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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곳이 없다. 실내는 물론 지하공간까지 미세먼지는 어디든 파고든다. 시골이건 숲 속이건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 공기는 어딘들 틈새만 있으면 안 가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틈새를 막아야 미세먼지가 스며들지 않을 텐데 틈새 없는 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공기는 국경도 없다. 진퇴양난이다.

마스크는 물론 콧구멍 점액질도 미세먼지를 걸러내지 못한다. 미세먼지는 허파에서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간다. 그래서 각종 질병의 발병체로 잠복된다. 지난주, 연 5일째 전국에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고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미세먼지는 한반도 전역을 휘저었다. 제주도에는 유사 이래 최초로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었다.

지금은 덜하지만 경보 사이렌도 없이 언제 기습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여러 대책이 거론된다. 차량 5부제나 2부제가 그것이고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이 그것이다. 모두 임시방편이다.

근본 대책은 인간이 저지르는 자연에 대한 무한 갑질을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찢어발기고 파헤치고 터뜨리고 뚫고 자르고 깎아내는 인간의 문명 활동, 산업 활동을 멈추지 않고서는 대책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속도와 효율성과 편리와 성장과 즐김을 위한 인간의 자연 파괴 행위를 그쳐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과감한 후퇴가 필요한 때다.

지역과 나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구 생명체를 놓고 보면 미세먼지의 주범을 가리키는 우리의 손가락 방향은 인간 자신을 향해야 한다. 자동차와 산업현장 그 너머의 나 자신을 향해야 한다.

온 천지가 희부옇고 목구멍이 간질거리며 재채기가 터져 나오는 오늘, 인간이 얼마나 쉬지도 않고 가혹하게 자연을 향해 갑질을 해 왔는지 자각해야 할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근대 이후, 2백 년 이상을 인간이 자연에게 저지른 행위는 착취고 고문이었다. 지구 먹이사슬 최상위의 포식자인 인간은 배만 채우는 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갖가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에너지 과잉, 소비 과잉, 이동 과잉, 시설 과잉을 저질러 왔다. 멀쩡한 것을 놔두고 새로 만들었고 함부로 버렸고 함부로 망가뜨렸다.

그 어떤 사회적 약자라도 인간인 이상 자연에 대한 약탈자였다. 공포의 '갑'이었다.
중국의 경제성장을 우리나라 수출 기회가 열렸다고 좋아하고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한 것에 좋아라고 한다면 미세먼지는 마셔야 할 것이다. 인과응보다. 15억 인구의 중국과 인구 13억 인도가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되기 위해 뿜어대는 미세먼지. 그것을 어떤 명분으로 만류할 것인가.

4일 동안에 4천 명이 사망했던 영국 런던의 1952년 스모그 사건이 있었다. 레이첼 카슨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시대의 걸작 <침묵의 봄>을 내놓았다. 생태계의 오염이 어떻게 시작되고 생물과 자연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를 통해 국가와 대중들이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재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갑질을 멈추라는 신호였다고 봐야 한다.

인류는 이때의 교훈을 제대로 새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무한 갑질은 그치지 않았다. 자연을 '가이아(어머니 대지)'로 여기지 않았고 인간 편리의 도구로만 여겼다.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를 더 태웠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더 뿜었으며 건설 현장 등에서 생기는 날림먼지, 공장의 분말 형태 원자재, 가공 과정의 가루 성분, 소각장 연기 등이 폭증했다.

기상청의 미세먼지 예보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우리가 정부에 큰소리 치는 시민이 되려면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끌고 나가거나 대중교통을 타야 하리라. 마스크만 챙길 게 아니라 내 소비를 줄이고 편리를 반납해야 하리라. 전기코드를 뽑고 에너지 사용을 반으로 줄여야 하리라. 그래야 내 목소리가 당당해지지 않겠는가. 우리가 그러면 정부도 중국에 큰소리칠 수 있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신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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