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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7년 전 오늘(4월 12일) 임신 진단을 받았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지 4년 7개월, 결혼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계획을 한 건 아니었다.

남편 유학을 위해 타국으로 온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를 만끽하던 시절이었다. 슬슬 2세 계획을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아직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상태였기에, 우리는 연애 시절처럼 매번 콘돔을 써서 피임을 하던 중이었다.     

임신 진단, 그 황당했던 순간

임신 검사를 요청하기 위해 설문지를 작성할 때 설문지에는 '임신을 계획했느냐' '피임을 했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에 대한 답으로 각각 '노'와 '예스'에 빠르게 체크를 했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에서는 잠시 머뭇거려야 했다. 질문의 내용은 "임신 확진을 받으면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할 것인가"였고, 선택지로는 "그렇다" "잘 모르겠다/상담이 필요하다" "아니다"가 나와 있었다.  

사실 그날 병원에 가기 전에 며칠간 남편과 대화를 나누며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임신이 맞다고 나오면 너무 놀라지 말고 받아들이자고. 그래도 막상 그런 질문을 받으니 선뜻 '임신을 유지하겠다'에 체크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없는 집에서 유학 와서 근근이 살고 있는 형편에 우리가 과연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했던 그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던 나는 결국 두 번째, '잘 모르겠다/상담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문구를 선택해서 설문지를 제출했다.

검사실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임신임을 보여주는 검사 결과를 봤다. 간호사는 내게 '임신 6주' 상태에 있다고 말해주었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아까 그 질문에 '잘 모르겠다/상담이 필요하다'고 체크한 것을 보고 간호사가 '상담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말했지만, 나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들고 손사래를 쳤다.

피임했는데 왜?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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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6주래."

대학원 수업이 있어 병원에 같이 가지 못했던 남편에게 진단서와 함께 '6주' 소식을 알렸더니 남편 역시 황당해했다. 확진 되더라도 놀라지 말고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놀라운 건 사실이었다.

연애 때부터 꼬박꼬박 콘돔으로 피임해 온 우리였기에, 임신 확진을 받고 나니 어쩐지 대단히 억울했다. 그날 썼던 콘돔이 찢어졌던 거 아니냐, 미국 콘돔이 한국 거보다 질이 나쁜 거 아니냐, 그때 우리 처음으로 시카고 놀러 가기로 한 주간이라 되게 즐거웠는데 그래서 흥분해서 그랬던 걸까 하고 별별 추측을 다 해가며 옥신각신 했지만 황당함은 가시지 않았다.

나중에 남편과 함께 간 정기검진에서 우리는 결국 이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우리 피임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죠?"

하지만 담당 조산사는 시크하게 이렇게 말했다.

"원래 콘돔'만' 써서는 100% 방어가 안 돼요."

그랬다. 우린 사실 연애하는 동안 콘돔'만' 썼는데도 방어(!)가 잘 되었기에, 그냥 그런 줄 알았던 것이다. 경구 피임약을 먹거나 피임 장치를 하는 등 다른 피임법을 병행할 생각을 못했던 연애시기, 우리가 3년 반을 만나면서 임신 한번 안 한 건 결국 우연이었던 셈이다.

지금 찾아보니 매번 콘돔을 쓰면 98% 방어된다고 나오긴 하지만 우리 부부가 유독 적은 확률에 걸려드는 사람들인 걸 감안하면 (나중에 나올 얘기지만, 우린 심지어 10만분의 1 확률에도 걸렸다) 놀랄 일도 아니다.

임신 유지와 종결, 그 사이의 무게
 
ⓒ pixabay.com
 
그렇게 시작된 임신 생활. 확진 당시 나를 머뭇거리게 했던 그 질문과 대답을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임신 14주 검진차 병원에 갔을 때 '다음 검진 전까지 쿼드 검사(태아 기형 검사의 일종)를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당시 나는 쿼드 검사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 당시 쓴 일기를 보면 이렇게 써있다.
 
"아이가 기형 확률이 높다고 나왔을 때, 내가 아이를 지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다가서면 나는 아직은 '안 된다'는 입장이 된다. . . . .내 몸 속의 모든 동물적 반응들과 함께 만들어진 적절한 환경에서, 인간의 아이로서 적절한 정도의 생명을 유지하며 성장하고 있는 이 세포 덩어리를, 어디 하나 잘못되었다는, 아니,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확률 게임'에 휘둘려 없던 일로 해 버릴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돈 한 푼 없이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형편. 이 형편에 아이가 잘못되어 나오면 아이를 더더욱 제대로 건사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럼에도.. 아직은 그렇다. 정 형편이 안 되면 이보다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나설 수도 있다. 내가 언젠가부터 '입양'을 생각해 온 것 처럼,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아이를 키워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을 자기 할 일로 여기고 내 마음같이 아이를 키워 줄, 혹은 보조해 줄 사람을 찾을 수도 있다.

심정적으론 프로 라이프(pro-life, 낙태 반대)를, 경제적으론 프로 초이스(pro-choice, 임신중절 찬성)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아직 2주 남았다. 좀 더 생각해보겠지만, 저 마지막 질문, 아이가 잘못되었다고 나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좀체 내놓기가 힘들 것 같다."

임신 때 알았느냐는 말, 그만 좀 합시다
 
사진은 KBS 드라마 <고백부부> 스틸컷
 사진은 KBS 드라마 <고백부부> 스틸컷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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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민하던 우리는 결국, 남편이 내 뜻을 존중해 쿼드 검사를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임신 20주에 실시한 초음파 검사에서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소견이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임신중지를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주수를 꽉 채워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10만명 중 한 명에게 나타난다는 희소질환 진단을 받았다. 2%의 피임 실패 확률 속에서 생겨난 아이가 10만분의 1 확률의 희소질환을 갖고 태어나다니. 운명의 장난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아이는 비록 희소질환 진단을 받았지만, 다행히 당장 생명에 지장이 있는 질환이 아니어서 만 6세가 된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배아기 때 생겨난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혈관에 문제가 생겨 한쪽 다리가 다른 한쪽보다 두 배 크고, 다리 길이도 다르고, 발 모양도 다르지만, 그럭저럭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대뜸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애 다리가 왜 그래요? 임신했을 때 알았어요?"

그렇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20주 초음파 때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 아무도 그 말을 입밖으로 내진 않지만, '이런 아이를 왜 낳았느냐'는 말을 에둘러 하는 거란 걸 우리가 못 알아들을 리 없다.

이처럼 한국이나 미국이나 많은 사람이 '태아도 생명'이라며 낙태를 반대하지만 동시에 '어떤 태아(장애/질환이 있는 태아)는 태어나지 않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생명경시 풍조가 짙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태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 이중적 태도는 생명경시가 아니냐고 되묻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이와 병원을 가던 중"낙태는 나쁜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으로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아이와 병원을 가던 중"낙태는 나쁜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으로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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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몸을 이끌고 마지막 정기검진을 가던 날, 이 동네 '플랜드 페어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라는 기관 앞엔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들어 피켓을 들고 앉아 있었다. 플랜드 페어런트후드는 임신중지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시술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고 약물을 공급하는 등의 일을 하는 기관이다.

그 앞을 지나쳐서 병원으로 향하는 나를 보고 한 미국인 할머니가 말했다.

"그렇지, 잘 하고 있어. 애가 생기면 낳아야지! 낙태는 나쁜 거야!"

하지만 그 할머니는 알 리가 없었다. 내가 비록 '태아를 품은 모체'로서 심정적으로는 프로 라이퍼(pro-lifer)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앞서 소개한, 당시 내가 쓴 일기의 맨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끝났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봤을 땐 결국 프로 초이스를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직, 결혼, 출산, 육아, 교육 이 모든 인간의 활동이 돈 때문에 가능하고 돈이 없어 불가능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프로 라이프를 강요하는 건 사회의, 국가의 기능을 무시하고 개개인에게 과도한 윤리적인 짐을 부과하는 것이기에."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희소질환 아이를 둔 엄마로서 살고 있는 지금, 나는 누구보다도 한국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환영한다. 피임 실패로 인한 임신 경험자로서 좋지 않은 여건에 피임 실패로 임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임신한 여성 당사자로서 임신 유지도, 종결도, 어느 하나 쉬운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 역시 몸소 번민하며 겪었다.

출산과 육아를 감당해 온 여성 당사자로서 출산과 육아에 따른 신체적, 경제적, 정서적 부담 역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타국에서 희소질환 아이를 낳아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장애와 질환을 가진 사람들,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사회가 어떻게 차별하고 배제하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몇 번의 임신 종결 가능성을 뿌리치고 굳은 의지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아이를 향해 '이런 세상에 태어나 살게 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사회가 정말 문제가 없단 말인가?

여성들이 임신 종결을 선택할 때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에 따른 도덕적 책무나 윤리적 문제를 가벼이 여길 사람은 없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여성들이 임신 종결을 '손쉽게' 택하리라고 보는 건 무지의 소치다. 어떤 상황에서 아이를 가졌든 여성 혼자 그 짐을 떠안지 않을 수 있도록 공동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낙태죄 폐지는 필요한 조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낙태죄 폐지를 외쳐 온 사람들이 하는 말속엔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 어떤지를 똑바로 보라는 날카로운 요구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의 아이를 가졌든 비난받지 않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아이와 부모 모두 행복한 사회. 그런 사회가 만들어져 있지 않은 한, '아이가 생기면 낳아야지, 낙태하는 건 벌 받을 일이야!'라는 구시대적 법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낙태죄 폐지는 결국, 우리 사회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품어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그 후의 발걸음이 기대되는 사람으로서,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을 마음껏 환영하고 싶다.

태그:#낙태죄폐지, #낙태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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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활동가로 살고 싶은 사람. 아이의 선천성 희소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T 증후군)'을 계기로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다.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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