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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나오며 파이팅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나오며 파이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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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며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환호하는 동료들을 향해 양 주먹을 불끈 쥐었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그의 미소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민주당, 한 방 먹었구나.'

지난 12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연설 내용은 최악이었다. 사실 관계도 어긋날 뿐더러 역사 의식이나 정치 철학도 보여주지 못했다. 오로지 문재인 정부에 색깔론을 덧씌우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의 연설을 들으며 '역시 자유한국당!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민주당, 나경원에게 쏟아질 비난을 함께 짊어지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하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 대행이 나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자리에서 뛰쳐나온 자유한국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이들을 제지하고 있다. 발언대에 선 나 원내대표의 표정이 보인다.
▲ 문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 사과 요구한 홍영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하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 대행이 나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자리에서 뛰쳐나온 자유한국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이들을 제지하고 있다. 발언대에 선 나 원내대표의 표정이 보인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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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뒤이어진 민주당 의원들의 조절되지 못한 분노는 피장파장의 형국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대통령을 향해 비난으로 일관하는 야당 원내대표의 연설. 여당 의원 입장에서 항의하고 야유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TV 카메라와 수많은 기자들이, 무엇보다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리치고 뛰어나가는 건 '대통령 사수대' 이미지만 굳힐 수 있는 행동이었다. 연설 도중 가끔씩 미소의 여유까지 보였던 나경원 원내대표. 민주당 의원들의 분노를 일부러 의도했다면 그는 참 치밀하고 무서운 정치인이다. 이에 반해 나경원 원내대표가 감수해야 할 비난을 나눠 짊어진 민주당 의원들은, 답답하고 어리석다.

민주당의 헛발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표현한 나경원 원내대표에 대해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죄'를 운운한 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공격이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국가원수모독죄' 발언이 나오자 수많은 언론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지금이 어느 때인데 국가원수모독죄를 운운하느냐'며 사고의 진부함을 지적했다. 동시에 한국당은 민주당을 향해 '좌파 독재'를 자백한 것이라면서 날을 세웠다. 극우정치 막말연설에 쏟아진 국민의 분노는 민주당의 어설픈 대응으로 말미암아 극우정치 대 좌파독재의 프레임 전쟁으로 희석되고 말았다.

국회 윤리위원회 제소 건도 마찬가지다. 13일 민주당이 소속의원 128명의 명의로 나경원 원내대표 징계안을 제출하자, 한국당도 원내대표의 연설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면서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를 맞제소했다.

17대 국회 이후 의원 징계요구 169건 중 가결이 단 한 건이라는 윤리위 제소. 징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전술에 화력을 쏟아붓는 모양새는 참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들을 여야 싸움의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렸고, 보수 지지층으로 하여금 나경원 원내대표를 '나다르크'(나경원+잔다르크)로 인식되게끔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나경원 원내대표 처지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극적 효과를 취한 셈이다. 

궤변+극우사고의 융합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를 요구했다. 나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앉아달라고 외치고 있다.
▲ 나경원, 민주당 향해 "앉아달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를 요구했다. 나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앉아달라고 외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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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은 사실 별 내용이 없다. 정치·경제·남북관계·선거개혁조차도 좌파 정권의 무능으로 연결지었다. '기-승-전-문 정권' 화법만 있었을 뿐이었다. '미세먼지, 탈원전, 보 철거, 문재인 정부는 좌파 포로정권', 이런 식이다. 궤변이다.

백 번 양보해 미세먼지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서 비롯됐다고 하더라도, 좌파 포로정권이라고 규정하는 건 언어유희를 넘어선 블랙코미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포로' 문재인 정부를 잡고 있는 건 강성귀족노조, 좌파단체, 시민단체들이다. 촛불혁명을 내세워 문재인 정부에게 번번이 청구서를 내밀고, 문재인 정부는 부채의식 때문에 심부름센터로 전락했다는 게 나경원 원내대표 연설의 요지다.

이는 정권의 탄생을 부정하는 발언이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좌파에게 저당 잡힌 정권'이라고 한다면, 대선 불복과 다를 게 없다. 국민이 화를 내고 분노하는 건 이런 지점이다. 4대강에 혈세 수천억 원을 쏟아붓고도 환경을 망친 정권, 그 정권을 떠받쳐 왔던 정당이 보 철거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를 향해 '좌파' 운운하다니. 

키 리졸브, 독수리 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의 축소와 폐지는 우리나라의 결정이 아니라 미국의 결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군사훈련을 원하지 않는 이유는 돌려받지 못하는 수억 달러를 아끼기 위한 것이며, 지금 시점에 북한과의 긴장을 줄이는 것도 좋은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한미 군사훈련을 종료하고 동맹이 존속 가능하냐고 묻고 싶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게 합당하다. 북한과 긴장을 줄이는 게 좋은지, 갈등으로 치닫는 게 좋은지 미국 대통령도 알고 있는 상식을 대한민국 제1야당 원내대표가 헷갈려 하는 모양새다.

비핵화는 목표이자 과정이다. 베트남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완전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다시 적대적 대결국면으로 치닫을 것이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또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2월 28일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북한은 핵 폐기의 의지가 없으며 협상은 핵보유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억측이다.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마저도 북한의 핵보유를 위한 협상에 놀아나고 있다는 이야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들으면 펄쩍 뛸 소리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북한의 비핵화를 두고 '속은 겁니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오히려 한국당에 그 물음을 되돌려주고 싶다.

'북한의 비핵화를 원합니까? 아니면 안 된다고 믿고 싶은 것입니까?'

지금 민주당이 사활을 걸어야 할 건... 개혁 입법 처리와 적폐 청산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하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등이 그 자리에서 나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나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사과 못하겠다고 맞대응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서로 설전을 벌이는 사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 머리 맞댄 이해찬-홍영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하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등이 그 자리에서 나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나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사과 못하겠다고 맞대응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서로 설전을 벌이는 사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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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대표는 연설 말미에 '종북을 종북이라고 말하면 친일입니까?'라고 목청을 높였다. 물론 아니다. 종북을 종북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친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근거도 없이 종북 그리고 좌파 딱지를 붙여 자신들의 치부를 덮고 정치 생명을 이어왔던 건 예전부터 지금까지 친일파뿐이었다.

12일 국회 연설은 이렇게 한국당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셈이다.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조롱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결국 정리하면 '지지자를 위한 분풀이'였다고 본다.

논리적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은 연설에 민주당은 그렇게 흥분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 모욕 주기, 남북관계 재 뿌리기, 개혁입법 발목잡기가 어디 하루이틀 된 이야기인가. 오히려 판단은 국민들에게 맡기고 큰 걸음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1야당을 보지 말고, 국민을 봐야 한다. 연설을 향한 박수소리는 본회의장 안의 것이었다. 동료들의 박수 소리가 커질수록 국민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의 풀 수 없는 딜레마다.

정당의 존재 이유 그리고 제1야당 교체 가능성은 국민들의 표에 달렸다. 선거 때 심판하면 된다. 이쯤 되면 민주당에게 주어지는 숙제는 자명하다. 남북관계, 살아나지 않는 경제, 국회에 계류된 개혁·민생 법안,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적폐청산의 과제는 여당의 결기가 없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선거제도 개혁을 막으면서 '총사퇴'를 언급하는 한국당을 보라. 민주당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결기다. 국회의장에 항의하러 가고, 국가원수모독죄를 운운하는 헛발질 말고, 모든 걸고 싸워야 할 때다.

태그:#나경원, #민주당, #홍영표, #국회연설, #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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