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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비혼, 돌아온 비혼, 자발적 비혼 등 비혼들이 많아진 요즘, 그동안 '비혼'이라는 이유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조금 더 또렷하고 친절하게 비혼의 목소리를 내고자 용기를 낸 40대 비혼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날이 쌀쌀하다. 이맘때쯤, 겨울용 신발을 사곤 한다. 신발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구두든 운동화든 2개를 넘지 않는 편인데 겨울용 신발은 다르다. 발이 시린 것을 못 참기도 하거니와, 12월이 되면 사실 마음이 좀 스산해진다. 그래서 방한용 신발을 사는 것은 나름의 월동 준비인 동시에 겨울을 맞는 의식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때만 되면 '가족 가족'하거나 '커플 천국'의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때만 되면 "가족 가족"하거나 "커플 천국"의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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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탓인지 모르겠지만, 연말연시에 남자친구나 애인 없이 보내는 것은 어쩐지 좀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면 으레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누군가가 있다고 해서 연말연시가 다 낭만적인 건 아니야."

결혼과 가족은 사람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만 되면 '가족 가족'하거나 '커플 천국'의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싱글인 내가 어쩌다 친한 친구에게 "나도 그걸 원해"라고 하면 그 순간 '그 나이에 아직 그런 걸 바라는' 덜 자란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다.
 
"혼자 산다는 건 어렵다. 오해받기 쉽다. 외롭고도 도도하게 살지 않으면 모욕을 당한다. 그러다 또한 어딘지 조금 애처로운 데가 없으면 얄밉게 보인다. 그러나 너무 애처로운 티를 내면 색기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균형이 어렵다." - 다나베 세이코 <서른 넘어 함박눈>
 
나도 그동안 '넌 너무 독립적이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 말 끝에 내가 싱글이라는 사실을 안쓰럽게 여기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살짝 연애를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이 나이가 되도록 남자를 포기하지 못한 여자가 되고 만다. 먹이를 구하는 하이에나처럼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는 건 아니었어도 사랑을 갈망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순간들에 맞닥뜨리면 조금 혼란스럽다.

한심하고 주책없는 여자로 보이기 싫어서 싱글로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기도 했다. 작은 원룸이나마 갖고 있고, 내 일을 하고 있고, 프리랜서로 나름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하고, 여행용 적금을 들었다가 때 되면 놀러가고. 하지만 그렇다고 365일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 듣게 되는 말도 뻔했다.

"그렇게 혼자 잘 살고 있으니 어떤 남자가 다가오겠니?"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시하는 삶을 살았던 것만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나는 대체로 혼자 잘 지냈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내가 행복한가?'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지내는 게 대부분이다. 난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라디오 작가로서 원고 마감 일을 지키고,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집 청소도 하고, 엄마와 산책을 하거나 병원에 모시고 갔다. 출장도 갔고, 시장을 보거나 반찬을 만들었다. 때때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기도 했고, 요가를 하거나 혼자 서점에 가서 책을 보는 등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일상을 살았다.

하지만 좀 특이한 날도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문득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뼛속까지 파고들어서 영원히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길 때.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나 나에게 와버린 혼자의 삶이 유독 시리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한 것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금요일 밤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맥주 한 잔씩 마시며 함께 볼 사람. 영화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 최종 결정은 내가 하더라도 그 일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존재를 원했을 뿐이다.

또 백만 안티를 불러올 말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지쳐서 손가락 하나만이라도 어딘가에 기댈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날에는 친구도 일도 필요 없고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서로 소 닭 보듯 시큰둥한 만남을 뒤로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나, 호감이 있는 사람과 아쉽게 관계가 끝나버린 때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은 도돌이표 연주에 갇힌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런 수위로 사람들한테 털어놓은 적이 별로 없다.

그렇게 말하면 되게 없어 보일까 봐 참았다. 짝을 원하는 마음은 당연한데도 말이다. 그런 때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다.
 
"삶을 공유할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유전자 구성이 그런 것일 뿐,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정도나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 <그들이 연애하는 까닭>

마침 이 문장을 만난 건 얼마나 다행인지. 내 일이나 친구, 책, 여행으로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요즘은 주체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보니,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왠지 의존적이거나 덜 성숙한 것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특히 내 나이에 외롭다는 감정이나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더 조심스럽다. 그래서 그런 필요를 느낄 때마다 자책하기도 한다.
 
외로워하면서 느낀 감정들은 나에게 고통이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내 삶에 도움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외로워하면서 느낀 감정들은 나에게 고통이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내 삶에 도움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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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서적인 유대감을 이성하고만 나누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보통 커플과 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기본적인 구성에 들어가지 못하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그나마 요즘에는 비혼자들이 많아지면서 공동체를 이루거나 함께 일상을 향유하는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있긴 하지만, 옛날 사람인 나에게는 아직은 그런 문화가 낯설다).

이런 상황이지만 나는 함께할 누군가가 있든 없든 현재 내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아낼 것이다. 물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외로움과 우울함, 좌절감에 공격 당해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이런 때 쓸 수 있는 나이가 준 선물이 있다. 결국 모든 게 괜찮아진다는 여유. 생일이나 연말연시 같은 때, 외로워하면서 느낀 감정들은 나에게 고통이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내 삶에 도움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기혼이든 비혼이든 사람은 외로움을 느낀다. 혼자인 것이 두려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과 불행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난 그렇게 하진 않을 것이다.

지난주에 주문한 겨울용 스니커즈가 어제 도착했다. 신발 안쪽에 보송보송한 털이 달린 스니커즈를 보고 있자니 공연히 즐겁고 든든하다. 비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마음이 움츠러들며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지는 겨울에는 특별한 신발이 필요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재밌으면서도, 넘어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 그동안 비혼일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태그:#비혼일기, #월동준비, #연말연시풍경, #누구나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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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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