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 이태경 PD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 이태경 PD ⓒ CJ E&M

 
'받아쓰기'와 '먹방'.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은 이 단순한 포맷으로 주말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지상파가 점령한 주말 저녁 시간대를 겨냥해보자며 시작된 tvN의 프로젝트는 방송 초반 '올드하다', '뻔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이 거듭될수록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졌고, 멤버들의 캐릭터가 확고해지며 방송 1년 만에 명실상부 토요일 대표 예능으로 자리 잡았다. 

이 막대한 임무를 해낸 이태경 PD를 18일 서울 상암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요즘 <놀토> 보는 재미에 토요일만 기다린다'는 기자의 말에, 이 PD는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며 밝게 웃었다. 

"토요일 오후 편성이 확정됐고, 신동엽이라는 걸출한 MC까지 이미 섭외된 상태였어요. 전 그 시간에 신동엽과 뭘 할지만 준비하면 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예전에 tvN에서 방송됐던 <골목대장>이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이 생각났어요. 그때 코너 중에 '멘붕의 받아쓰기'라고 노래 가사를 받아쓰고, 틀리면 얻어맞는 게임이 있었는데 이해가 쉽고 익숙한 형식이라 주말 레귤러 예능에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코너였던 게임을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으로 확대하기 위해 이런저런 룰을 추가했어고, 여기에 시장 투어, 먹방 같은 장치들을 더해지면서 지금의 <놀토-도레미 마켓>이 만들어졌어요."


고정 출연진들의 합이 만들어내는 '재미'
 
 tvN < 놀라운 토요일 > 출연진들로 부터 생일 축하를 받은 김동현 (사진 출처 김동현 공식 인스타그램)

tvN < 놀라운 토요일 > 출연진들로 부터 생일 축하를 받은 김동현 (사진 출처 김동현 공식 인스타그램) ⓒ 김동현

 
<놀토>의 재미는 신동엽부터 박나래, 문세윤, 혜리, 김동현, (지금은 하차한) 키, 한해 등 각기 다른 개성의 고정 출연진(도레미)들이 만드는 합에서 나온다. 도레미들과 게스트가 힘을 찾아 답을 찾는 형식을 띠고 있는데, 도레미들은 이 정답을 찾아내는데 누가 더 많이 기여했는가를 두고 생색내고 투닥거린다.

정답 기여도가 높다고 주는 혜택도, 상품도, 별다른 특권도 없지만, 멤버들은 이 무의미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그 과정에서 쌓인 서사와 관계성은 짧은 시간 내에 멤버들의 캐릭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게임 진행자로 흥을 돋우는 MC 붐, 도레미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먹방요정 입짧은햇님의 역할도 크다. 

"햇님이 누나는 우리끼리 '놀토의 정도전'이라고 불러요. 시작부터 같이한 개국공신이잖아요. 사실 쉽지 않은 역할이에요. 출연자들 중 혼자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출연자들과 친분도 없었고, 혼자 동떨어진 자리에 앉아 주어진 역할만 해야 하는데 처음에 얼마나 어색했겠어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놔도 얹힐 수밖에 없죠. 근데 그 역할을 너무 잘해줬어요. 

사실 초반에는 누나에게 빚도 많이 졌어요. 방송에서 <놀토>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인서트용으로 남겨뒀던 음식을 가져가서 먹방 아이템으로 활용하기도 하더라고요. 유튜브에서 계속 우리 프로그램을 언급해주니까 너무 고마웠죠. 가끔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희 방송 본방 시청자가 평균 56만명 정도거든요? 근데 입짧은햇님 팔로워가 60만명이에요. 저희가 입짧은햇님에게 묻어가는 그림이에요. (웃음) 덕을 많이 봤죠."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 방송화면 캡처.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 방송화면 캡처. ⓒ CJ E&M


하지만 이렇게 잘 짜인 팀워크는 1년 만에 재정비해야 했다. 주요 출연자였던 키와 한해가 입대로 하차했기 때문이다. 도레미들 간의 합이 좋았던 프로그램인 만큼, 새 멤버들에 대한 기존 팬들의 반발은 예상된 결과. 새 멤버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피오와 넉살이 투입되고 현재까지 4회가 방송됐다. '아직은 새 멤버들이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말에 이태경 PD는 "어떻게 전학 가자마자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겠느냐, 처음엔 그럴 수밖에 없다"며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방송된 것보다 더 많은 녹화를 마친 그의 평가는 "예상보다 적응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었다.   

"피오는 두세 번 경험이 쌓이니까 금세 적응하고 잘 맞추더라고요. 사실 피오가 되게 잘 듣거든요. 그런데 다른 출연자들이 피오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질 않았어요. (웃음) 지금은 점점 피오에게 기대고 있어요. 신뢰도가 높아진 거죠. 

넉살은 처음엔 분위기를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많이 내려놨어요. 묘하게 내려놓음과 맞물려 게임에서도 활약하게 되고 분위기도 더 좋아지더라고요. 지금은 너무 잘하고 있어요.

사실 처음엔 새 멤버가 들어와 문제를 잘 맞히기 시작하면 잘 적응하는 거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본질은 '문제를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아니라, 기존 멤버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면서 재미있게 노느냐'인 것 같더라고요. 이 기준으로 보면 모두 잘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매주 수십 곡 후보에 올려놓고, 최종 2곡 결정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에 새로 투입된 래퍼 넉살과 피오.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에 새로 투입된 래퍼 넉살과 피오. ⓒ CJ E&M


<놀토>를 처음 찾은 게스트들은 처음엔 룰을 몰라 우왕좌왕 하기도 하지만, 금세 게임에 빠져들어 흥분하기 일쑤. 이태경 PD는 "게스트 입장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해야하는 토크쇼보다, 해야 할 일이 명확한 <놀토>가 더 쉽고 덜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그 이유를 자평했다. 점점 게임에 적응해 끝날 때 아쉬워하는 게스트들도 많은데, 이홍기는 '한 번 더 불러 달라' 부탁까지 하고 갔다고. 출연한 게스트들이 주변 연예인들에게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이야기도 많이 해준 덕분에 섭외도 수월해지고 있단다.

그만큼 게임의 재미를 유지해주는 게 중요하다. 난이도 조절은 최우선 고려사항. 매주 수십 곡의 노래를 후보에 올려두고 최종 2곡을 결정한다. 이 결정 과정에 이태경 PD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6곡 정도 최종 후보에 올려두고 작가님들과 시뮬레이션을 해봐요. 제 수준은 (김)동현 형 정도? 제가 잘 맞추면 작가님들이 가차 없이 후보에서 빼요. 비참하죠. 하하.

가끔 작가님들이 진짜 안 들리는 초고난도 노래를 찾아오시기도 하는데, 이런 노래는 멤버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제시해요. 맥락 없이 갑자기 초고난도 문제를 내면 그냥 괴롭히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여러 가지 부가 힌트와 함께 문제를 주고, 풀지 말지는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거죠."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 이태경 PD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 이태경 PD ⓒ CJ E&M


이렇게 제시된 문제 중 하나가 하키의 <꿈꾸는 소년>이었다. 생소한 가수의 생소한 노래인 데다, 독특한 비음이 섞인 하이톤 창법으로 부른 노래는 도레미들을 모두 '멘붕'에 빠뜨렸다. 도대체 이런 노래를 어떻게 찾은 거냐고 묻자, 이태경 PD는 "작가님이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라며 웃었다. 

"사실 하키의 곡은 저희 프로그램의 모티브가 된 <골목대장>에 출제됐던 문제예요. <골목대장> 메인 작가였던 분이 지금 저희 세컨 작가세요. 그때 이 노래를 회심의 일격으로 준비하셨는데, 현장 실수로 정답이 유출돼서 방송에는 못 나갔대요. 그게 너무 한이 돼서 다시 꺼내셨다고. 하하하. 사실 그때 그 현장에 있었던 출연자가 문세윤씨거든요. (혹시 기억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끝나고 물어보니 전혀 모르더라고요. (웃음) 가사 오픈되고 바로 접은 문제라 기억에 제대로 안 남았나 봐요. 다행이었죠." 

방송 직후 하키의 <꿈꾸는 소년>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순위에 올랐다. <놀토>의 힘이었다. 문제로 출제된 노래들이 검색어 순위에 오르거나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하는 일은 이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쯤 되면 숨은 명곡들, 잊혀진 명곡들을 <놀토>를 통해 재조명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길 법하다. 하지만 이태경 PD는 손사래를 쳤다. 곡 선정의 기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재미'라면서 말이다. 

"<놀토>의 기획의도는 토요일 밤 시청자분들에게 웃음을 드리자는 거예요. 저희는 오로지 이 취지에 맞게 선곡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게임을 위해 선곡된 숨은 명곡들이 저희 프로그램을 통해 조명 받고 사랑받게 된다면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효과일 뿐이에요. 저희가 하키 노래를 선곡할 땐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였지, 하키라는 뮤지션을 시청자분들께 소개해드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거든요. 앞으로도 이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난 tvN에서 필모그래피가 슬픈 PD 중 하나였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 방영되는 tVN < 놀라운 토요일 > 의 한 장면.  신동엽은 여기서 MC 역할은 후배 방송인 붐에게 넘기고 각종 음악 퀴즈를 푸는 다른 출연진과 동등한 입장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 방영되는 tVN < 놀라운 토요일 > 의 한 장면. 신동엽은 여기서 MC 역할은 후배 방송인 붐에게 넘기고 각종 음악 퀴즈를 푸는 다른 출연진과 동등한 입장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 CJ ENM


이태경 PD는 "<놀토>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시청자 분들 덕분"이라면서 "처음 <놀토>를 시작할 때 1년 뒤에 입대할 친구들을 둘이나 섭외한 이유가 뭐겠나, 1년 이상 갈 거라고 예상을 못했던 거다"하며 웃었다. 

그런 그에게, 넉살과 피오가 자리를 너무 잘 잡으면 키와 한해가 돌아올 자리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 PD는 "도레미 자리는 기꺼이 늘어날 수 있다"면서 "그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격스럽다"고 했다. 키와 한해가 제대하는 2년 뒤까지 <놀토>가 폐지되지 않고 그들이 기꺼이 돌아오겠다고 할 만큼 인기를 유지하고 있을 거란 이야기이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이 PD는 자신을 "tvN에서 필모그래피가 슬픈 PD 중 하나였다"고 소개했다. 여러 프로그램을 연출했지만, 이토록 큰 사랑을 받은 것도,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것도 <놀토>를 통해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조연출도 저랑 3개째 프로그램을 같이하고 있는데 서로 감격스러워서 서로 좋은 반응 보여주고 그래요. 그게 낙이에요. 이렇게 많은 피드백을 받는 것도 처음인데, 다들 좋은 말만 해주시니까 너무 행복하고 감격스럽고...

멤버가 바뀌고 나서 늘어난 부정적인 댓글도 꼼꼼하게 보고 있어요. 사실 처음엔 상처받아서 한동안 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꼭 좋은 말 해주는 간신 말만 듣는 꼴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요즘은 다시 또 시청자 반응을 열심히 살피기 시작했어요. 잘 체크해서 저희가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반영하겠습니다." 


"<놀토> 시즌2가 시작됐다고 농담하기도 한다"
 
 tVN < 놀라운 토요일 >의 한 장면.  프로그램 내에서 `논리의 신`으로 불리우는 신동엽은 특유의 논리 정연한 화술로 출연진을 설득하며 문제를 풀어 오답도 정답처럼 보이게 하는 묘한 능력을 선사한다.

tVN < 놀라운 토요일 >의 한 장면. ⓒ CJ ENM


최근 <놀토>의 '도레미 마켓'은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밉컴(MIPCOM, 글로벌 방송 콘텐츠 마켓)에 출품됐다. '슬픈 필모의 PD'에서, 세계 시장에 콘텐츠를 내놓은 PD가 된 소감을 묻자 "마켓에 '사실 분~' 하고 내놓은 것뿐이지 아직 팔린 것은 아니"라며 웃었다. 

"사실 전 우리 프로가 재미있는 이유가 한국어이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내'와 '네'처럼, 발음은 같지만 모음 표기 하나 차이로 완전히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들이 있잖아요. 그걸 두고 싸우는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오는 재미를 한국어만큼 잘 살릴 수 있는 언어가 있을까 싶은 거죠. 일본어로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하던데, 마켓에 내놨으니 일단 기다려봐야죠. 크게 기대하고 있진 않아요. (웃음)" 

이태경 PD는 최근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도레미 마켓' 이후의 포맷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멤버들이 쌓은 캐릭터를 활용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MBC <무한도전>이 '퀴즈의 달인'을 통해 멤버들의 캐릭터를 구축한 뒤 리얼 버라이어티로 진화한 것처럼, 이 PD도 '도레미 마켓'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포맷에 대한 고민은, 해야 해서 한다기보다는 그냥 직업 소명인 것 같아요. 1~2년은 시청자분들이 재미있다 느끼실 수 있겠지만, 5년까지는 어려울 거 아녜요. 바꿀 수밖에 없는 순간에 떠밀리듯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멤버들의 캐릭터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지금 멤버들의 관계성이나 캐릭터를 활용해 뭘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야외 촬영을 해볼까, 벌칙이나 혜택으로 어디 여행을 다녀와 볼까, 이런저런 생각이요. 넉살이 동현이 형 데리고 <쇼미더머니>에 한 번 나가면 어떨까 이런 생각도 해보고. 하하하. 

사실 저희끼리는 이미 <놀토> 시즌2가 시작됐다고 농담하기도 해요. 멤버도 바뀌었고, 게임 룰도 많이 변화했거든요. 키가 하차하면서 힌트가 보강되는 바람에 도레미들, 특히 혜리가 굉장히 자존심 상해하긴 했지만 (웃음) 지금까지 보여드린 것과 다른 색깔의 재미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언제나 <놀토>를 편견 없이 지켜봐 주시고, 예쁘게 봐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시청자분들께 보답할 방법은 즐거움을 드리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정말로 키와 한해를 데리고 올 수 있도록, 그날까지 계속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 이태경 PD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 이태경 PD ⓒ CJ E&M

놀라운 토요일 놀토 도레미 마켓 이태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