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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독교 평신도로서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교회의 입장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매몰된 나머지,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연대하기보다 오히려 멍들게 하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 글이 교회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기자 말

언젠가 훌쩍 길을 떠났었다. 정처 없이 이리저리 헤매다가 어쩌다 강 어귀에 다다랐다. 작은 물줄기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큰 강물을 이루고 드디어 바다로 흘러 드는 곳이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강바람인가? 바닷바람인가?

강어귀에서 아이들이 바다로 빠지는 갯물을 막고 대야로 물을 퍼내 고기를 잡고 있다. 강인가? 바다인가?

때를 따라 뱀장어는 강에서 바다로, 송어는 바다에서 강으로 살기 좋은 데를 찾아 돌아다닌다. 민물고기인가? 바닷고기인가?

저녁 노을이 바다를 불게 물들이더니, 어둠이 하늘을 타고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 낮인가? 밤인가?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라고 돼 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하나님은 사랑, 혐오는 아니다'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퍼레이드 참가자가 '하나님은 사랑, 혐오는 아니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
▲ "하나님은 사랑, 혐오는 아니다"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퍼레이드 참가자가 "하나님은 사랑, 혐오는 아니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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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염색체 X, X 염색체의 일부 유실 - 터너 증후군이라 한다.
성염색체 XXY, XXXY, XXXXY - 클라인펠터 증후군이라 한다.
염색체 XYY, XYYY - 거대남성 증후군이라 한다.
트랜스 여성 - 몸은 남성인데 성 정체성은 여성인 사람이다.
트랜스 남성 - 몸은 여성인데 성 정체성은 남성인 사람이다.
Intersex - 염색체, 생식샘, 성 호르몬, 성기 등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특징을 지닌 사람이다.


성염색체가 XX면 여자로, XY면 남자로. 이렇게 단순히 둘로만 구분하려 한다면 '잘못된 몸에 갇힌 사람들'은 사라져버려야 할 존재가 돼 버린다. 모호한 경계가 존재한다 것은 자연이 보여주는 그대로 엄연한 사실이다.

자연이 보여주는 그대로의 사실

노을은 낮도 밤도 아니지만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이를 두고 어느 누구도 창조질서를 훼손했다거나, 타락했다고 삿대질하지 않는다. 모호한 경계란 창조질서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오히려 창조질서의 소중한 일부이며 묘미기도 하다. 앞서 열거한 사람들 또한 모호한 경계에 속하지만, 그 모습 그대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들은 독기 어린 혐오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멍들고, 때로 도덕적으로 지탄받기까지 한다. 민물고기인지 바닷고기인지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면서, 뱀장어에게 바다로 나가서는 안 된다 하고, 송어에게 강으로 올라와서는 안 된다 한다면, 자연의 섭리를 지키란 건가 말라는 건가?

몸에 맞춰 남자가 돼야 한다거나, 여자가 돼야 한다고 한다면, '잘못된 몸에 갇힌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창조의 질서를 따르는 것일까? 태어난 그 자체로 창조의 질서를 거슬린 죄인이요, 신의 뜻을 어긴 죄인일까?

예수님이 지금 계시다면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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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여자도 아니더라도 모두 다 소중하지만, 나는 그동안 기독교 평신도로 퀴어(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소수자)를 편견을 갖고 바라봐왔다. 여기에는 교회의 가르침도 일조했다.

언젠가 목사님이 이 문제에 대해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성적 문란과 더불어 에이즈 등 질병도 함께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설교 중에 한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나가는 것을 목격했었다. 가서 묻지 않았으니 그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설교가 불편했던 게 아닌가 짐작된다. 

성경은 이 문제를 도덕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로마서 1:27) 

성경 속 인물들 가운데 나는 사도 바울을 가장 좋아한다.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고, 그 믿음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도 부족한 인간이다. 남자와 여자 외에 모호한 경계가 있고, '잘못된 몸에 갇힌 사람들'도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예수님이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해 주셨으리라. 지금이라면 사도 바울도 그랬으리라.

아래 신문기사(<한경닷컴>, 2010년 5월 28일 보도)는 이와 관련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경북 경산경찰서는 28일 연애를 하던 상대가 트랜스젠더인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격분해서 살해한 혐의로 박모씨(2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23일 오후 대구시 남구의 한 여관에서 연애 상대방인 김모씨(24)와 말다툼을 벌이다 김씨가 남자란 사실을 알게 되자 수 차례 폭행한 뒤 경산에 있는 한 하천의 둑 아래로 던져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4년 전 아르바이트를 하다 여성 같은 외모를 가진 김씨를 알게 된 뒤 가끔 만나왔으나 성별을 알 수 있는 접촉은 갖지 않아 상대방이 트랜스젠더인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몸이 남성인 사람은 여자 같은 남자일 순 있어도 여자일 수는 없고 여자로 행세해서도 안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반하면 변태고 부도덕하다'는 사고의 틀이 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폭행을 가하고도 '상대가 트랜스젠더인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격분해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오히려 피해자가 자기를 기만했다고 탓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다양한 성의 형태가 있고, 또한 다양한 성 행동도 존재할 수 있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때 어떤 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 사건은 잘 보여주고 있다(정희진 <미투의 정치학> 참조).

심리적 폭력 휘두르고 부추기는 교회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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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도 성소수자를 편견에 갇혀 바라보는, '사고의 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창조질서를 수호하는 전위대인 양 가장 앞장서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문제로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가한 사람들에게 교회는 은연 중에 심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창조질서를 어긴 나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마땅히 할 일을 한 거라고 착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본의 아니게 심리적 폭력을 휘두르고 또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괄호 밖으로 내몰기 보다는 손을 내밀고 친구로, 가족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게 교회다운 모습이다. 그들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사실 자기 자신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게 마음이다. 남성에게 끌리느냐, 여성에게 끌리느냐, 모두에게 끌리느냐 혹은 아무에게도 끌리지 않느냐는 유전, 호르몬, 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에 달렸다고 한다.

이러한 '성적 지향'은 임의로 선택하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인위성을 가할 수록 심리적으로 해로울 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네 마음을 바꾸라, 마라' 할 일이 아니다. '성적 지향'을 바꿀 수 없기에, 차라리 '잘못된 몸'을 바꾸려고 성전환 수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혹 성적 호기심에서 문란한 생활에 빠지게 되는 게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따가운 시선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성적 지향에 반해서 끌리지도 내키지도 않는 성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잘못된 오해로 인한 편견이 사라질 수 있도록,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한, 다양한 성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다. 당연할 듯하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정통적인 다수 생각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남자 아니면 여자로 태어나며, 태어난 그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질서를 훼손한 죄악이다". 이런 편견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고, 괜히 상처만 나게 할 뿐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순 없을까? 상처받은 마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포개는 게 먼저다. 예수님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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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하고 싶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못했던 것들이 참 많았는데, 이제 은퇴하고 시간이 넉넉하니 이것저것 하게 됩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라인덴스도 배우고, 클라리넷도 불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기자회원이 될 수도 있다니,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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