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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후 첫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372차 정기수요시위가 30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김복동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에 추모꽃이 놓여 있다.
▲ 김복동 할머니 자리에 놓인 추모 꽃다발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후 첫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372차 정기수요시위가 30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김복동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에 추모꽃이 놓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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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외신이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소개했다. 

AP통신은 30일(현지 시각) "김 할머니가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라며 "김 할머니는 거의 30년 가까이 매주 수요집회를 이끌었고 1993년 유엔 세계인권회의와 2016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자신의 겪은 일을 증언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수십 년간의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피해 사실을 공개한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라면서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지금은 23명만 생존해 있다"라고 설명했다.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보도하는 <뉴욕타임스> 갈무리.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보도하는 <뉴욕타임스> 갈무리.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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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 할머니는 전 세계 수천 명의 성노예 여성이 당한 고통에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도록 했다"라며 "유엔을 포함해 전 세계를 돌며 자신의 고통을 증언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할머니는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자신이 대부분 위안부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배경을 숨겼다"라며 "하지만 김 할머니는 수요집회를 이끌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라고 강조했다.

NYT는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처음으로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밝혔고, 김 할머니가 이듬해인 1992년 뒤를 이었다"라며 "김 할머니는 거침없는 불굴의(persistent) 활동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박근혜 정권과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김 할머니의 "우리가 싸우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명예 회복을 위한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이라는 발언도 소개했다.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보도하는 일본 NHK 뉴스 갈무리.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보도하는 일본 NHK 뉴스 갈무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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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HK는 "한국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김 할머니가 사망했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의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조문해 애도를 표했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한국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한 화해·치유 재단의 해산을 결정한 반면 일본은 착실한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라며 "김 할머니의 사망으로 한국 내 반일 감정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교도통신>도 "김 할머니는 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적 인물"이라며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으로 인한 여성 성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전 세계에서 캠페인을 펼쳤다"라고 소개했다.

태그:#김복동 할머니, #위안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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