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줄거리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생충> 스틸컷

<기생충>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단언컨대, 이런 한국영화는 없었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첫 한국영화라는 화려한 수식은 부차적인 문제다. 봉준호 감독은 "칸 수상은 이제 과거"라며 관객과의 만남을 고대했다. 확실한 건 <기생충>이 '봉준호 장르' 총합이자 집대성이요, 그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봉준호 월드'의 정점이란 것이다.

익숙함과 생경함,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관습과 예술의 경계를 파괴하고 그 틈새를 기어이 비집고 들어가 독창적인 균열을 낸다. 단순한 '반전 영화'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불경하게 느껴질 만큼 알려진 설정을 제외하고는, 예상과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미 영화지 인디와이어가 "<기생충>은 봉준호 영화 중 최고"라며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라고 한 호평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단순히 서사의 변곡점을 맞는 사건이나 감춰진 캐릭터의 등장 때문만이 아니다. 예고편이나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 공개된 딱 그 만큼의 장면과 설정이 지나가고, 캐릭터가 주요 공간에 입장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순간, 봉준호 감독이 3개 국어에 걸쳐 간곡히 당부했던 '스포일러 자제'의 연유를 깊숙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중반부 이후 <기생충>이 전달하는 시각적·정서적 충격은 압도적이고, 봉 감독이 켜켜이 쌓은 캐릭터와 관계, 설정이 대폭발을 이루는 후반부까지 쉼 없이 달려간다. 강력하고도 처연한 메시지와 희비가 교차하며 자연스레 고양되는 정서적인 감흥을 화면 안에 장착한 채로. 

<기생충>은 분명 글이 아닌 말로 영화 전반의 설정과 서사를 조목조목 파헤치는 '요즘 대세' 영화 유튜버들이 설명하기에 곤란하기 그지없는 작품이다. '스포일러 지뢰밭'을 밟지 않고서는 설명이, 수식이 난해하고 곤란한 <기생충>. 국내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기자 시사회에서도 중반 이후 킥킥댈 만한 장면에서까지 '초'집중하게 만들었던, "봉준호가 장르"라던 그 영화의 출발은 친근하거나 안 친근해도 '착한' 혹은 악인 없는 '두 가족'의 조우다.  

스포일러라 길고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기생충> 스틸컷

<기생충>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친절하게 설명이 가능한 건 여기까지일까. 어쩌다보니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반 지하에 산다. 수해라도 입을라치면 침수되기 딱 좋은. 와이파이마저 끊긴 채로 엄마 충숙(장혜진), 딸 기정(박소담)까지 가족 모두가 피자 박스를 접으며 생활비를 벌던 그때, 사수생인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거부할 필요 없는 제안이 들어온다. 

운에 좋다는 '수석'을 들고 찾아온 명문대생 친구(박서준)의 제안은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네 집 첫째인 고2 다혜(정지소)의 고액 과외를 맡아달라는 것. 사모님 연교(조여정)와 다혜는 기우가 과외 첫날 보여준 '기세'를 흡족해하고, 연교가 인디언 놀이와 야전 캠핑을 즐기는 막내 다송(정현준)의 미술 선생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안 기우는 얼떨결에 기지를 발휘, 기정을 일리노이주에서 온 미술 선생 '제시카'로 소개한다.

그리고는 거침이 없다. 이후 두 가족의 기묘한 접합과 기택네 네 식구의 기생을 향해 기세 좋게 달려 나가는 <기생충>은 거침없이 서사의 '검은 상자'를 열어젖힌다. 초반 설정은 무척이나 간결하면서도 완만한 듯 촘촘하다. 기택네 가족의 처지와 캐릭터 설명은 도입부 반지하 안팎에서 벌어지는 한 시퀀스로 완결해 버리며, 이후 박사장네 가족들에게 기생하게 되는 과정 역시 빠르면서도 결코 영화적인 빈틈이나 누수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계급투쟁, 인정투쟁으로 갈무리될 두 가족의 접합은 중반부까지 봉 감독이, 그리고 우리가 사회면에서 봤을 법한 설정들로 빼곡히 채워져 설득력을 더한다. 그러한 친숙한 설정에 두 가족, 여덟 명의 가족 구성원과 입주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까지 배우들의 잘 조율된 연기가 각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렇게 '이것은 블랙 코미디다'라고 선언한 듯한 '봉준호 장르'의 매력과 친근함을 켜켜이 쌓아 나간 <기생충>은 중반 이후 각종 외신에서 극찬했던 독창성과 의외성을 휘몰아치듯 발산해내며 어떤 도약의 지점을 이끌어낸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인물의 등장과 사건의 연쇄를 통해. "계획"과 "무계획"을 넘나드는 기택네 가족이 겪는 체험과 공포, 비감을 관객들이 놓치지 않게 생생히 느끼는 방향으로.  

"장르가 봉준호"라는 외신, 그말이 맞았다 
 
'기생충' 봉준호 감독, 칸이 선택한 최고 감독! 봉준호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시사회에서 질문에 답하며 웃고 있다.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담은 가족희비극이다. 30일 개봉.

▲ '기생충' 봉준호 감독, 칸이 선택한 최고 감독! 봉준호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시사회에서 질문에 답하며 웃고 있다.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담은 가족희비극이다. 30일 개봉. ⓒ 이정민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

<올드보이>로 사회적 명사가 된 박찬욱 감독. 칸 수상 감독이 된 이후 재벌가 자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박 감독은 <쓰리, 몬스터> 개봉 이후 한 어느 인터뷰에서 "<컷(Cut)>은 착한 성격마저 부자들이 독점하는 세상이 슬퍼서 만든 영화"라며 "예술가의 시선에서 보면 가난뱅이는 부러워하는 것이 많아 삐뚤어지는 경향이 지배적인데 반해, 부자는 아쉬울 게 없어 더욱 착해집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생충>이 그 한국적이면서도 자본주의 보편의 '계급'에 대한 이야기라 더욱 외신이 열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명백한 바. 봉 감독이 바라보는 '착한 부자'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중시하며 생득적인 '냄새'로 그 계급을 구획 짓는 한낱 '인간'들이다. 반면 이에 기생하는 기택네 가족과 부자에게 기생하는 이들은 반 지하를 뚫고 내려가서라도 생존을 도모할, 인간의 존엄을 꿈꿀 수밖에 없는 처지일 뿐이고.  

'착한 부자' 그들을 악당처럼 납작하게 형상화하고 공격할 생각도 없다. 적당한 속물주의라는, 인간 보편의 특성임을 간과하지 않는 봉 감독이 천착해온 그 주제는 <설국열차>와 <옥자>를 거치며 장르와 판타지를 경유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은 후, <기생충>에 이르러 한층 더 구체화됐다.

보태자면, 마치 '박찬욱 월드'를 품은 '봉준호 장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강렬한 미장센과 독창적이면서도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공간, 봉 감독의 영화에서 만난 적 없는 뜨거운 정서를 품은 채로. 

물론 그러한 주제는 봉 감독이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하녀> <충녀> <육식동물> 등의 작품을 보실 기회가 있으면 꼭 '기생충'과 짝지어 보시라"던, 그 김기영 감독의 작품 세계로부터 "가장 큰 영감"을 받은 바.  

<기생충>은 그 계급의 층위와 위계를 집의 구조와 계단 등 종과 횡으로 '상징'해내고, 그 공간과 화면 구도가 서사 구조에 깊숙이 관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탁월한 영화적 세계를 구축해냈다(그러고 보니 임상수 감독이 전도연과 함께 김기영 감독의 <하녀>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것이 벌써 2010년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기생충>은 기본적으로 장르 법칙의 균열을 내지만, 월등하게 '웰메이드'한 복합 드라마니까. 송강호를 위시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피식 웃음을 짓다가 어느 순간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현실을 환기시키는 비감을 전하기까지 하니까. 대사로도 등장하는 "상징"은 오롯이 영화를 즐기고 각자 해석하는 개별 관객의 몫이니까.    

또 (한국 관객이라면 예외가 별로 없겠지만) 봉 감독의 영화를 몇 편이라도 봤다면, "의도한 것은 전혀 없다"던 봉 감독의 엄살(?)과 달리 '페르소나 송강호' 외에도 곳곳에 '봉준호 장르'의 인장이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장르가 교차하고, 희비가 엇갈리면서도 영화적이고 장르적인 재미를 잃지 않는 봉 감독 특유의 고유성은 기본이다. 
 
 <기생충> 스틸컷

<기생충>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분석하자고 들면 끝도 없을 듯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라 더 눈에 들어오는, <괴물>에서 봤던) 체육관 내 피난민들이나, 한국으로 이식된 미국 문화에 대한 상징, <플란더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 이래 지속돼 왔던 시니컬하고 사회비판적인 시선, <마더>를 압도하는 긴장감과 <옥자>까지도 품어냈던 '가족영화'의  희망이나, <괴물>이나 <설국열차>와는 또 다른 뉘앙스의 결말이 품은 어떤 '전망'까지도. 

<괴물>의 클라이맥스는 온가족이 살아남아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었다. 뉴욕에서 돌아온 <옥자>는 할아버지, 옥자와 함께 역시나 밥을 먹는다. <기생충>의 마지막, '착한 부자'에게 기생했던 이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기생충>의 결말은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물었던 <살인의 추억> 속 송강호의 얼굴만큼이나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한국영화의 명장면으로 회자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봉준호 감독이 이 시대 청년들에게 전하는 어떤 메시지이자 위로 혹은 말걸기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야깃거리가 넘쳐나지만 (스포일러로 인해) 여기까지 쓸 수밖에 없는 <기생충>은, 확실히 'N차 관람'을 부르는 영화다. 진지함이 흐르는 언론시사와 달리 생동감 넘치는 일반 극장에서, '몰래 온 손님'으로 만날지 모르는 봉준호 감독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다시 한 번 관람해야 겠다. 그땐 좀 더 '상징적'이고, '계획적'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기생충 봉준호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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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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