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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토요일 날씨 맑음. 이 사실 하나만으로 저를 설레게 하는 일이 있었을까요. 저는 며칠 전 여러분에게 '개인적인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관련 기사 :20살 된 '서울퀴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http://omn.kr/1jim5) 혹시 서울퀴어문화축제(이하 서울퀴퍼) 잘 다녀오셨나요? 저는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자원 활동을 했습니다. 

오전 9시 시청역에 도착했는데 서울광장으로 가는 길에 어떤 분들이 하는 말을 의도치 않게 들었습니다. 

"오늘 서울광장 왜 이렇게 시끄럽지?" 
"오늘 그거 한다고 하는데? 동성동본 축제?" 


저는 남몰래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에게 이 말을 들려주니 정말 재밌어하며 "아직 인식 수준이 20년 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인가 봐"라는 말을 하더군요.

혐오를 조롱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다
 
 반대집회 차량을 배경으로 한 컷. 동성애는 죄이므로 예수에게 돌아오라는 팻말을 붙인 차량은 지난 몇 년간 서울퀴퍼에 항상 등장했다.
 반대집회 차량을 배경으로 한 컷. 동성애는 죄이므로 예수에게 돌아오라는 팻말을 붙인 차량은 지난 몇 년간 서울퀴퍼에 항상 등장했다.
ⓒ 김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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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장 도착과 동시에 자원활동가, 기획단과 함께 부스를 설치하는 등 열심히 축제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가 축제 준비를 하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이미 '동성애 축제 반대'를 내걸고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그날 온종일 '동성애가 왜 문제인지'에 대해 연설을 했습니다. 

'동성애는 죄악이다, 예수님께 돌아와라'라는 현수막을 붙인 차량에서도 방해 방송이 이어졌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 차량은 지난 몇 년간 서울광장에서 퀴퍼를 할 때마다 항상 왔다는 것입니다. 농담으로 지인에게 '저분의 성실함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말이 

오전 11시가 다가오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광장으로 들어왔습니다. 퀴어 축제를 지지하는 깃발들이 나부끼는 가운데 저에게는 70여 개의 부스 중 13번부터 28번 부스 사이를 돌며 순찰을 하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북 치는 스님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북 치는 스님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 김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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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쯤 되자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광장이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시청에 설치된 많은 부스 중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부스'를 신기해했습니다. 개신교 쪽이야 혐오의 목소리가 크고 그 반작용으로 내부에서 바꿔보려는 움직임도 많지만 불교는 상대적으로 잘 조명이 안 돼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의 약자들과 연대해왔습니다. 그들이 퀴퍼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테지요. 광장 한 모퉁이에서 북 치는 스님은 참가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매우 좋았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제가 맡은 구역에서 가방에 몰래카메라(이하 몰카)를 담아 불법적으로 촬영을 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건너 전해 들었습니다. 제보자가 인상착의를 확인하지 못한 탓에 저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돌아다니며 감시를 했습니다만 몰카를 적발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입구에서 의심이 되는 사람들의 입장을 제지하곤 하지만 다 막을 순 없어서 광장 내부에서 축제를 방해하는 이들이 없는지도 점검해야 했습니다. 순찰을 하다가 광장 내부에서 고의적인 구도로 사진을 찍는 할머니가 있어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는 광장에서 받은 배지를 보여주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사실 그 배지는 행사에 참여한 모두에게 나눠주고 있던 터라 그분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분들한테 오해받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라고 말하고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년 만에 광화문을 뚫었다
 
 춤 추고 노래하며 정신없이 걸었다. 가끔 동성애에 반대한다며 차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의 행진을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춤 추고 노래하며 정신없이 걸었다. 가끔 동성애에 반대한다며 차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의 행진을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김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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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퍼의 백미는 '카퍼레이드'였습니다. 올해는 20주년을 맞아 가장 많은 차량이 가장 긴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그리고 다시 시청으로. 저는 한국여성민우회와 비온뒤무지개재단이손잡고 마련한 4번 차량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차량에 가까이 붙지 않게 하고, 앞차와 뒤차의 간격을 조정하는 일이 제가 할 일이었습니다. 흥겨운 노래와 춤이 있으니 신날 수밖에요. 저는 몸을 들썩이며 행진하는 동시에 '동성애에 반대한다'며 차량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없는지도 봐야 했습니다. 아무리 우리와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이라지만 안전하게 끝내야 할 축제에서 누군가 다쳐서는 안 되니까요.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제가 맡은 4번 차량 뒤 5번 차량으로 '동성애 반대' 피켓을 든 남성이 뛰어든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퍼레이드 군데군데 있던 경찰들에 의해 해당 남성은 신속히 들려 나갔습니다. 물론 잠깐 행진이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요. 자원활동가분들의 말에 따르면 다른 차에도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다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퀴퍼가 광화문을 지났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퀴퍼가 광화문을 지났다.
ⓒ 김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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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광화문을 지났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지쳤지만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수차례의 집회가 광화문을 거쳤습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가 그랬고 민중총궐기가 그러했습니다. 그 길을 무지갯빛으로 물든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게 된 것입니다. 스무 살이 된 서울퀴퍼는 이제 광장을 넘어 또 다른 광장으로 그 영역을 넓혔습니다. 

저는 이번 퀴퍼 때 알고 지냈지만 자주 보지 못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길게 대화할 시간은 없었지만, 우리가 여기에 함께 있음을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퀴퍼가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 순간에도 그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서울광장에서 돌아온 밤, 설렘과 너무 많이 걸어 아픈 다리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는 참가자 자격으로 서울광장을 밟아볼 생각입니다. 또다시 광장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래놓고 내년에 또 자원활동가로 참여하는 저를 보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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