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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320호실에는 변절자 김규환(김이대)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320호실에는 변절자 김규환(김이대)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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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의 수괴라 할 수 있는 자로, 조선 내에서는 최린과 최남선 등이 있고 만주에는 김이대가 있다."

1937년 5월 발간된 조선민족혁명당 기관지 <전도>에 삽입된 내용이다. 1919년 3.1혁명의 주역이었지만 이후 변절해 일제의 앞잡이가 된 최린-최남선 못지않은 인물로 만주 지역 김이대를 언급하고 있다.

<전도>는 김이대를 두고 "과거 만주에서 만주동포참살의 혈채(血債)를 산적(山積)했는데(피로 진 빚을 잊지 않았는데, 기자주), 지금은 적의 협화회(協和會)의 수괴로 만주에서 적과 악전고투하는 혁명동지를 계속 도살하는 음모에 몰두하고 있다"라고 기록했다.

문제는 김이대가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잠들어있다는 사실이다. 현충원 안치 과정에서 변절 전 이름, 독립운동가 김규환으로서의 행적만 검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김규환이 현충원으로 이장되기 3년 전인 지난 2013년부터 그의 친일행적을 고발하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보훈처에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훈처는 2016년 김규환이 현충원 충혼당에 안치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폭넓고 면밀히 검토하겠다"라는 형식적인 답변만 한 채 김규환의 현충원 이장을 좌시했다.

김규환의 친일행적을 처음 발견해 보훈처에 민원을 넣은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 소장은 "김규환의 유해가 현충원에 안장된 후 2017년 다시 한 번 민원을 제기했고, 결국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김규환의 서훈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보훈처가 처음부터 민원을 제대로 검토하고 논의했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졌다"는 이유로 김규환의 독립유공 정부포상을 취소한 바 있다. 

독립운동가 김규환, 변절자 김이대  
 
 변절자 김규환(김이대)가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변절자 김규환(김이대)이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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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절자 김규환(김이대)가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입구.
 변절자 김규환(김이대)이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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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1910년대 만주지역에서 손꼽히는 독립운동가였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이후 2016년 4월 18일엔 보훈처의 용인 하에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치됐다.
 
"1909년 남형우, 안희제, 김동삼 등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신민회 계열의 비밀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나라가 망한 뒤에는 만주 지역에서 동창학교를 설립해 교포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구국교육을 실시했다." - 김규환의 독립유공자공훈록

이후에도 김규환과 관련해 광한단 부위원장(1920), 대한통의부(1922), 대한정의부(1925), 정의부(1926), 국민부(1929), 조선혁명당 중앙위원(1929) 등 여러 무장독립운동 단체에서 주요하게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1929년 11월 일제에 체포된 김규환은 이후 변절자의 길을 걷는다. 이미 1920년대부터 김이대라는 이름을 동시에 사용한 김규환은 1931년 만주사변이 터지자 '간도협조회'와 '만주국협화회'의 간부로 활동하며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이어간다. 특히 그가 간부로 활동한 '간도협조회'의 경우, 1934년 9월 연길 지역에서 조직되어 '치안유지'라는 이름으로 항일운동의 예봉을 꺾는데 큰 역할을 했다.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김규환은 김이대라는 이름뿐 아니라 김검군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다. 조 소장은 "1935년 이후 김규환은 김검군으로 활동하며 만주국 일본영사관 소속 '선무반' 책임자로 독립운동가의 귀화업무를 담당했다"면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독립군을 밀고하고 회유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독립운동가 김승학 선생이 1958년 쓴 <망명객행적록>에도 김규환과 선무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선무반은) 독립운동자들을 만주국에 귀화시키는 사업을 했다. (김규환은) '지금이라도 선생이나 자제가 이 선무반에서 같이 행동하신다면 무사할 것 아니겠습니까?'라는 말을 하며 독립군을 회유했다."
 
 독립운동가 김승학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사>에는 김규환이 김이대란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김이대 이름 아래에는 '변절'이라는 두 글자가 뚜렷하다.
 독립운동가 김승학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사>에는 김규환이 김이대란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김이대 이름 아래에는 "변절"이라는 두 글자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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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는 왜?
 
그렇다면 보훈처는 왜 김규환의 친일 행적을 접수하고도 국립서울현충원의 유해 안치를 용인했을까.
 
보훈처는 "(김규환의) 유족이 2015년 11월 서울지방보훈청에 국립묘지로 이장을 신청했다"면서 "이후 (국방부 관할인) 국립서울현충원이 2015년 11월 16일 관련 문서를 접수해 2016년 4월 18일에 이장을 완료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독립유공자 묘소의 국립묘지로의 이장은 포상 이후 이장시기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고 유족의 희망에 따라 원하는 시기에 이장 절차가 진행된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조준희 소장은 "2013년 첫 민원을 제기했는데도 2016년 김규환의 현충원 이장이 진행됐다"면서 "3년 동안 수차례 기회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라고 성토했다.

보훈처는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 취소는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심의 및 의결 사안으로 객관적인 자료와 유족의 소명 등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김규환 선생의 서훈 취소는 미국에 거주하는 유족의 소명, 학계 연구자들의 의견 수렴, 추가 자료조사 등 서훈 취소 결정에 상당 시간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19일 독립운동가 김규환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다. 사진은 행정안전부에서 발행한 관보 중 일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19일 독립운동가 김규환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다. 사진은 행정안전부에서 발행한 관보 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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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인 점은 지난 2월 김규환의 서훈 취소 이후 보훈처가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훈처는 <오마이뉴스>에 "서훈 취소에 따라 서울현충원에 이장 조치를 요청했다"면서 "(현충원 확인 결과) 지난 4월 30일 유가족이 '연내에 이장할 것'이라는 답을 줬다"라고 밝혔다. 

또 보훈처는 "(김규환 유족에게) 지급된 보훈급여금이 약 4345만원에 달한다"면서 이에 대해서도 "회수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현행법상 친일변절자 자손 스스로 유해를 이장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거나, 강제 이장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은 모두 다섯 번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 문턱을 넘는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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