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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후 첫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372차 정기수요시위가 30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후 첫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372차 정기수요시위가 30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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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싸워달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현실이 됐다.

30일 낮 12시, 1372차 수요집회가 열린 서울시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에는 평소보다 배 이상 많은 400여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없는 그곳을 지켰다.

이날 수요집회는 김복동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무대 옆에 놓였을 뿐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1992년 1월 8일 시작된 수요집회는 햇수로 27년째, 일수로 9885일째 매주 수요일 계속되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는 첫번째 집회부터 지난 23일 진행된 1371차 집회까지 수요집회를 이끌어왔다.
  
'할매나비' 김복동... "그는 언제나 앞장섰다"

이날 집회는 지난 28일 우리 곁을 떠난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날 오전 먼저 떠난 이아무개 할머니를 위한 묵념과 함께 시작됐다.

연단에 오른 덕성여대 한 학생은 "김복동 할머니는 14세 때 끌려가 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위안부 피해자였다"라면서 "그럼에도 할머니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 거리로 나와 학생과 시민을 만나며 평화로운 세상 만들자고 한평생 노력해 왔다"라고 김 할머니의 삶을 정리했다.

그는 또 "할머니는 본인 역시 일본군에 의해 피해를 입었지만 베트남 전쟁 중에 한국 군인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베트남 여성에게도 2014년 3월 사죄를 하고 전시 성폭력 피해 재발방지를 위한 국제 여론을 이끌었다"라면서 "할머니는 전쟁이 끝난 후 익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징이자,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한 평화 운동가다"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김복동 할머니는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공개 후 '평화‧인권운동가'로의 삶을 이어왔다.

베트남, 콩고, 우간다 등 전쟁·무력분쟁지역 피해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연대했고, 이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성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 '나비기금'을 발족한 뒤, 최근에는 재일조선인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전달했다.

할머니가 유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을 지원하는 문제를 나를 대신해 끝까지 해달라"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권운동가 김복동을 기억하다"

 
김복동 할머니 자리에 놓인 추모 꽃다발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후 첫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372차 정기수요시위가 30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김복동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에 추모꽃이 놓여 있다.
▲ 김복동 할머니 자리에 놓인 추모 꽃다발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후 첫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372차 정기수요시위가 30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김복동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에 추모꽃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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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는 평화‧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의 행동을 기억하고 뜻을 이어받아 행동하려는 학생 시민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할머니는 오랜 세월동안 포기하지 않으셨고 전 세계 전쟁범죄를 겪고 있는 많은 여성에게 귀감이 되셨다"면서 "할머니는 큰 나무가 되시고 나비가 되셔서 세계를 날아다니셨다. 할머니의 뜻은 여러분도 나비가 돼 이 같은 전쟁범죄가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함께해달라는 것"이라면서 '행동하는 평화나비'가 돼주기를 호소했다.

충청 평화나비 이상민씨도 "29일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복동 할머니 만났다"면서 "사실 평화나비 회원들에게 김복동 할머니는 언제나 앞장서 날아오르는 '할매나비'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할머니가 걸어온 시간만큼 할머니 곁을 따르는 나비들이 이제는 정말 많다"면서 "이제는 김복동 인권운동가의 뜻에 따라 평화롭게 날아오르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후 첫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372차 정기수요시위가 30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후 첫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372차 정기수요시위가 30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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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해달라는 호소도 이어졌다.

정의기억연대는 성명을 통해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해지만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은 아직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다"라면서 "할머니들의 진정한 해방은 명백한 인권침해 사실을 인정받고 공식적인 사죄와 그에 따른 배상을 받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김복동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함께 행동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 일본군성노예제 전쟁범죄 인정, 우리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10억 엔 반환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지는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는 29일 오전 11시부터 일반 시민들의 조문이 가능한 상황이다.

29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의 조문을 비롯해 30일에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사회 각분야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일반 시민의 조문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정의기억연대는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시민들이 함께해줄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하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호주와 일본, 독일, 미국에서 추모사를 보내고 빈소도 차려 할머니 뜻을 기리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은 오는 2월 1일 오전 6시 30분이며, 이후 서울광장과 일본대사관으로 행진하는 거리 노제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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