친구들에 대한 구체적인 도움과 행동을 한국의 시민사회가 추동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바로 친구다. 진정한 마음으로 다가가 웅크린 마음을 펴주자. 상처입은 마음을 어루만져주자. 절망한 마음을 희망으로 채워주자. 그들의 나라에 분쟁이 멈춰지고 오손도손 사랑하는 이들과 재회할 수 있도록 평화의 연대를 구축하자.

그 길이 우리나라가 평화의 교두보로 이 지역에서 우뚝 설 수 있는 관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유럽통합과 평화의 기수인 독일이 난민수용에 인색했다면 어떠했을까. 동북아 평화의 교두보가 되기 위해 이번 예멘 난민사태가 우리에게 준 메시지는 무엇일까. 평화는 자비의 능선을 넘어야 한다. 지구촌 저편에서 이 땅에 나그네로 찾아온 난민들에게 평화와 자비의 친구가 되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홍주민씨는 한국디아코니아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난민, #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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