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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 기간중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06년 11월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 기간중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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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를 향한 야망을 포기하면 우리가 북한 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경제 인센티브 제공에 착수할 뿐 아니라 북한 사람들과 안보 협의에 들어가려고 한다는 점을 북한의 지도자들이 새겨듣길 원한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말 같지만 아니다. 무려 12년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한 말이다.

2006년 11월 18일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부시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북한과의 안보 협의(security arrangement)'는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과 같은 북한의 체제보장 방안이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 때엔 "당신과 나, 김정일이 함께 앉아서 서명하고 싶다"고 말하며 서명하는 시늉까지 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었던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그(부시)는 북한 핵이 해결되면 북한과 안전보장협정에 서명할 용의가 있음을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안전보장협정, 평화협정, 종전선언, 전쟁종식 등의 용어를 특별한 개념 구분 없이 혼용했다"고 설명했다.

2006년 10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고 이에 UN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 1718호로 대북제재에 들어간 직후였다. 어렵사리 끌어낸 2005년 9.19 6자회담 공동성명으로 다시 북한을 복귀시키기 위한 노 대통령의 노력은 다른 장소에서도 이어졌다.

2007년 9월 북한과 미국이 제네바에서 만나 핵시설의 연내 불능화와 전면 신고에 합의했다. 이어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때 만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종전선언을 언급하는 모습을 끌어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 "각하께서 조금 전 말씀하실 때 한반도 평화체제 내지 종전선언에 대해 말씀을 빠뜨리신 것 같은데, 우리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니까 명확히 말씀을 해주셨으면 한다."

부시 대통령 :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평화체제 제안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달려 있다. 무기를 없애고 검증 가능해야 한다. 그런 목표를 향해 진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결정은 그쪽에서 해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 : "똑같은 이야기이다. 똑같은 얘기인데,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웃음)

부시 대통령 : "더 이상 어떻게 분명히 말씀드릴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전쟁은 우리가 끝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김정일씨가 그의 무기에 관해서 검증 가능하도록 폐기해야 할 것 같다."


김정일 "종전선언 아주 의미있다, 하나의 시작이 될 것"

한달 뒤 평양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논의한 종전선언 방안을 설명했다. 회담록에 나타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얼마 전에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할 때 종전선언 문제를 언급했다는 말이 지금 돌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종전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지만 그것이 하나의 시작으로는 될 수 있다고 보면 어떻겠는가 나는 생각합니다. 조선전쟁(한국전쟁)에 관련 있는 3자(남북미)나 4자(남북미중)들이 개성이나 금강산 같은 데서 분계선 가까운 곳에서 모여 전쟁이 끝나는 것을 공동으로 선포한다면 평화문제를 논의할 수 있 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상 간 대화는 이렇게까지 진행됐지만, 종전선언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우선 하노이에서 함께 종전선언을 논의한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각각 반대 정파가 정권을 잡았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 신고서를 제출했고 미국은 동결된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 자금을 풀어주고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했다. 하지만 매 단계마다 북미 간 이견이 노정됐고 결국 핵신고 검증을 위한 핵연료 시료 채취를 북한이 거부했다. 미국은 중유지원을 중단했다. 비핵화와 상응조치가 중단되니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이 공감했던 종전선언도 더 이상 거론할 상황이 안 됐다.

그리고 북한은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약 12년 뒤 같은 장소 하노이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논의한 지 약 12년 뒤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사실상의 종전선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 11일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과 미국만 진행하지만, 언젠가는 3자(남북미)가 함께 할 수 있는 날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사자인 남북미중이 모이는 형식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종전선언이 될 합의가 나올 수 있다는 예고인 셈이다.

12년 전에 구상한 종전선언이 '비핵화 완료 단계에서의 상응조치'였다면 이번에 논의될 종전선언은 '비핵화로 가는 입구'이자 동력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논의했던 같은 장소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진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다. 노무현-부시의 하노이 구상이 12년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공동선언'으로 되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태그:#하노이, #종전선언, #북미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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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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