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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티켓은 매진입니다. 관람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예약 사이트를 이용하여, 다른 날 관람해 주세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티켓 오피스(매표소) 앞 '만남의 광장'에서 기다리는 중인데, 첫 번째 들리는 방송이었다. 아직 티켓 오피스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어쩌라고 당당하게 매진이라니! 다행스럽게도 알람브라 궁전은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는 지인의 조언이 있어서, 이것 하나만 예약하고 왔는데 천만다행이었다.

물론, 내가 예약하려고 웹사이트에 들어갔을 때에도 관람 일이었던 6월 4일에 가능한 영어 가이드 투어는 8시 15분에 딱 한 자리만 남아 있었다. 그때 그 자리를 잡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와서 궁전 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할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알람브라 궁전은 3개월 전에 예약 안 하면 못들어간다는 첩보를 접하고, 부랴부랴 예약을 했어요. 3개월까지는 아니지만, 여행계획을 잡으셨다면 제일 먼저 서두르셔야 하는 예약이긴 합니다!
▲ 저는 당당히 예약을 했지 말입니다! 알람브라 궁전은 3개월 전에 예약 안 하면 못들어간다는 첩보를 접하고, 부랴부랴 예약을 했어요. 3개월까지는 아니지만, 여행계획을 잡으셨다면 제일 먼저 서두르셔야 하는 예약이긴 합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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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다른 투어지? 나랑 같은 예약 맞니?"
"응. 같은 티켓이네!"


약속한 시간이 되었는데 가이드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몰라 초조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비슷한 종이를 들고 배회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서로의 출력물을 확인한다. 누군가는 가이드의 부름을 받고 움직이고 있는데, 아무 데서도 불러주지 않으니 불안한 상황이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곧바로 예약자를 확인하는 직원이 등장했고, 8시 15분의 예약자 리스트 맨 마지막 자리의 내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이윽고 오늘의 가이드가 등장했고, 개인별로 지급되는 헤드셋을 받고 나서 같이 이동했다.
 
안달루시아 여행을 계획하면 주로 나타나는 사진이기도 해요. 알바이신 지구는 이슬람교도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이었다는데, 같은 색깔로 지어진 집들이 아름답네요.
▲ 알카사르에서 바라보는 알바이신 지구의 풍경입니다.  안달루시아 여행을 계획하면 주로 나타나는 사진이기도 해요. 알바이신 지구는 이슬람교도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이었다는데, 같은 색깔로 지어진 집들이 아름답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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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브라 궁전 곳곳에는 물이 참 많아요. 이슬람교 율법상, 기도를 올릴 때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데, 그 때 사용하기 위한 물이라고 하네요. 게다가, 그라나다의 물은 시에라 네바다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것이라고 하니, 더 놀랍지 않나요?
▲ 이 곳에 흐르는 물은 특별한 의미가 있더라구요.  알람브라 궁전 곳곳에는 물이 참 많아요. 이슬람교 율법상, 기도를 올릴 때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데, 그 때 사용하기 위한 물이라고 하네요. 게다가, 그라나다의 물은 시에라 네바다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것이라고 하니, 더 놀랍지 않나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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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안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설명을 통해 전해 듣는 길고도 복잡한 그들의 역사는 놀라웠고,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이슬람 세력이 이곳에서 어떻게 그들의 문화를 지켜내었고, 어떻게 싸웠으며, 어떻게 정복 당했는지를 건물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거대한 성채는 곳곳에 수많은 문화가 서로를 어떻게 대했는지, 서로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감췄으며 차마 감추지 못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프리카에 넘어온 무어인의 이슬람 제국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얼마나 융성했으며, 아름답게 도시를 만들어 내었는지, 이제 와서 감히 넘겨짚을 수도 없다.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이슬람어 표기라고 해요. 어디에든 크기는 변주되어 있었지만, 벽에 가득하게 새겨져 있었어요. 어쩌면, 이 공간 전체가 그들의 기도와 염원을 가득 담고 있지 않을까요?
▲ 어디에든 남아있는 기도입니다.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이슬람어 표기라고 해요. 어디에든 크기는 변주되어 있었지만, 벽에 가득하게 새겨져 있었어요. 어쩌면, 이 공간 전체가 그들의 기도와 염원을 가득 담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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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궁전은 미로와 같아서, 가이드가 알려주는 대로 길을 잡아 다니기만 했는데도 어지러웠다. 길을 쫓는 것도 어지러웠지만, 이슬람과 유대교, 가톨릭의 문화가 층층이 쌓여 있는 장식들의 화려함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의 신과 하늘, 인간 세계의 지배와 정치가 공간의 곳곳에서 뽐내듯 겨루고 있었다. 놀랍도록 장식적이었고, 눈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너무 놀라워. 요즘엔 두 달이면 건물 하나가 생기는데."

궁전의 가장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인 '사자의 정원'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던 관광객의 탄식이다. 요즘같이 건축물을 효율적으로 짓는 세상에 대한 불만인지, 이렇게 장식적인 건물을 왜 그렇게 요란하게 만들었냐는 비판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열두 마리의 사자가 분수를 받들고 있는 이곳을 흘렀던 물이, 그들의 신에 대한 기도를 위해 몸을 정돈하기 위한 성수였음을 떠올린다면, 그들의 정성은 신에 대한 최고의 예의였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알람브라 궁전 곳곳에는 기도의 장소를 만들어 놓았고, 기도의 장소마다 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흘렀을 물이 시에라 네바다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니, 내가 2019년 6월에 찾아온 공간을 통해 억겁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무어인에게서 스페인 왕조로 이어졌을 시간이, 이 공간 안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것만 같아서 조심스럽기도 했다. 
 
저기 보이는 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란다는 사이프러스 나무인데요, 전설에 따르면 술타나 (여왕)가 사랑했던 남자를 술탄이 죽였더니, 나무도 같이 죽어버렸대요. 어디에나 슬픈 러브스토리는 흔적을 남깁니다.
▲ 여름궁전 헤네라리페의 정원이예요.  저기 보이는 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란다는 사이프러스 나무인데요, 전설에 따르면 술타나 (여왕)가 사랑했던 남자를 술탄이 죽였더니, 나무도 같이 죽어버렸대요. 어디에나 슬픈 러브스토리는 흔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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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브라'라는 발음이 멋들어진 가이드님이, 옛날에는 기술이 충분하지 않아서 낙차가 작은 분수만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하시면서, '옛날 소리가 더 잔잔하고 좋지 않아요?' 투덜거리는 중이십니다. 요즘 분수는 너무 시끄럽다네요.
▲ 오늘 같이 여행한 우리 그룹입니다.  "알람브라"라는 발음이 멋들어진 가이드님이, 옛날에는 기술이 충분하지 않아서 낙차가 작은 분수만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하시면서, "옛날 소리가 더 잔잔하고 좋지 않아요?" 투덜거리는 중이십니다. 요즘 분수는 너무 시끄럽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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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알람브라를 돌아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투어는 마무리되었지만, 오늘 받으신 티켓으로 8시까지는 이곳에서 마음껏 계셔도 됩니다. 다만, 궁전과 알카사르 내부로는 다시 들어가실 수는 없어요."

'알람브라'를 말하는 발음이 인상적이었던 가이드가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아침 8시 15분부터 시작된 투어는 술탄의 여름궁전인 헤네라리페까지 돌아본 후, 11시가 조금 넘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발길은 쉽게 궁전을 떠나지 못한다.

알바이신 지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던 알카사르 입구 옆에서 맥주 한 잔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었다. 스페인에서도 당연히 맛집을 찾아다닐 생각이었는데, 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매번 이렇게 샌드위치 신세다. 그래도, 뚜벅이 여행지에서만 가능한 한낮의 맥주 한 잔이 어디인가?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떠오르는 공간이었습니다.
▲ 혹시, 현빈씨가 여기 어디 쓰러져 있었을까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떠오르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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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만 담아두가 아까워서인지, 모두가 같은 자세로 풍경을 담아내기 바쁩니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어떤 알람브라가 담겨 있을지 궁금합니다.
▲ 이 곳에서는 모두 이 자세가 됩니다.  눈에만 담아두가 아까워서인지, 모두가 같은 자세로 풍경을 담아내기 바쁩니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어떤 알람브라가 담겨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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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베리아반도 방랑기,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그라나다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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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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