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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월 27일 오전 8시 47분]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9.2.26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9.2.2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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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우리 구치소에 수용된 사람이 내가 수감된 방 앞을 지나가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걸 들었다. '대한민국 검찰이 정말 대단하다, 우리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어서 법원을 하늘같이 생각하는데 검찰은 법원을 꼼짝 못 하게 하고, 대법원장 구속까지 시켰으니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얘기했다."

법정에 선 '수인번호 1222'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발언권을 얻은 그가 검찰을 공격한 데 쓴 시간은 13분에 달했다.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심문기일을 열었다. 2월 19일 그가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 달라며 보석을 청구한 데 따른 절차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24일 구속된 후 3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남색 양복에 넥타이를 매지 않고 피고인석에 앉은 그에게 재판부는 "본인의 보석 청구 사건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얘기해 보라"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마이크를 만지며 자세를 고쳐 앉은 뒤 자신이 구치소에서 겪은 일화를 시작으로 검찰을 '조물주'라고 비꼬았다. 

그는 "구치소에 수용된 사람이 '검찰이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얘기하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라며 "검찰은 수십 명의 검사를 동원해 법원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져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약 300페이지짜리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과거 사법농단 관련 법원 내부조사의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언급하며 "(검찰의 기소는)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검찰은 재판구조 몰라... 나는 호미 자루 하나도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이 재판구조를 모르고 수사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검찰이 재판에 관해 이렇게 이해를 잘못하고 있구나 뼈저리게 느꼈다"라며 "더구나 대법원의 재판과정에 대해서는 너무 이해력이 없어 제가 그것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부에게 호소했다. 그는 재판부를 바라보며 "저는 무소불위 검찰과 마주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은 호미 자루 하나도 없다"라며 "(수사기록만) 20만 페이지에 가까운 서류가 내 앞에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 지금 이 사건으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피고인"이라고 말했다.

사건을 공정하게 봐 달라며 '정의의 여신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정의를 의미하는 '정의의 여신상'에는 형평이라는 저울이 들려 있다, 형평이나 공평 없는 재판 절차에는 정의가 실현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실체적인 진실이 발견되고, 형사소송원칙의 이념이 구현됨으로써 정의가 실현되는 법정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검찰 "자신이 정비한 구속영장제도인데... 자기모순"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2019.2.26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201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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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보석 청구 기각을 주장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현재 구속영장 제도가 일종의 보복 감정의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주장한다"라며 "피고인이 대법원장으로서 스스로 정비한 구속영장제도가 이제 자신이 대상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제도를) 부정하는 건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양 전 대법원장이) 고령이고, 주거가 일정하다는 이유로 보석이 되면 안 된다"라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고려하더라도 이런 사유로 피고인을 보석하는 건 부당하다, 영장전담 재판부도 앞서 위 주장까지 충분히 검토해 영장을 발부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청구는 '전례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피고인 방어권 보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피고인이 봐야 할) 기록이 방대해 불구속 재판을 주장하는 건 전례 없는 주장"이라며 "기록이 방대하다는 건 범죄혐의가 방대하고, 증거가 충분하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구속기소 후 8일 만에 보석을 청구해 허가된 사례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신중히 검토해서 적절한 시기에 (보석 인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다"라며 심문을 마무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판 기일은 아직 지정되지 않았다.

태그:#양승태, #보석, #사법농단, #검찰,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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