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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17년은 촛불혁명의 승리로 우리 사회 민주화의 새로운 전기를 맞은 해이고, 내년 2019년은 3.1혁명(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여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서울 동작구를 '동작 민주올레'라는 이름으로 구석구석 탐방하면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탐방은 총 여섯 개 길(대방길, 노량진길, 흑석길, 상도길, 현충원길, 신대방길)로 나누어 진행하며, 코스별로 6~7회에 걸쳐 연재한다. '대방길'과 '노량진길' 연재를 마치고, 이번에는 '흑석길'이다. - 기자말

▶ 코스안내 : ①흑석고개(동양공고·동양공전 터) - ②학도의용병 현충비 - ③효사정문학공원(+심훈생가터) - ④중앙대학교 - ⑤은로초등학교 - ⑥오연상 내과 - ⑦평화의 소녀상 - ⑧조선일보 뉴지엄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반발
 
동작구 <평화의 소녀상> 동작구 <평화의 소녀상>은 2016년 8월 15일 제막식을 가졌다.
▲ 동작구 <평화의 소녀상> 동작구 <평화의 소녀상>은 2016년 8월 15일 제막식을 가졌다.
ⓒ 양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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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성노예 역할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 세워진 조형물이다.

1992년부터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 집회를 진행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집회를 이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염원하며 2011년 12월 14일 수요 집회 1000회째를 맞아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정대협은 지난 7월 11일 정의기억재단과 합친 통합재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로 발전했다.

그런 '평화의 소녀상'이 흑석역 인근에 만들어진 것은 2016년의 일이다.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기만적으로 타결한 게 계기가 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뤄진 한일간의 당시 합의는 제2의 굴욕적 한일협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 합의에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 없이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문제 해결은커녕 거꾸로 문제를 덮으려고 하니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국민의 열망이 지역마다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해 일본의 만행을 잊지 않겠다'는 식으로 표출됐는데, 동작구도 그중 한 지역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이슈화되기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영화 <아이 캔 스피르>(2017), <귀향>(2016) 등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중화하고 이슈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영화 <아이 캔 스피르>(2017), <귀향>(2016) 등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중화하고 이슈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 아이 캔 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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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는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일본군이 '군위안소'를 설치해 점령지와 식민지에서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 동원한 결과 대규모로 발생했다. 

지금까지의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행 당시의 나이가 11세에서 27세에 이르며, 피해자는 대다수가 취업 사기, 유괴, 납치 등의 방식으로 동원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일본의 패전과 함께 현지에 버려지거나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다. 생존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도 험난했지만,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어 귀국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와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6), <아이 캔 스피크>(2017) 등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한국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88년 '여성과 관광문화 세미나'에서 윤정옥에 의해서였다. 윤정옥이 김신실, 김혜원과 함께 '정신대 발자취를 따라'라는 주제로 후쿠오카에서 오키나와까지 답사를 한 후 그 결과를 세미나에서 보고했던 것이다.

이에 여성단체들이 연대해 1990년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하게 됐고, 일본 정부를 향해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관여 사실을 부인했지만,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 최초로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면서 그동안 침묵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자료가 발굴되면서 그 실상이 더 구체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 최대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아쉬움 많은 동작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과정

이런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잊지 말자며 동작구에도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자고 나서는 모습은 얼마나 훌륭한가.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과 달리 동작구 '평화의 소녀상'은 그 건립 과정에서 구민의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전국에 세워진 대부분의 '평화의 소녀상'은 남녀노소, 계급과 계층을 떠난 지역의 광범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런데 동작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 새겨진 동작구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의 참여 단체 수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인 참여자도 소수에 불과하다. 어쩌면 전국에서 참여자 수가 가장 적은 '평화의 소녀상'으로 기록될 가능성도 있다. 지역의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나서 각계각층의 힘을 모으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동작구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의 취지문과 참여자 명단 동작구민들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 동작구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의 취지문과 참여자 명단 동작구민들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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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역 지하철 출입구 뒤편이라는 지금의 장소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다른 지역 '평화의 소녀상'은 대개 사람들의 출입이 많은 광장이나 지역을 대표하는 공원 등에 자리잡고 있다. 

반면 동작구에서는 흑석역 지하철 출입구 뒤편 한가한 곳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지역 주민의 광범위한 참여가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의견수렴 역시 폭넓게 이뤄질 수 없었고, 소수의 목소리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 동작구 '평화의 소녀상'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희구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담는 역할뿐만 아니라, 국민의 보편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업에 특정 정파의 이익을 앞세워 접근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는 셈이다. 
 
흑석동 앞에서 피서를 즐기는 서울시민들(1961) 흑석동 앞 모래사장과 맞은편 노들섬은 서울시민들의 대표적인 피서지의 하나였다.
▲ 흑석동 앞에서 피서를 즐기는 서울시민들(1961) 흑석동 앞 모래사장과 맞은편 노들섬은 서울시민들의 대표적인 피서지의 하나였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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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가 헤엄치던 곳, 흑석동 한강변 모래사장
흑석동 한강변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피서객들은 뱃놀이도 하고 물놀이도 즐겼다. 1959년 당시 11살이었던 전태일(1948~1970)도 흑석동 모래사장에서 헤엄을 쳤다.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몸을 불살라 노동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든 인물이다.
 
당시 용산구 도동에 살았던 전태일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동생 전태삼도 거드린 채 걸어서 한강인도교를 건너 흑석동에 도착했다. 그런데 모래사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전태일 일행은 뜻밖의 상황을 맞는다. 중고등학교 형들한테 그만 옷을 다 빼앗기고 만 것이다.
 
전태일 일행은 알몸으로 한강을 건너 남산 밑에 있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흑석동 한강변은 올림픽대로가 지나가면서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학규는 동작역사문화연구소 공동대표 겸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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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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