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각종 TV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유명 래퍼의 부모가 20년 전 거액의 빚을 지고 해외 도피했다는 사건을 시작으로 부모의 채무 관계가 청산되지 않은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고발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관련 기사 헤드라인을 보던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론에서 '미투(Me too)'를 떠올리게 하는 '빚투'라는 단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연예인 가족의 채무 문제를 두고 '미투' 운동에 빗대어 '빚투'라고 보도한 기사들.

연예인 가족의 채무 문제를 두고 '미투' 운동에 빗대어 '빚투'라고 보도한 기사들. ⓒ 포털 갈무리

 
'빚투'? 비트코인 때문에 빚져서 빚투? 용기 내어 '미투'를 통해 성폭력 사건을 고발했지만 오히려 가해자에게 명예훼손 당해서 거액의 배상금을 물려줘야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신조어인가? '설마 사기 피해에 빗대 생긴 말은 아니겠지'하며 기사를 클릭했으나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일부 언론 및 네티즌들이 연예인들의 빚과 관련된 의혹을 알린다는 뜻에서 '빚투'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다.
 
미투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분노와 용기, 그리고 그들에 대한 사회의 압박과 차별적 시선에 대해 잘 아는 시민으로서 이 단어는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한국 사회에 대한 신뢰마저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금전적 사기 피해는 분명 피해자에게 큰 피해를 준다. 하지만 채권자가 돈을 못 받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꽃뱀' 딱지가 붙고 성적인 욕을 먹는다거나 '무고죄'로 큰 벌을 받으라는 저주에 가까운 폭언을 듣거나 사기 당할 만해서 당했네 하는 '2차 가해'를 당하지 않는다.
  
 연예인 가족의 채무 문제를 두고 '미투' 운동에 빗대어 '빚투'라고 보도한 기사.

연예인 가족의 채무 문제를 두고 '미투' 운동에 빗대어 '빚투'라고 보도한 기사. ⓒ 트위터 갈무리

 
'미투' 운동에 빗대 '빚투'라는 단어를 쓴 것은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격적 존중 및 배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투 운동에 대해 '조롱'하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이것은 용기 내 미투 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이다.

'미투' 운동이 '성범죄 피해고발', '성범죄 피해연대'와 같은 보다 직접적인 단어로 번역돼 들어오지 않고 외래어로 쓰였기 때문일까, 이 단어가 가진 의미를 무척 가볍게 느끼고 심지어 이 운동을 불편하게까지 느끼는 걸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는 이들이 사회에 많아 보인다.

전쟁 중인 나라보다 성범죄율 및 여성 살해 비율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성범죄 표적이 될 일이 일생에 0에 근접한 사람들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계속해서 참고 살길 바라는 건가.

여성이 성범죄를 당했을 때 느끼는 건 성적 수치심이 아닌 가해자와 이를 입막음하는 사회, 그리고 편파 판결을 향한 강렬한 분노다.
 
남성 상위 시대를 정상 시대라고 일컫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용기 있게 분노하는 여성들에 의해 사회인식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는 와중에 일부 언론에 의해 그 운동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길 바란다.
미투 빚투 마이크로닷 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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