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에 '52권 자기 혁명(연재보기)'이란 제목으로 연재를 끝낸 지 1년이 넘었다. 연재가 끝나자마자 올리려고 나름대로 '후기'를 써보았는데, 어쩌다보니 글을 올릴 시기를 놓쳤다. 지금이라도 <오마이뉴스>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소감을 남기고 싶어서, 늦은 후기를 써본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기록을 위해 쓰던 블로그 글과 '기사'는 달랐다. 글이라는 것이 책임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이었다. 한글 맞춤법을 참 많이 배웠으며, 내 글에 군더더기가 정말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조금이나마 성장했기를 바란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하게 된 것도 많은 우연이 겹쳐서 일어난 일이었다. 스티븐 기즈의 <습관의 재발견>, 그리고 핼 앨로드의 <미라클 모닝>을 만나면서, 책을 읽고 한 가지씩 고치다보면 게으름이라는 고질병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1년에 52권을 읽고 한 가지씩 습관을 고쳐나가자는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왕 글을 쓸 거라면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더 책임감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사이트를 찾아 첫 기사를 올렸다. 52권 프로젝트의 프롤로그였다. 담당 기자님의 격려 전화를 받아 기운이 났다. 그런데 첫 번째 책부터 무려 다섯 개의 글이 연속으로 실시간글(비채택)이 됐다. '기사'라는 글의 특성을 망각한 결과였다. 두서 없고 필요 이상으로 긴 글을 누가 읽겠는가.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원래는 여섯 번째 책이던 <습관의 재발견>이 52권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다시 52권을 정리해서 체계를 바꾸고, 새롭게 연재를 시작했다. 의지력의 고갈에 관한 두 번째 글을 교정하면서, 글을 짧게 줄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도 거듭 깨달았다.

내 글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으므로, 연재와 동시에 틈틈히 서평도 올렸다. 서평을 올리는 것은 글쓰기 연습에도 좋았고, 몇 가지 장르에 편중되어 있는 '52권 자기 혁명'의 레퍼토리와는 다른 책을 읽고 글을 쓸 핑계도 되어 주었다.

칼 새피나, 미안해
 
 <Beyond Words> 표지
  표지
ⓒ Picador

관련사진보기

 
안타깝께 52권에서 탈락한 책들에 대해 짧게나마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다. 가장 아까운 책은 칼 새피나의 <Beyond Words>다. 동물들도 서로 소통한다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나는 언제나 다른 종과의 교감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아 왔다. <라따뚜이>는 내게 최고의 영화 중 하나다. 다른 이들은 가벼운 개그 영화라고 생각할 지 모르는 <꼬마참새 리처드>에도 나는 감동했다. 칼 새피나의 책을 읽고, 다른 종과의 교감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직 우리말 번역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래서 같은 주제로 글을 쓸 책을 찾아 헤맸다. 그래서 <시튼 동물기>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당신도 동물과 대화할 수 있다>라는 괴서도 보게 됐다. 후자는 '믿어라, 그러면 너도 집나간 네 고양이와 원거리 통신이 가능하다'라는 주장을 펼치는 책으로, 사이비 교주가 쓴 책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적절한 책을 찾지 못해 나는 이 주제를 포기했다.

52권의 대미를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책 <도덕경>으로 끝냈지만, 마지막 책 후보로는 보르헤스 역시 고려했다. <도덕경>에 대해 내가 감히 한마디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보르헤스에 관한 글을 한 번 제대로 써보고 싶기도 했다.

보르헤스라면 <픽션들>과 <알렙>이 거의 대등하게 훌륭하다. 어느 책을 할지, 그중에서 어떤 단편을 다룰지도 정하기 힘들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 '자이르'는 <알렙>에 실려있다. 하지만 <픽션들> 역시 만만치 않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 '피에르 메나르',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가 모두 실려있다.

문제는 또 있었다. 픽션으로 대미를 장식하면, 세상의 수많은 픽션 명작들은 어쩔 건가? 보르헤스가 <햄릿>이나 <음향과 분노>, <호밀밭의 파수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있나? 같은 남미 작가 중에도 마르케스가 있다. <백년의 고독>이 <픽션들>이나 <알렙>에 밀린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노자에게 돌아왔다. <도덕경>이 너무 어려우면 <장자>로 하지 뭐, 이런 생각이었다.

아툴 가완디의 책 중에는 <Being Mortal>을, 말콤 글래드웰 책으로는 <Tipping Point>를 더 좋아했지만, '실천할 수 있는 과제'와 연결하려니 <Checklist Manifesto>와 <Blink!>를 고르게 되었다. 설득술의 고전 <You Can Negotiate Anything>, 경제학 명저 <맨큐 경제학>도 아쉽게 52권 목록에서 빠졌다.

조서선 스펜스의 <강희제>, 스티븐 호킹의 <호두껍질 속의 우주>, 그리고 브라이언 그린의 <우아한 우주>, 레이 커즈와일의 <마음의 탄생> 모두 너무 좋아하는 책들이지만, '52권 자기 혁명'이라는 주제에는 끼워 맞출 수가 없었다. 반쯤은 억지로 <이기적 유전자>를 포함시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

1년에 책 백 권은 읽자고 결심하고 다섯 번째 해를 보내고 있다. 첫 해는 연말에 이틀 정도 연가를 내서 간신히 백 권을 맞췄다. 둘째 해에는 비교적 쉽게 백 권을 맞췄다. 연말을 이틀 정도 남기고 백 권을 채웠는데, 일단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책이 전혀 안 읽혔다. 천성이 게으른가 보다.

셋째 해인 2017년에는 200권을 읽었다. 8월 쯤 세어보니 거의 백 권을 읽었다. 그래서 갑자기 목표를 높게 잡고 한 번 달려 보았다. 200권을 채우긴 했는데,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2018년에도 200권을 읽는 데 성공했다. 올해도 목표는 200권 이상이다.

나는 집중력이 대단히 약하다. 30분도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독서를 한다. 제일 무난한 것은 자투리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동할 때,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잠깐 기다릴 때, 아침에 일어나서 토스트를 먹고 잠깐 시간이 남을 때, 이럴 때가 딱 좋다. 길어야 10분 정도니까.

KTX도 좋다. 출장 왕복길에 200~300쪽 짜리 책을 한 권 읽을 수 있다. 아무것도 못하고 갇혀 있어야 하는 숙직 시간에는 500~600쪽 짜리 책도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평소에는 불가능한데, 참 신기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책읽기도 싫어하지만 시간 낭비를 더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

책이란 건 뭘까. 그저 글을 엮은 것뿐인데 마치 마력이라도 가진 물건 같다.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내 삶은 달라졌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달라질 것이다. 훌륭한 스승님이 곁에 있으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관용이 강물처럼 흐르는 소통사회를 희망하는 시민입니다. 책 읽는 브런치 운영중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junatul

이 기자의 최신기사 읽어 마땅한 소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