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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소재로도 종종 쓰이는 보이스피싱,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오마이뉴스>는 총 일곱차례에 걸쳐 보이스피싱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고, 범죄조직의 실체를 분석하는 한편, 현장에서 보이스피싱과 대면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아봤다. 이 기사는 그 두번째다.[편집자말]
"매우 조직적이다. 하나의 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철저히 경제 논리에 의해 돌아간다. 조폭보다 훨씬 더 무섭다."

 
경찰, 검찰, 금융감독원 등 보이스피싱 범죄와 마주하는 기관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보이스피싱은 전화기 너머 한 사람에 의한 가벼운 범죄가 아닌 견고하게 구성된 조직 차원의 중범죄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절대 당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보이스피싱 조직의 마수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총책] 그의 힘은 개인정보에서 나온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 대해부 ⓒ 고정미
  
보이스피싱 조직 최정점에는 대체로 일명 '총책'이 존재한다. 조직을 구성하고 범행을 지시하는 '주범'이다. 총책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필요한 각종 정보와 인맥을 틀어쥐고 있는 사람으로, 주로 해외에 거주하며 조직을 지휘한다. 총책 자신은 실제로 범행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밖으로 노출되지 않는다.

총책의 힘은 '개인정보'에서 나온다. 금융기관, 대부업체 등에서 불법 유출된 개인정보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편취할 수 있는 액수가 좌우된다. 개인정보의 양뿐만 아니라 개인정보의 질 또한 중요하다. 대출 등 현금이 필요한 이들의 개인정보, 특히 다른 조직에 팔리지 않은 '따끈따끈한' 개인정보일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최고급 개인정보는 한 건 당 10만 원에 달하는데, 보이스피싱 업계에선 "(전화를) 거는 족족 (보이스피싱에) 걸리는 번호"로 통한다. 이외에 일반적인 개인정보들은 적게는 몇 천 원, 많게는 몇 만 원에 불법 유통된다. 현재 이러한 불법 개인정보 판매 시장은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불법 유출된 개인정보의 출처나 유출 경위를 파악하기 어렵고, 유통이 주로 해외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콜센터팀] 1차 콜센터, 2차 콜센터... 여러명이 피해자 한명 상대
 
지난 9월 17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중국과 태국, 필리핀 등지에 콜센터를 갖추고 저금리 대출을 빙자한 전화를 걸어 피해자 310여 명으로부터 68억 원 상당을 뜯어낸 보이스피싱 범죄단체 3개 조직을 적발, 86명의 조직원 가운데 71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들이 범행에 이용한 수·발신 인터넷전화기 등 증거품. ⓒ 연합뉴스
 
총책 이하 보이스피싱 조직은 크게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콜센터'이고, 다른 하나는 '현금인출팀'이다. 총책은 자신이 구매한 불법 유출 개인정보를 콜센터에 전달하고, 콜센터는 직접 피해자에게 전화를 건다. 여기에 걸려든 피해자의 돈은 현금인출팀이 거둬들인다.

콜센터는 주로 해외에 있으며 1차 콜센터, 2차 콜센터 등으로 나눠져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특히 1대 1이 아닌 다(多)대 1로 피해자를 상대하기 때문에, 피해자로선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1차 콜센터가 최초로 피해자를 속인 뒤, "과장님 바꿔드리겠다"는 식으로 전화를 2차 콜센터로 돌리면 피해자는 마치 공적인 조직이 움직이는 것처럼 믿게 된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주로 '고수익 알바'를 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범죄에 가담했거나, 가족·친척·지인 등으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많다. 말단 상담원은 편취 금액의 10~30%를 받게 되는데, 총책이나 간부급 중간책들은 일정 금액 이상을 편취하면 상담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법으로 범행 동기를 강화한다.

상담원들은 해외 현지에서 합숙하며 새로운 범행 방법을 연구하는 등 매우 조직적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일반 회사처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면서 쉬지 않고 전화를 건다. 물론 필요하다면 초과 근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중간 간부가 범행에 미숙한 상담원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 등 군대의 가혹행위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철저한 보안의식 또한 상담원들의 덕목(?)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 거점을 두고 있는 콜센터 상담원이라면 중국에 입국할 때 한국 유심(휴대전화 가입 식별 카드)을 반납하고 휴대폰을 포맷해야 한다. 또 중국에 있는 동안 한국 지인들과 연락해선 안 되고, 특별히 연락할 일이 생길 경우 절대 콜센터 사무실 와이파이를 사용하면 안 된다.

한국에 들어갈 때 역시 중국 유심을 반납하고 휴대폰을 포맷해야 한다. 콜센터 정보, 범행 수법을 담은 '시나리오' 등의 유출을 막기 위해 휴대폰뿐만 아니라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현금인출팀] 이 조직에도 위험의 외주화가... '고수익 알바'에 속지말라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지난 6월 편취 금액을 송금한 뒤 은행을 나서고 있다. ⓒ 광주 북부경찰서
 
콜센터가 피해자를 '낚는' 데 온 힘을 쏟는다면, 최종적으로 피해자의 돈을 거둬들이는 역할은 현금인출팀이 맡는다. 과거엔 대체로 한 조직이 콜센터와 현금인출팀을 모두 거느렸지만, 최근엔 현금인출팀을 외주업체로 따로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분업화가 이뤄진 것이다. 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현금인출팀의 검거율이 높기 때문에 현금인출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에 외주를 맡겨 위험요소를 줄이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하나의 현금인출팀이 여러 콜센터의 일을 맡아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편취한 돈을 직접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국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만 현금인출팀의 간부급 중간책은 검거를 피해 해외에서 지시만 내리는 경우도 있다.
 
현금인출팀 역시 '고수익 알바'라는 광고를 보고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이들 조직원은 대포통장에 이체된 피해자의 돈을 인출하거나, 직접 피해자를 대면해 돈을 편취한다. 피해자 집이나 물품보관소에 돈을 두게 한 다음 그 돈을 수거해 오는 경우도 있다. 가장 말단에서 현장을 다니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범죄로 검거되는 이들 중 상당수가 현금인출팀이다.

하지만 이들을 검거한다고 해서 조직 전체를 소탕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말단 조직원이 소통하는 사람은 대부분 상위 지시자 한 명뿐이다. 현금인출팀끼리도 서로 알지 못하는 구조라 이들은 조직과 관련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더구나 최근엔 신원 조회가 쉽지 않은 외국인을 현금인출팀으로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많은 지원팀] 070→010 조작부터 해킹앱까지
 
보이스피싱 조직의 방대함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콜센터와 현금인출팀은 수월히 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수많은 지원팀의 도움을 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게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공급하는 팀이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가장 기본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범죄 수단이기 때문에 조직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최근엔 국내에 머물며 전화번호 앞자리를 조작하는 팀도 생겼다. 콜센터의 경우 해외에서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070'으로 번호가 시작되는데, 이 번호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자 이를 '010' 혹은 '02'로 바꾸는 전담팀이 생긴 것이다. 이들은 유심을 수백 개를 꽂을 수 있는 중계기를 이용해 해외 인터넷 전화번호를 국내 번호로 바꿔 피해자의 눈을 흐린다.
 
해킹앱을 휴대폰에 깔도록 요구하는 게 요즘 보이스피싱 범죄의 트렌드인데, 이 앱을 지원하는 팀도 존재한다. 앱의 기능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전화 수신처를 바꿔버리는 기능이다. 앱을 설치할 경우 피해자가 실제로 경찰, 검찰, 금융감독원 등에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콜센터로 연결돼 버리는 것이다. 이 전화를 받은 콜센터에서 경찰, 검찰, 금융감독원 직원인 것처럼 응대해 버리면 피해자는 완전히 보이스피싱이란 의심을 거둬 버린다.
 
이는 홈페이지 접속 과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검찰청 사칭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검찰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는데 해킹앱 때문에 조작된 검찰청 홈페이지로 연결돼 버리는 것이다. 실제 홈페이지인 줄 알고 접속한 조작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이름이 담긴 사건이 검색되면 피해자가 속을 확률은 훨씬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생명력이 질긴 까닭
 
보이스피싱 예방 홍보영상 일부. ⓒ 금융감독원 보이스피싱 지킴이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은 총책이 콜센터만 관리하는 형태로 변화하는 추세다. 총책은 현금인출팀, 대포폰 및 대포통장 공급팀, 해킹 어플팀, 전화번호 조작팀, 사칭 홈페이지 제작팀 등 여러 네트워크와 계약을 맺고 범죄를 저지른다.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여러 외주업체가 부품을 납품하듯, 보이스피싱 조직도 조직화·세분화한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 때문에 총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깡패 두목보다 전문경영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게 수사기관의 설명이다. 총책이 불법 유출 개인정보를 얼마에 구매하고, 콜센터 직원을 얼마나 고용하며, 외주 지원팀과 어떻게 계약할지 등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개인범죄가 아니라 조직적 중범죄다. 단순히 '전화 거는 사람-전화 받는 사람' 사이의 범죄가 아닌, 거대 조직이 피해자 1명을 상대로 벌이는 범죄이므로, 평소 아무리 주의하는 사람이라도 언제든 보이스피싱에 노출될 수 있다.
 
또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확장성과 재생성이 뛰어나다. 하나의 보이스피싱 조직이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을 낳는 숙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조직 안에서 노하우를 익히고 인적 네트워크를 넓힌 중간책이 조직을 나와 다른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능력이 좋은 직원들을 서로 영입하기 위한 경쟁도 붙는다. 또 검거되는 조직원 대부분이 말단이기 때문에 조직 재건에도 어려움이 없다.
 
현재 이러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얼마나 있는지는 수사기관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이들이 사칭하는 금융기관의 개수에 따라 수백 개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정도다. 조직별로 거느리고 있는 조직원 수도 제각각인데, 2016년 적발된 역대 최대 규모의 조직은 조직원 수가 120여 명에 달했다. 콜센터 수만 11개였고, 이 조직으로 인해 3000여 명이 54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박경세 검사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보이스피싱 범죄는 체계적으로 분업화돼 있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항상 범행수법을 개발하고 있는 하나의 산업"이라며 "매우 체계화된 조직이 피해자 1명을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라도 언제든 당할 수 있는 범죄다"라고 지적했다.
태그:#보이스피싱,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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