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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암태도 기동마을 삼거리에 그려진 동백 파마 벽화. 천사대교가 개통된 이후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신안 암태도 기동마을 삼거리에 그려진 동백 파마 벽화. 천사대교가 개통된 이후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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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플레이스(hot place)다. 지나는 차마다 멈춰 선다. 사람들이 내리고, 담벼락의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차들이 오가는 도로변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신안군 암태면 기동삼거리에 그려진 '동백 파마 벽화' 앞에서다.

암태도의 '동백 파마 벽화'가 뜨고 있다. 열기가 요즘 한낮의 날씨만큼이나 강렬하다. 동백꽃 파마의 주인공은 이 마을에 사는 손석심(78) 할머니와 문병일(77) 할아버지 부부다. 벽화가 그려진 집은 어르신들이 사는 집이다.

벽화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파마머리를 한 평범한 어르신들의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나무를 배경으로 그려진 인물이다. 기발하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을 짓게 된다.
  
지난 4월 개통된 천사대교. 신안 압해도와 암태도를 이어주는 다리다. 암태도에서 이미 다리가 놓여있는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까지 연결시켜 준다.
 지난 4월 개통된 천사대교. 신안 압해도와 암태도를 이어주는 다리다. 암태도에서 이미 다리가 놓여있는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까지 연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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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암태도 기동삼거리에 그려진 동백 파마 벽화. 손석심 할머니와 문병일 할아버지가 사는 집의 담장에 그려져 있다.
 신안 암태도 기동삼거리에 그려진 동백 파마 벽화. 손석심 할머니와 문병일 할아버지가 사는 집의 담장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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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는 집안에 있는 애기동백나무(산다화) 두 그루를 머리로 삼아 벽에 두 사람의 얼굴을 그렸다. 동백꽃이 활짝 핀 봄엔 꽃으로 파마머리를 한 형상이었다. 지금은 꽃이 지고, 나뭇잎이 무성하다.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의 표정이 수줍게 웃고 있다.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는 모습에선 개구쟁이가 떠오른다. 그 표정이 정겹다. 고향마을에 사는 이웃집 어르신의 모습 그대로다. 
 
동백 파마 벽화의 배경이 된 애기동백나무. 손석심 할머니와 문병일 할아버지가 사는 집 안에서 본 풍경이다.
 동백 파마 벽화의 배경이 된 애기동백나무. 손석심 할머니와 문병일 할아버지가 사는 집 안에서 본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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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가 그려진 집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애기동백나무 두 그루가 집안 화단에 심어져 있다. 대문 바로 옆이 할머니 나무다. 오래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듯, 주변에 갖가지 생활용품이 널려 있다. 할아버지 나무에는 지지대가 세워져 있다. 나무 아래도 말끔하게 단장돼 있다.

"천사대교가 개통하기 전이었는데, 군청에서 와서 벽화를 그리겠다고 하면서 담을 빌려 달라 하더라고. 지나다니는 사람들한테 볼거리가 되겠다 싶어서 승낙을 했지. 그렇게 하라고. 그런데 인물을 그리겠다고 하더라고. 그것도 상상 속의 인물이 아닌, 실제 인물을…." 문 할아버지의 얘기다.

"내 얼굴을 그리는데, 너무 크게 그려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요. 이웃 할머니들도 뭔 사람 얼굴을 그리 크게 그려 놓냐며 뭐라 하고. 지우고, 조그맣게 그려달라고 했지." 손 할머니의 말이다. 
 
동백 파마 벽화의 주인공인 손석심 할머니와 문병일 할아버지가 벽화 앞에 섰다.
 동백 파마 벽화의 주인공인 손석심 할머니와 문병일 할아버지가 벽화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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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심 할머니가 전동차를 타고 동백 파마 벽화 앞을 지나고 있다.
 손석심 할머니가 전동차를 타고 동백 파마 벽화 앞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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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할머니와 마을주민들을 설득한 건 군청담당자와 벽화작가의 몫이었다. 그 사이 손 할머니를 그린 벽화가 윤곽을 드러냈다. 할아버지의 시샘(?)이 생겼을까. 이번에는 문 할아버지가 문제를 제기했다.

"내 얼굴도 그려 달라고 했지. 작가한테 얘기하고, 군수한테도 전화했어.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한사람만 그리면 되겠냐고."

할아버지로부터 뜻하지 않은 청탁을 받은 신안군은 난감했다. 집안에는 동백나무가 한 그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시할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의 생각대로 함께 그리면 더 좋겠다는 판단도 했다.

비슷한 크기의 같은 나무를 구해다 집안 화단에 심었다. 바르게 자라도록 지지대를 세워 고정도 시켰다. 할머니 나무와 달리, 할아버지 나무 주변이 말끔하게 단장돼 있는 이유다. 동백 파마를 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얼굴이 한데 그려진 배경이다.
  
동백 파마 벽화로 핫 플레이스가 된 신안 암태도 기동마을 풍경. 골목마다 신록이 넘실대고 있다.
 동백 파마 벽화로 핫 플레이스가 된 신안 암태도 기동마을 풍경. 골목마다 신록이 넘실대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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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네. 상상 이상으로. 도로는 좁은데, 차들이 너무 많이 다니는 것 같기도 한데. 어쩌겠어? 사람들이 불쑥불쑥 집으로 들어오는 것도 번거롭고 귀찮기도 하지만, 군에서 하는 일인데. 협조해야지. 관광객들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 관광객들이 우리 지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가면 좋겠어."

문 할아버지의 소박한 생각이다. 할아버지는 신안군 체험관광 지도자, 신안군 관광혁신 리더자 자격증을 꺼내 보여줬다. 신안문화원에서 교육을 하고, 인증을 해준 것이었다. 천사대교 개통을 앞두고, 주민들과 함께 친절교육도 받았다고 했다.
  
마늘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기동마을 주민. 신안 암태도는 밭에 양파와 마늘, 고추를 많이 심고 있다.
 마늘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기동마을 주민. 신안 암태도는 밭에 양파와 마늘, 고추를 많이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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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마을의 마늘밭과 어우러진 교회. 한낮의 마을풍경이 적막하다.
 기동마을의 마늘밭과 어우러진 교회. 한낮의 마을풍경이 적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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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파마 벽화가 그려진 기동마을은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에 속한다. 암태도는 압해도에서 천사대교를 건너자마자 만나는 섬이다. 에로스서각박물관을 지나서 닿는 삼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자은도, 좌회전하면 암태면소재지를 거쳐 팔금·안좌도로 연결된다.

암태면(岩泰面)은 돌이 많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고 이름 붙었다. 암태도와 추포도·당사도·초란도·마전도 등 5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쌀과 보리, 양파, 마늘, 고추 등을 주로 재배한다. 인근 바다에서는 민어와 송어가 많이 잡힌다. 최근 김값이 좋으면서 김 양식을 하는 어가도 늘고 있다.

기동(基洞)마을은 예부터 '텃골'로 불렸다. 가히 터를 잡고 살만한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 인조 때인 1638년 제주양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 지금은 안씨와 김씨를 중심으로 서씨, 양씨, 이씨 등이 모여 산다. 마을에 순흥안씨 제각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동마을의 안씨 제각과 기념비. 기동마을은 안씨와 김씨가 많이 살았다. 지금은 특정한 성씨가 많이 살지 않는다.
 기동마을의 안씨 제각과 기념비. 기동마을은 안씨와 김씨가 많이 살았다. 지금은 특정한 성씨가 많이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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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기동마을의 골목 풍경. 봄내음이 물씬 묻어난다.
 적막한 기동마을의 골목 풍경. 봄내음이 물씬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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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우리 마을이 암태면의 정중앙입니다. 마을에서 바다는 안 보여요. 농사를 짓고 사는 섬이죠. 예전에는 300∼400명이 살았는데, 지금은 60여 명이 살아요. 첩첩으로 승봉산이 감싸고 있어서 산세 좋고, 섬치고는 물도 풍부하죠. 정말로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안호선(53) 기동마을 이장의 마을 자랑이다. 마을 주변 밭에는 마늘과 양파, 대파가 토실토실 몸집을 키우고 있다. 고추를 심은 텃밭에 지지대를 세우는 주민도 보인다. 들녘에선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다. 일찍 모내기를 마친 논도 눈에 띈다.

마을 경로당에선 할머니 열댓 명이 한데 모여 화기애애하다. 10원짜리 동전을 놓고 48장 그림보기를 즐기고 있다. 이내 저녁식사를 준비하더니, 한데 어우러져 식사를 한다.

"재미지요. 한데 모여서 노니 즐겁지요. 가족이나 진배없는 사람들인데. 다리가 개통돼서, 이렇게 경로당까지 찾아오는 손님도 있고. 반갑소."

경로당에서 만난 윤순심(78) 어르신의 말이다. 
 
기동마을의 텃골경로당. 마을의 할머니들이 밀고 온 유모차와 전동차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기동마을의 텃골경로당. 마을의 할머니들이 밀고 온 유모차와 전동차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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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골경로당 풍경. 마을의 할머니들이 한데 모여 앉아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텃골경로당 풍경. 마을의 할머니들이 한데 모여 앉아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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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천사대교가 개통되면서 마을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뭍으로 나가려고 철부선을 기다리는 사람이 사라졌다. 배를 못 타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도 볼 수 없게 됐다.

섬주민들의 뭍 나들이도 빈번해졌다. 섬에서 난 농수산물의 수송편도 한결 수월해졌다. 밤에도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닌다. 섬을 찾는 외부 관광객들도 많이 늘었다. 주말이나 휴일엔 북새통을 이룰 정도다. 하지만 마을을 지나는 도로는 여전히 그대로다.

한편에서는 '이제 우리 섬이 아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목 좋은 데는 벌써 외지인들이 다 차지한 탓이다. 천사대교가 섬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섬사람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천사대교의 밤풍경. 경관 조명이 불을 밝혀 밤에도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천사대교의 밤풍경. 경관 조명이 불을 밝혀 밤에도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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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태그:#손석심, #문병일, #동백벽화, #암태도, #천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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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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