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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신군부가 무단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민주주의 요구를 묵살했던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광주를 대표하는 거리인 금남로와 전남도청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시위를 벌였는데요. 신군부는 이런 요구를 총칼로 묵살했지만, 그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일어선 시민들의 저항은 역사에 남게 됐습니다. 

그 역사는 지금도 금남로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기록관과 옛 전남도청의 시계탑·분수대가 그 증거입니다. 그럼 이제 그 역사를 품고 있는 광주 금남로의 두 명소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가톨릭센터였지만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5.18 기록물들을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 김이삭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가톨릭센터였지만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5.18 기록물들을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 김이삭

1980년 5월 금남로의 진실 품고 있는 5.18 기록관

1975년, 천주교 광주대교구가 인수한 옛 광주지방법원 자리엔 지상 7층, 지하 1층 규모로 새로운 건물이 지어집니다. 지금은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으로 리모델링돼 자리잡고 있는 옛 광주가톨릭센터가 그것입니다. 

당시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내진 설계를 했고,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광주 지역에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던 광주기독교방송(광주 CBS)이 함께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또 이곳은 금남로에 있었기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이곳에서 학생들이 연좌시위를 벌인 것을 비롯해 많은 시민들의 저항과 투쟁이 전개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계엄군이 학살을 단행했고, 그들은 건물 6층에 있는 사제관 식당 옆 휴게실에도 총탄을 난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역시 신군부가 헬기를 이용해 기총 소사를 벌였던 전일빌딩 못지 않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5.18 이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당시 천주교는 계엄군의 학살 행위와 시민들의 저항을 전국의 교회와 세계에 알림으로써 신군부가 은폐한 광주의 진실을 외부에 전파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5.18 당시 희생된 유족들과 부상자들의 집회 장소이자 구속자들의 구명·석방·진상규명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한 1987년 6월항쟁 당시엔 천주교 수녀들이 이곳에서 5.18 진상규명을 위한 기도회를 열기도 했죠. 그래서일까요. 2011년에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을 계기로 5.18 기록관이 2015년 옛 가톨릭센터 건물에 자리잡게 됩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가톨릭센터였지만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5.18 기록물들을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 김이삭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가톨릭센터였지만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5.18 기록물들을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 김이삭

항쟁, 기록, 유산 그리고 보존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의 전시는 크게 항쟁, 기록, 유산, 보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항쟁의 기록을 담은 1층의 1전시실은 1980년 5월의 항쟁을 시간대 별로 구성해놨습니다. 

아울러 항쟁의 주요 사건들을 재연해 놨습니다. 이곳에서 시민군에게 줄 주먹밥을 담은 함지박, 길가에 나뒹구는 주인 잃은 신발 등의 소품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미디어 아트나 전시 연출을 통해 사실감을 극대화하면서 광주항쟁의 중심에 내가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게 꾸며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시실 앞 1층 로비엔 계엄군의 총탄이 관통했던 옛 광주은행 본점 유리창을 전시해 놨습니다. 지나치기 쉽지만 역사의 현장을 간직하고 있는 자료입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가톨릭센터였지만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5.18 기록물들을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 김이삭

2층의 2전시실에는 5.18과 관련한 직접적인 기록물(일기장, 취재수첩, 사진자료, 정부기관·군사기관 자료 등)과 이를 계승한 기록물(악보, 문학작품, 포스터, 만화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여기 전시돼 있는 기록물들은 모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입니다. 모두 의미가 있는 자료입니다. 또한 이곳엔 정보검색시스템이 마련돼 있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쉽게 찾아볼 있습니다. 

3층의 3전시실에는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동유럽 혁명의 신호탄이 된 폴란드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의 '21개 요구사항'을 적은 벽보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투쟁 기록을 담은 자료들이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가톨릭센터였지만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5.18 기록물들을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 김이삭

마지막으로 6층에 올라가면 옛 광주가톨릭센터의 모습을 남겨둔 4전시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시 천주교 광주대교구를 섬기고 있었던 윤공희 대주교의 집무실과 침실, 사제실 등을 그대로 남겨놨습니다. 

6층에서 거주하며 업무를 봤던 윤공희 대주교는 5.18 민주화운동의 전개과정과 계엄군의 만행을 지켜보면서 사제들과 함께 시국미사와 사진전 개최 등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아울러 진상 파악을 위해 피해자 신고와 행방불명자 신고를 받고, 민주화 투쟁을 위한 단식기도를 전개하는 등 앞장서서 5.18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신군부에 의해 사제들이 수감되는 상황에 놓였음에도 그는 직접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에게 5.18 관련 수감자들의 석방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민주주의와 5.18 진상규명을 위한 윤공희 대주교의 노력은 지금까지도 5.18 기록관 6층에 고스란히 간직돼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주화 투쟁을 위한 결의를 다진 시민들의 궐기대회가 있었던 구 전남도청 앞의 분수대 ⓒ 김이삭

5월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시계탑과 분수대

5.18 민주광장으로 불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옛 전남도청) 앞은 1960년대 후반의 금남로 확장 공사를 통해 형성됐습니다. 한때 분수대를 중심으로 한 회전 교차로도 있었지만, 지금은 문화전당 공사와 함께 보행자 공간으로 그 기능이 바뀌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3.15부정선거 반대운동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박근혜 퇴진 촉구 집회를 비롯한 다수의 집회들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5월 18일 이전에는 학생과 시민들이 이곳에 모여서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족·민주화대성회'를 3일 동안 열었고, 5.18 당시엔 분수대를 연단삼아 민주화 투쟁에 대한 결의를 다지는 시민 궐기대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서울광장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4.19 혁명, 6월항쟁)의 역사적 상징인 것과 같이, 이곳 5.18 민주광장 역시 한국 근현대사에 의미 있는 장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기억하고 있는 5.18민주광장의 시계탑 ⓒ 김이삭

분수대 근처에는 1971년에 건립된 시계탑이 있는데요. 청년회의소 전국회원대회를 광주에서 개최한 걸 기념하고자 광주청년회의소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이 시계탑은 광장의 중요 장소입니다. 

"시계탑은 알고 있다"는 말처럼 시계탑은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겪은 고난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그 때문에 신군부는 시계탑을 광주시 서구 농성광장으로 옮겨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은 2015년 1월 27일 시계탑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5월의 아픔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이 시계탑은 매일 오후 5시 18분 세 번의 타종과 함께 '임을 향한 행진곡'을 들려줍니다. 혹시 그 시각에 이곳을 지나간다면 그때만큼이라도 그 의미를 되새겨보길 권합니다.
 
과거 민주화를 요구했던 시민들이 고문당한 전남경찰청 대공분실 터에 자리잡은 민주의 종각 ⓒ 김이삭

민주 인사 고문했던 아픔의 장소... 그곳에 세워진 종각 하나

5.18 민주광장에는 분수대와 시계탑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장소가 또 하나 있습니다. 2005년에 세워진 '민주의 종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곳은 서울의 보신각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매년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갈 때마다 새해 카운트다운과 함께 제야의 종을 33번 타종하는 행사를 치르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과거 전남경찰청의 정보과 대공분실로 사용됐습니다. 1974년에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과 단순한 친목모임을 용공불순세력으로 조작한 1982년의 횃불회 사건과 같은 여러 사건을 조작하고 민주 인사들을 고문했던 아픔이 남아있는 곳이랍니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겪은 아픔과 고통 위에 종소리를 울리는 종각이 세워졌으니, 이만큼 아이러니한 장소가 또 있을까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항쟁지도부이면서 계엄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펼쳤던 구 전남도청 별관(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김이삭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항쟁지도부이면서 계엄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펼쳤던 구 전남도청 별관(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김이삭

목숨 건 시민군, 신군부에 결사저항했던 옛 전남도청 별관

5.18 민주광장 앞에는 과거 전라남도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고, 5.18 당시엔 시민군 본부가 있었던 옛 전남도청이 있습니다.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한 지금 그 자리는 문화공간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됐습니다. 하지만 5.18 당시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계엄군에 맞서서 항전했던 도청 건물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옛 도청 별관 건물은 공사 과정에서 일부분이 철거되고 철골 구조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깁니다. 

하지만 이곳이 문화전당의 상징이면서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예술적으로 볼 때 괜찮은 요소로 느껴집니다. 지금 옛 도청 별관 2층에서는 이곳의 변화상을 담은 전시회(전남도청 - 시간, 장소, 사람 그리고 기억)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는 6월 30일까지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https://gl-revieuer86.postype.com/post/3753988)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518기록관, #구 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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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프로듀서보다 솔직담백한 국민리뷰어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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