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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안개에 다랑논이 휩싸여 신비롭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임재만
  
3월 초 다랑이논의 장관이 펼쳐지는 '원양제전'으로 향했다. 중국 곤명에서 버스를 타고 7시간 이상 가야 했다. 홍강을 지나 다랑이논이 있는 원양제전으로 달렸다. 원양제전으로 들어서자 버스 안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카메라 셔터 음이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다랑이논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언뜻 보아도 다랑이논 규모가 엄청나다. 차창을 열고 밖을 주시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다랑이논에는 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뿔싸! 아직 다랑이논에 물을 담지 않았단 말인가? 분명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 사이에 담수가 이루어진다 했건만! 실망이 아닐 수 없다. 물을 담은 다랑이논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기 때문이다. 차는 원양제전에 들어서서 한참을 더 달렸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물을 담은 다랑이논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직 석양이 지기까지는 두 시간 이상이 남았다.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원양제전의 첫 번째 풍경구로 "빠다"라는 곳이다. 일몰 다랑이논 촬영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차에서 내려 전망대로 들어섰다.

그러나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실망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카메라 삼각대를 전망대 난간에 세워놓고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조금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렇게 서 있다 그냥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참으로 난감했다. 마치 무슨 전쟁터 같았다.  
 
다랑이논의 일출을 새벽잠을 떨치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 임재만
   
카메라를 머리 위로 올려 찍기도 하고 앞 사람에게 사정하여 겨우 한두 컷 찍어야 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어디선가 검은 구름이 달려들고 있었다. 에고! 오늘은 이래저래 촬영을 포기를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아쉬운 마음에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구름이 잠시 열치며 그 사이로 빛이 새기 시작한다. 그러나 빛은 원하는 만큼 뿌리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저 맛보기로 잠깐 술수를 부린 것 같다. 별 수 없이 다음날을 기대하고 아쉽게 돌아서야만 했다.
 
다음날 새벽 5시 일출 촬영지인 '다의수'로 갔다. 평일임에도 많은 중국인들이 미리 와 줄을 서고 있다. 6시가 되자 전망대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뛰어야 했다. 그러나 낯선 곳인 데다 어두워 방향을 분간할 수 없었다. 전망대 2단 쪽에 자리를 대충 잡고 동이 터오기를 기다렸다.
 
7시 30분 해가 뜨기까지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여명이 점점 밝아오고 산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산 너머로 붉은 기운이 감돌며 다랑이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다랑이논은 이미 물로 가득 차 아침 빛을 담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을은 다랑이논 위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드디어 해가 산등성이로 올라섰다. 그러나 태양이 너무 강렬한 빛을 다랑이논에 뿌려 댔다. 사진을 담을 빛으로는 너무 강했다. 구름이 엷게 막을 친 다음 태양이 슬쩍 나타나야 제멋인데, 안개도 없고 빛도 너무 강해 색감도 입체감도 없었다. 혹시나 하고 더 기다려 보았지만 다랑이논에는 농부들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마을 탐방을 나섰다. 한적한 마을길로 들어서자 농부들이 다랑이논에서 일하고 있다. 마을 골목에서는 아이들과 닭들이 한가롭게 노니는 풍경이 들어 왔다. 집들은 모두 황토벽돌로 이층으로 지어져 있다. 농번기가 시작되었는지 농부들은 농기구를 길에 갖다 놓고 손질을 하고 있고, 물을 담은 논에는 모를 심기 위해 가족들이 논바닥을 고르고 있었다.  
 
물안개가 하얗게 피어나는 원양의 아침 풍경 ⓒ 임재만
  
아이들은 씻지 않은 얼굴이지만 씩 웃어주는 아이도 있고 부끄러워 도망가는 애도 있다. 사진기를 들이대자 돈을 요구하는 아이들과 할머니도 있다.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다 보니 마을도 돈의 힘이 작동한 것이다. 집안에 들어가 부엌도 보고 방도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 그냥 숙소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전날 다랑이논을 제대로 찍지 못해 오늘은 작심을 하고 일치감치 "빠다"라는 풍경구의 전망대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더 좋은 포인트가 있다는 정보를 얻고 "황초"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랑이논 풍경이 탁 트여 일몰 촬영지로 최적지였다. 카메라 다리를 세워 자리를 선점 해놓고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렸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서 있는 바위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쉼 없이 불어대는 바람을 벗 삼고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다니는 구름을 친구 삼아 세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이따끔 새들도 날아들고 사람들도 다랑이논에 나타나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농부들이 논두렁길을 걸을 때는 논물에 비친 반영을 담기 위해 망원을 걸어 당기기도 하고, 다랑이논에 연기를 피우는 농부의 모습을 가만히 주시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일순간 붉은 노을빛이 다랑이논에 들어온 모습 ⓒ 임재만
 
어느덧 석양이 산등성 위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 먹구름이 어디선가 밀려와 태양을 가리고 말았다. 그러나 구름 모양이 어제와는 달랐다. 오늘은 무언가 조금이라도 내어줄 것 같았다.

해가 서산에 지고 나자 잠시 붉은 빛이 다랑이논에 새어들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 다랑이논에는 붉은 물감이 번져 멋진 그림이 돼 주었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그려놓은 일몰에 비친 다랑이논을 담을 수 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숙소로 늦게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자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왠지 요란한 비 소리가 반가웠다. 이 비로 내일 아침에 맑은 하늘이 열리고 허연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 손톱만한 우박도 떨어졌다.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이른 새벽을 맞았다.
 
새벽 5시 "빠다" 풍경구 전망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미리 나와 줄을 서고 있었다. 전망대가 아닌 마을 속으로 내려갔다. 좁은 길을 따라 100여미터 쯤 내려가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길옆으로 "다의수" 다랑이논이 어둠에도 막힘이 없이 툭 터져 있다. 카메라 다리를 세우자 누군가 슬쩍 다가와 돈을 요구한다. "10위안" 어디를 가나 원양제전은 이미 돈의 힘이 미치는 곳이 되었다.
 
태양은 어제와 같이 또 떠오르고 있었다. 산 너머 하늘에는 붉은 빛이 하늘에 물들기 시작했고 산 아래로는 용모양의 안개가 마을을 향해 서서히 기어오르고 있다. 매우 더딘 속도지만 곧 다랑이논을 덮어 멋진 풍경이 돼 줄 것 같다. 그러나 물안개는 한참을 기어오르다 힘이 부쳤는지 이내 멈추어 섰고, 태양은 산등성이 위로 힘차게 올라섰다.
 
산등성이로 해가 솟자 다랑이논은 금세 황금빛으로 변했다. ⓒ 임재만
 
안개에 덮인 다랑이논은 어제와는 달리 신비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망원으로 잡아 당겼다. 안개에 휩싸인 다랑이논은 금색으로 채색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마치 금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다. 그 황홀한 모습에 셔터를 마구 눌렀다. 먼 길을 달려와 황홀한 풍경을 담을 수 있다는 조급한 마음에 호들갑을 떨지 않았나 싶다.
 
오랜 시간 원양제전의 다랑이논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니족은 다만 먹고 살기 위해 오랜 시간 힘겹게 삶의 터전으로 일궈 놓은 것인데,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 변모하는 현실에서 세상 일은 참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것은 그 무엇이든지 인간의 집념으로 오랜 시간 매달하다 보면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원양의 다랑이논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대지의 예술이 아닌가 싶다.
태그:#다랑이논, #원양, #원양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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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며 만나고 느껴지는 숨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가족여행을 즐겨 하며 앞으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기고할 생각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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