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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학교는 평가를 끝내고 방학을 앞두고 성적처리에 정신이 없다. 수행평가 및 지필평가에서 특히 서술형평가 점수에 대해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선생님의 합리적인 설명에도 끝까지 점수를 올려달라고 고집 피우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객관식 중심의 지필평가와 강의식(주입식) 중심의 수업으로는 4차 혁명시대에 맞는 인재를 기를 수 없다. 그래서 각 교육청에서는 수행평가 비중을 높이고, 과제형(숙제형)평가를 지양하고 수업 중에 실시하며 누적 평가할 수 있는 과정형 수행평가(수시평가)를 실시할 것을 교육부 학업성적관리지침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중학교는 변화가 있지만 고등학교는 중학교에 비해 변화가 더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수학의 일부 단답형을 제외하고 모두 객관식 문제이니 선생님들이 그것을 근거 삼아 객관식 문항을 내야 하고, 객관식 문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공정성을 앞세운다. 그리고 일명 줄을 세우기 위해 객관식 문제를 낼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EBS다큐프라임 '4차 혁명시대 교육혁명, 제2부 평가의 틀을 깨라' 중 일부
 EBS다큐프라임 "4차 혁명시대 교육혁명, 제2부 평가의 틀을 깨라" 중 일부
ⓒ 추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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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교육감이 4차 혁명시대에 맞는 평가혁명 또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오픈북 시험을 꺼냈지만 필자는 이미 3년 전에 성공적으로 실시했었다. 그리고 올해도 오픈북 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더구나 지필평가를 1회만 실시하고 과정형 수행평가를 4개나 실시했다. 주위에서 고등학교(일반고)에서 국어를 그렇게 친 분은 필자뿐일 것이라며 날개를 달아 으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수행평가는 5개 영역이나 실시하고 4개 영역은 수업시간에 실시하였다. 고3이기 때문에 배려해서 점수폭을 크게 하지 않아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아래표처럼 줄이 세워졌다.
 
수행평가 5개영역중 4개는 수업시간에 실시한 과정형 수행평가(수시평가). 마지막 '서평쓰기'는 인터넷서점에 리뷰를 써야 하는 공적 글쓰기.
*어느 한 학반의 학번별이 아니라 무작위 순서(개인정보 보호)
▲ 2019학년도 1학기 수행평가 결과표 수행평가 5개영역중 4개는 수업시간에 실시한 과정형 수행평가(수시평가). 마지막 "서평쓰기"는 인터넷서점에 리뷰를 써야 하는 공적 글쓰기. *어느 한 학반의 학번별이 아니라 무작위 순서(개인정보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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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과 고2 수업을 했다면 수행평가를 더 세심하게 구안하여 지필평가에 버금가는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수행평가는 주는 점수, 지필평가로 줄을 세우는 경향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두 평가 방법을 조화시켜 제대로 운영해도 4차 혁명시대에 맞는 평가가 될 것이다. 

필자는 'IB교육과정을 맹목적으로 받아 들이지 마라 http://omn.kr/1j992'는 비판적 기사를 쓴 적이 있다. IB교육과정을 도입했을 때 장점은 분명 있다. 그러나 수행평가를 처음 도입했을 때처럼 외국의 교육과정 및 평가를 수입해서 오는 거부감과 시행착오부터, 교육단체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제IB협회에 로얄티를 지급해야 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금액이 소요되는 것으로 안다. 지금 실시하고 있는 평가를 교사의 재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용기를 갖고 실시할 수 있는 교육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굳이 낯선 IB교육과정을 수입할 필요가 없다.
  
오픈북 시험 실시는 하나의 작은 대안일 뿐이다. 거창하게 논쟁할 여지없이 실시 여부는 필자처럼 교사 재량권으로 남겨 두면 될 것이다. 물론 중등선생님의 태도 변화는 필요하다. 오픈북 시험을 책이나 참고서를 보고 그대로 적는 시험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암기가 꼭 필요한데 오픈북 시험을 치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는 항변도 일면 맞지만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도 객관식 중심의 지필평가에서 서술형(논술형)평가로, 과정형 수행평가 중심으로 옮겨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만 해도 조용한 4차 교육혁명의 서막을 알리는 타종이 될 것이다.
 
여러 수업 시간에 한 자료와 교재를 참고로 오픈북 시험을 푸는 장면
*미리 학생의 동의를 얻어 시험 직후 촬영했음.
▲ 오픈북 시험 모습 여러 수업 시간에 한 자료와 교재를 참고로 오픈북 시험을 푸는 장면 *미리 학생의 동의를 얻어 시험 직후 촬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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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올해 1학기 두 번째 오픈북 시험을 치렀다. 그것도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작문과 화법'(내신)에서 시행했다. 학기초에 오리엔테이션도 했고 카페에 충분히 공지를 했다. 고3 자연 과정반을 맡아 수행평가 60%에 지필평가 40%로 짜고 지필평가를 1회만 실시하였고 서술형 문제(15문제, 15번은 논술형)만을 내었다. 

학생들이 거부감을 표현하고 학부모는 민원을 넣지 않을까 걱정은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국어를 암기과목처럼 외우거나 문제집에 있는 것을 많이 풀어 객관식에 익숙한 학생에서 벗어나 학생이 아는 지식과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평가하는 것이 목표였다.

필자의 경험상 오픈북 시험과 서술형 100%(객관식 배제)는 아주 잘 맞는다. 고등학교인 경우 시험시간은 50분이다. 책만 뒤지다가는 시간 내에 모두 쓰지 못한다.  미리 공부해야 빨리 찾고, 이해한 내용을 문제에 접목하여 쓸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암기를 하지 않고 이해 위주로 공부하니 "공부할 때 생각도 많이 하게 되어 좋았다.", "국어답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물론 고3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것이 아니라는 볼멘소리도 있지만 설문조사 결과 다행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2019학년도 3학년 1학기 '화법과작문' 오픈형 시험과 지필평가에서 객관식을 배제한 서술형(논술형포함) 100% 시험에 대한 만족도 설문 조사 결과
(총 81명 학생중 56명 설문지 제출 결과)
▲ 오픈형 시험 및 서술형 100%시험 만족도 조사 결과 2019학년도 3학년 1학기 "화법과작문" 오픈형 시험과 지필평가에서 객관식을 배제한 서술형(논술형포함) 100% 시험에 대한 만족도 설문 조사 결과 (총 81명 학생중 56명 설문지 제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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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이 필요할 때도 있을 수 있다. 많은 선생님들이 수능을 방패삼아 객관식 위주의 문제를 출제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관행에 익숙한 변명일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수업방법으로 활동중심수업을 하고 수업 시간에 주로 평가를 하는 과정형 수시평가 체계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는다면 그런 말은 쏙 들어 갈 것이고 굳이 낯선 IB교육과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로얄티 지급까지 하면서 말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준비 운동을 하고 물에 들어가듯, 교육부는 학업성적관리지침을 좀더 폭넓게 교사가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교사 스스로 수업과 평가가 동떨어지지 않게 수행평가를 구안하고 서술형(논술형) 중심의 문제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교사는 스스로 용기를 갖고 학생과 관행에서 벗어나 과목 본질에 충실한 평가를 고민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OMR카드가 없어지는 그날이 바로 학생들이 창의력과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4차 혁명시대에 맞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교육부(교육과정평가원)는 올해 전국단위로 과목별로 몇 명씩 추천받아 고등학교 교원 평가문항 출제 역량강화 직무연수(전문가 과정 및 강사 양성)를 7월 29일(월)~8월 5일(금)까지 과목별로 실시한다.

필자도 여기에 운좋게 선발되어 참가한다. 객관식 위주의 평가에서 벗어나 서술형, 논술형 평가를 일선 교사들이 자신있게 출제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답을 쓸 수 있는 데에 한몫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가야할 길을 멈출 수 없기에 도전의 발자국을 내민다.

태그:#오픈북시험, #조희연, #서술형, #논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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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주로 입시지도를 하다 중학교로 왔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나누며 지식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을 쑥쑥 자라게 물을 뿌려 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또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학생으로 성장하는데 오늘도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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