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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리트(Split)를 빠져 나온 버스는 스플리트를 둘러싼 디나르 알프스(Dinaric Alps) 산맥 아래까지 다가갔다. 거대한 암벽의 산맥은 아드리아 해를 옆에 끼고 계속 달리고 있었다.

버스는 자다르(Zadar)의 버스터미널에서 멈춰 섰다. 알고 보니 우리가 탄 버스는 플리트비체(Plitvička)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아니라 자다르 버스터미널에서 한번 갈아타야 하는 버스였다.

버스에 함께 탄 버스 차장이나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플리트비체 가는 버스를 이곳에서 갈아타야 한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버스예약 사이트에서 예약할 때에도 자다르에서 버스를 갈아탄다는 안내 문구는 전혀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버스에 함께 탄 버스 차장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플리트비체에 갈 예정입니다."
"체인지(Change)!"


나는 아내에게 빨리 내리자고 말하고 버스에서 얼른 여행가방을 먼저 꺼냈다.

"그래, 그럼 어디에서 갈아타느냐고?"
"체인지(Change)!"


아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도 나는 이 차장 아저씨와 대판 싸웠을지도 모른다. 눈치가 빠른 아내가 옆에 있는 버스가 플리트비체에 가는 것 같다고 해서 우리는 옆에 정차해 있던 플리트비체 행 버스에 짐을 맡기고 버스 위에 다시 올랐다. 중국 여행자 몇 명이 우리를 따라 버스를 갈아탔다.

밝고 쾌활한 크로아티아 젊은이들에 비해 노년의 크로아티아인들은 자신의 직업 속에 전혀 서비스 정신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오랜 시간 유고슬라비아 공산체제의 계획경제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에서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 고속버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기사 분들도 참 친절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2천년전 유적이 아직도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게 신기하기만 하다.
▲ 로마 수도교. 2천년전 유적이 아직도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게 신기하기만 하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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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르 시내를 벗어나자 그 유명한 로마의 수도교가 시야에 들어왔다. 수도교의 엄청난 규모에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세히 보면 수도교는 자다르 시내를 향해서 약간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지구의 중력을 이용하여 물을 흘려 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의 시멘트 같은 접착 물질 없이 순전히 석재로 끼워 맞춘 로마시대의 유적이 지금까지 건재하다는 사실은 경이롭기만 하다.
 
젊은 패기 하나로 여행하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이다.
▲ 히치하이킹 하는 젊은이들. 젊은 패기 하나로 여행하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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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자다르 외곽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또 멈춰 섰다. 톨게이트 앞에서도 승객을 태우는지 버스는 잠시 기다렸다. 창 밖을 보고 있으려니 젊음의 열정으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남녀 여행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자유로운 여행이 싱그럽게 보였다. 아주 오래 전,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고속도로 변에서 대학 친구들과 히치하이킹을 하던 나의 모습의 겹쳐졌다.
 
이 산맥을 넘어가면 크로아티아의 평원 지대가 펼쳐진다.
▲ 디나르 알프스 산맥 넘어가기. 이 산맥을 넘어가면 크로아티아의 평원 지대가 펼쳐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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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 버스는 드디어 아드리아 해를 떠나 디나르 알프스 산맥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압도적인 모습의 암벽 위로 올라가는 차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그재그로 천천히 산 능선 위로 올라간 차들은 산 위에 올려놓은 고가도로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산 능선 위에서 바라보는 산맥의 전경은 어느 유명한 전망대의 전망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다.

버스는 크로아티아의 평야지대가 시작되는 리카센(Lika-seni) 주로 들어섰다. 지금까지 보던 산맥과 바다의 풍경과는 전현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낮은 산 사이에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고 여기저기에 석회암이 침식된 호수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초원 위에는 방목된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식당의 벽화에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 마콜라 식당. 식당의 벽화에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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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달린 버스는 승객들의 휴식을 위해서 마콜라 식당(Macola Restaurant)에 멈춰 섰다. 플리트비체에 거의 가까워졌기에 식당의 벽면에는 온통 플리트비체의 폭포와 호수가 그려져 있었다. 식당 벽면의 그림을 보면서 이제 우리가 크로아티아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플리트비체 행 버스 차장도 이 휴게소에서 몇 분간 쉰다는 안내가 전혀 없다. 나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샌드위치와 물을 사 가지고 버스로 돌아왔다. 느긋한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차분하게 버스 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기사와 차장은 한참이나 휴게소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여유 있게 버스에 돌아왔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이라면 인내가 필요한 순간이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인근은 워낙 넓어서 버스 정류장만 3곳이나 되었다. 나는 우리의 행선지인 무키녜(Mukinje) 마을 정류장이 가까워오자 버스 앞으로 나가서 차장에게 무키녜 정류장에서 내려달라고 하였다. 작은 마을 정류장인 이 정류장은 공원 입구2 정류장 바로 전 정류장이었다. 자다르에서 버스를 함께 갈아탔던 중국 여행자들도 우리가 내리는 것을 보더니 갑자기 뛰어나와서 함께 내렸다.

무키녜 마을의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마을동쪽으로는 보스니아의 높은 산맥들이 마을을 엄호하듯이 편안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아내는 집 몇 채 밖에 보이지 않는 마을의 한적함이 생소한 모양인지 예약한 숙소까지 잘 찾아갈 수 있는지 묻는다. 나와 아내는 여행가방을 끌고 조용한 마을 속으로 걸어갔다.
 
플리트비체 인근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 무키녜 마을. 플리트비체 인근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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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숙소가 있는 무키녜 마을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입구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플리트비체 입구의 호텔들은 이미 몇 달 전에 예약이 종료되기 때문에 이 마을을 예약했는데, 조용한 시골마을의 분위기가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이 마을의 숙소들은 대부분 주민들이 살고 있는 숙소들로 크로아티아 전통양식의 단독주택들이다.

우리가 이틀간 묵게 될 숙소의 주인, 랏코 그루비치(Ratko Grubic)는 우리를 너무나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아드리아 해 북동쪽의 역사도시 풀라(Pula) 출신인 그는 플리트비체 여행 코스와 함께 무키녜 마을의 슈퍼마켓 찾아가는 길도 세심하게 가르쳐 준다.

나는 랏코 씨의 제안으로 오후시간에 그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미술교사 출신 화가인 그의 아내와 함께 나의 아내도 합석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퇴한 변호사인 랏코 씨는 현재 가구 제작도 하고 공기 좋은 플리트비체에서 숙박업도 하며 여유 있는 인생의 후반을 살고 있었다. 서로 가족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의 크로아티아 여행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그가 알려준 대로 마을의 작은 마트를 찾아가 보았다. 마트 가는 마을의 숲 속 길이 그렇게 고즈넉하고 조용할 수 없고, 저녁 공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깨끗했다.
 
이 마을의 유일한 식당으로 음식이 싸고 맛이 좋다.
▲ 비스트로 부크니카. 이 마을의 유일한 식당으로 음식이 싸고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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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은 시간에는 이 마을의 유일한 식당인 비스트로 부크니카(Bistro Vucnica)에 찾아갔다. 저녁에는 날씨가 쌀쌀해서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따뜻한 식당 내부에 앉아 주문을 했다. 겨울에는 이 식당 앞에 스키장이 열리는 모양이다. 식당 이름인 부크니카(Vucnica)가 리프트(Lifts)라는 뜻이니, 겨울에는 이곳에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는 스키 슬로프가 펼쳐질 것이다.
 
소시지에서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 소시지 감자 요리. 소시지에서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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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소시지 감자 요리. 시골이라서 그런지 값도 싸고 양도 많다. 감자의 양이 너무 많았지만 배가 고파서 모두 먹어버렸다. 그리고 긴 여정을 함께하는 아내와 맥주 한 잔을 마셨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공기는 시원하고 하늘에는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여행기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태그:#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여행, #플리트비체, #플리트비체여행, #무키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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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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