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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뚝섬 이마트 본사 앞에서 전국 13개 지역 27개 중소상인, 시민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17일 서울 뚝섬 이마트 본사 앞에서 전국 13개 지역 27개 중소상인, 시민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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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낼 생각하지 마세요"

유통업계에 잘 알려진 미담이 하나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2016년 당진에 처음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를 열겠다고 결정할 당시의 이야기다. 정 부회장은 상생 스토어의 기획안을 본 후 이렇게 답했다고 알려졌다. 노브랜드는 이마트 자체 제작 상품을 파는 중규모 마트이며,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란 지역 전통 시장에 들어선 노브랜드 매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상생'이라는 수식어도 붙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후인 17일 오후 2시께. 노브랜드와 가까운 거리에서 유통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서울, 제주, 대구 등 13개 지역의 중소상인들이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이마트 본사 앞에 모였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마트의 대표자, 정용진 부회장은 나오라"며 소리쳤다. 지난 3년 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용진 부회장은 당장 나와라"

"앞에서는 상생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노브랜드를 '꼼수 출점'하고 있다"

김성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공동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이마트의 탐욕이 극에 달했다"며 "이미 상생스토어를 앞세워 200여 개가 넘는 노브랜드 직영점을 출점한 이마트가 이제는 노브랜드 가맹점까지 출점하며 지역상권을 초토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또 "노브랜드의 가맹점 출점은 상생법이 정한 지역 상인들과의 상생협의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 출점'"이라며 "가맹점 형태의 꼼수 출점을 즉각 중단하고 이미 개설한 7개 점포는 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17일 서울 뚝섬 이마트 본사 앞에서 전국 13개 지역 27개 중소상인, 시민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17일 서울 뚝섬 이마트 본사 앞에서 전국 13개 지역 27개 중소상인, 시민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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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탄생한 상생법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의 줄임말이다. 이 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모아 함께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생겨났다. 최초 상생법은 기업형 슈퍼마켓(아래 SSM)의 '직영점'만을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 유통 대기업의 직영점이 아닌 가맹점은 사실상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한계를 보완하고자 2010년 법이 일부 바뀌었다. 대기업이 SSM 가맹점의 지분 중 51% 이상을 갖고 있다면, 직영점과 함께 사업조정신청 대상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사업조정신청 대상이 되면 중소기업청이 대기업에 사업 진출을 연기하라거나 생산 품목 및 수량을 축소하라는 등의 요구를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온 이들은 이마트가 이 조건을 역이용해 '꼼수'를 쓰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지분이 51% 이상인 경우 규제 대상이 되는 만큼, 이마트가 거꾸로 가맹점주들에게 51%의 지분을 부여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가맹점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마트 노브랜드는 2019년 5월 기준으로 군포산본역점, 울산무거점, 진해용원점 등 전국 7개 가맹점을 낸 상태다. 올해 4월, 경기도 군포 산본역에 가맹점을 낸 이후 그 몸집을 키워오고 있는 셈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우석 대구마트유통협동조합 이사장은 "직영점의 경우 상생협력법에 따라 지역의 중소상인단체들과 사업조정을 할 수 있지만, 가맹점의 경우 가맹점주가 개점 비용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면 아예 상생협의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마트가 꼼수 출점을 강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벌 대기업이 자본력을 앞세워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중소상인들은 노브랜드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한다. 김종기 전북소상인대표자협의회 공동회장은 "이미 인구가 183만 명에 불과한 전북지역에만 대기업이 운영하는 백화점 1곳, 대형마트 15곳, SSM 45곳, 쇼핑센터 5곳이 출점해 지역상권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도 이마트 노브랜드는 전국에 새로 출점한 가맹점 7곳 중 3곳을 전주와 군산에 집중시켜 전북지역 상권의 숨통을 끊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17일 서울 뚝섬 이마트 본사 앞에서 전국 13개 지역 27개 중소상인, 시민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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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철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전주시회장 또한 "지역상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23일 개점을 강행한 노브랜드 송천점의 경우 불과 도보 10m 거리에 소형마트가 있고 500m 내에는 19개에 달하는 슈퍼마켓과 편의점, 1km 내에는 50여 개의 크고 작은 지역점포들이 밀접해 있다"며 "재벌 대기업의 막강한 자본력에 주변 상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여연대 김주호 민생팀장 역시 "재벌 대기업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은 단순히 그 지역 상인들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를 좌지우지할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벌 대기업이 자본력을 앞세워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키게 되면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지역의 중소마트, 편의점, 그곳에 납품하는 중소유통업체까지 지역상권 전체를 무너뜨린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지역 골목·중소상인 단체는 이마트 노브랜드가 가맹점을 낼 당시 각자의 지역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전국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노브랜드의 골목상권을 지적하고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팀장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고 했다.
 
17일 서울 뚝섬 이마트 본사 앞에서 전국 13개 지역 27개 중소상인, 시민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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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기자회견 후, 이마트 본사 앞에서 한 차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27개 중소상인 및 시민단체가 이마트 쪽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려 했을 때다. 처음 이마트 쪽 대표로는 지원팀장이 나왔다. 하지만 이들 단체는 "생업도 내팽개치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였는데 팀장'급'이 나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마트 본사 입구를 향해 "노브랜드의 골목상권 침탈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이어 "사장이 나올 수 없다면 정용진 부회장이라도 나와야 한다"고 했다. 최종적으로 항의 서한은 뒤늦게 나온 엄수환 노브랜드 총괄 팀장에게 전달됐다.

이에 대해 이마트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이마트 관계자는 "노브랜드 전문점은 주변상권과의 상생을 위해 슈퍼나 편의점의 핵심 품목인 담배를 판매하지 않고 자체 상품 비중도 70% 이상으로 높이는 등 품목 경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성민 전국마트연합회 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건 '가장'한 상생이다"며 "실제 내면은 다르고, 그 다른 내면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강원도에서부터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대기업과 관련된 자영업 단체들이 모여 대책위원회를 세울 예정이다"며 "전국 궐기대회까지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태그:#이마트, #노브랜드, #신세계, #상생스토어, #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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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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