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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한국 최초의 양식당 '서울역 그릴'의 현재 모습. 서울역 신역사 4층에 위치해있다.
 한국 최초의 양식당 "서울역 그릴"의 현재 모습. 서울역 신역사 4층에 위치해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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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4층의 푸드코트에는 특별한 음식점이 있다. 이 음식점의 분위기는 마치 80년대의 '고급진' 경양식당을 보는 듯하다.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등의 메뉴를 시키면 '밥, 또는 빵'을 묻는다. 와인잔에 물을 따라주고, 후식은 '커피, 아니면 탄산음료'다. 식탁 위에는 각설탕도 올려져 있다.

서울스퀘어의 야경이 번쩍이는 바깥 풍경을 애써 보지 않는다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음식점은 1925년 10월 15일 개업해 올해로 94년째가 된 '그릴'이다. 한반도 최소의 양식당으로, 스테이크와 커피, 홍차는 물론 맥주 등의 서양음식을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그릴은 한국 철도의 역사에 편입되어 있기도 하고, '식당'의 역사에 편입되어 있기도 하다. 경기도 의왕 철도박물관에는 그릴의 별실 모습을 보존해 전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 '양식 역사'의 1번지로도 기억되고 있다. 그릴, 그리고 그릴이 있던 공간은 94년간 어떤 일을 수행했을까.

조선 첫 '동계 올림픽 선수'들이 왔던, 당대 '인싸'의 공간 
 
서울역 그릴의 개업 당시의 모습.
 서울역 그릴의 개업 당시의 모습.
ⓒ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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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 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 그 것들은 아물아물하는 것이 어딘가 내 어렸을 때 동무들 이름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 이상의 소설 <날개> 중

서울역 2층의 초호화 레스토랑이었던 '그릴'과 1층 대합실 옆 '티룸'은 당대 한반도의 '인싸'들이었던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자주 찾던 공간이었다. 돈깨나 만진다는 사람들이 1등 객실을 타고 열차를 타기 전 정찬을 즐기며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릴은 사람들에게 많은 선망을 받았다.

200명이 한 번에 식사할 수 있고, 40명의 요리사가 있는 규모에 걸맞게 가격은 참으로 비쌌다. 당시 설렁탕이 15전 하던 시대에 이곳의 정찬은 3원 20전을 넘나들었단다. 현재의 '호텔 식당'과 비슷한 위상을 지녔던 것이다. 

'그릴'과 '티룸'은 문화예술인과 체육인들의 모임장소로도 애용되었다. 소설가 이상, 박태준이 자주 찾는가 하면, 이상은 소설 <날개>에 이곳과 미쓰코시(현재 신세계 본점)의 당시 모습을 담아내기도 했다. 1934년에는 전경성탁구회와 전관동학생 간의 탁구대회 이후 환영회를 '그릴'에서 개최하는가 하면, 1936년에는 조선축구협회의 신임이사회가 열리기도 했다.

재미있는 기록도 있다. 1936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해 떠났던 '조선 최초의 빙상 선수'인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선수를 환송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린 다음 날, 장우식 선수의 부친인 장순익씨가 떠나는 선수들에게 그릴의 별실에서 아침을 대접했다는 기록이 1935년 12월 6일 동아일보의 보도에 남아있다. 한국 최초의 동계 올림픽 선수들도 들렀던 역사의 장소였던 셈이다(이들은 동계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한 한국인이지만, 당시 한국팀이 아닌 일본팀으로 출전해야 했다. -편집자주).

'첫 번째 민영화 시비', '서울역 회군' 이루어진 역사의 공간
 
1966년 '서울역 그릴'의 신장개업 광고. 당시 내부공사를 마치고 새로이 개장했다.
 1966년 "서울역 그릴"의 신장개업 광고. 당시 내부공사를 마치고 새로이 개장했다.
ⓒ 철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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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에도 그릴은 '고급의 양식당'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6.25 전쟁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한 것을 제외한다면 훌륭하고 값비싼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이 높았다. 열차 식당차의 가격 논란이 일었던 1958년 12월 19일자 동아일보에는 "식당차의 음식을 먹는 데에 '그릴' 보다 100환이나 더 내야 한다"는 불평이 실리기도 했다.

국가시설의 민영화를 두고 처음으로 저항이 일어났던 곳도 그릴이었다. 철도청은 서울역과 대전역의 그릴이 30%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다며 민영화를 검토했으나, 종업원들의 큰 반발로 어려움에 착수했다. 이들은 당시 "민영화를 한다면 우리들이 인수하겠다"라는가 하면, 철도노조에 찾아가 항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심지어 적자의 원인으로 1971년 400만 원에 달하는 지배인의 횡령이 드러나는가 하면(11월 12일 매일경제 보도), 1973년 교통부와 철도청 간부의 외상값이 10년간 무려 430만 원에 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8월 24일 경향신문 보도) 민영화를 추진하던 철도청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기도 했다.

'그릴'은 한국 민주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점유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의 봄' 당시 각 대학에서 모인 총학생회장단이 임시 본부로 삼은 곳이 서울역 그릴이었다. 이들은 5월 15일 이곳 등에서 '서울역 회군'을 논의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 때 결정이 후일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 5.18 민주화운동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를 받을 줄 그들은 알았을까.

화무십일홍, 저물어버린 그릴의 '시대'
 
'그릴'의 영업장은 1993년 전시회를 여는 곳이 되기도 했다. 현재도 2층 옛 그릴은 문화역서울 284의 전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릴"의 영업장은 1993년 전시회를 여는 곳이 되기도 했다. 현재도 2층 옛 그릴은 문화역서울 284의 전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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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달이 차면 기울듯, 50년이 넘도록 한국을 대표했던 양식당 '그릴'은 점점 매출이 줄어드는 등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이에 1983년 프라자호텔은 연간 8억여 원의 사용료를 내는 조건으로 서울역 그릴과 새마을호 등 특급열차의 식당차 영업권을 넘겨 받았다.

그즈음 하여 그릴에서 40년 2개월을 근속했던 웨이터 김목씨가 퇴직한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의 전용열차 전속 웨이터로 근무하며 한국 대통령과 미국 닉슨 대통령을 접객하기도 했던 그는 여러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울역 그릴은 경쟁에 밀려 과거의 명성을 점점 잃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이카 시대'에 맞게 철도 대신 차량으로 나들이 가는 길에 '가든'을 찾기 시작했고, 그릴은 회사나 단체의 총회 장소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알려져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경양식당 되었지만, 역사는 계속된다
 
2019년 초 열린 '커피사회' 전시 당시 '그릴'은 1980년대 말 이후 근 30년 만에 커피 향이 다시 진한 곳이 되었다.
 2019년 초 열린 "커피사회" 전시 당시 "그릴"은 1980년대 말 이후 근 30년 만에 커피 향이 다시 진한 곳이 되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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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90년대 사이 그릴이 옛 서울역에서 새로 개장한 선상역사로 옮겨가고, 1993년에는 서울역 옛 역사 '그릴' 위치에 서울역 문화관이 들어서기도 했다. 각종 문화예술전이 열렸는데, 이 때의 기억을 되살려 2008년 문화역서울 284가 복합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대중을 대상으로 커피가 처음 시판된 경성역을 기념하는 '커피사회' 전시가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렸다. 오랜만에 커피 향기가 그릴을 채웠다. 그릴의 '장소성'을 기억하는 전시는 <커피사회>가 처음으로, 이 전시를 통해 그릴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릴의 대표적 명물인 돈가스.
 그릴의 대표적 명물인 돈가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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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그릴은 서울역 4층에서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 최초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양식당을 꿈꾸는 만큼 함박스테이크와 돈가스, 그리고 '그릴 정식'이 대표 메뉴다.

나이 지긋한 웨이터들이 따라주는 와인잔 물이 괜히 80년대 경양식당을 생각케 할 정도로 정겹다. 나이 지긋한 이들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추억의 공간이자, 옛 역사가 그대로 담긴 장소, 즉 '살아있는 타임머신'인 셈이다.

태그:#서울역, #그릴, #일제강점기, #서울 역사, #양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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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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