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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김진석 사진작가가 지난 2월 26일 '고려인의 길' 취재에 나섰다. 우즈베키스탄을 시작으로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 고려인의 기차 이동 경로를 거꾸로 달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지금은 모스크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거친 뒤 러시아 사할린과 캄차카의 고려인을 만날 예정이다. 김진석 작가의 '고려인의 길' 연재기사는 <오마이뉴스>에 단독으로 게재한다.[편집자말]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시에 있는 '정수리 학교'의 김 루드밀라 교장선생님. ⓒ 김진석
  
정수리 학교의 한국 관련 교재들. ⓒ 김진석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Kiev)에서 북동부 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하리코프(Khar'kov) 시. 인구는 300만 명 안팎이며, 우크라이나 최고의 교통·교육 도시다. 우리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도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하리코프에서 생산된 탱크에 관한 자료 몇 개만 나와 있다.

하리코프에는 100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대부분 교수, 선생님, 간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단다. 내가 하리코프를 찾은 이유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1086 고려인 민족학교'와 더불어 동유럽에서는 유일한 고려인 민족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정수리 학교'다. 1997년에 설립됐고, 올해로 개교 21주년을 맞은 이 학교는 우크라이나에서 정식으로 인가받은 학교다. 참고로, 우크라이나 학제는 11학년제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한국과 같은 12학년제로 바뀌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따뜻한 웃음으로 마중나온 김 루드밀라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방학 중이었지만 이날은 때마침 9학년들의 종업식이 열렸다.

교장선생님이 안내하며 학교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현재 재학생은 201명인데, 이 가운데 고려인 학생은 8명. 아쉽게도 오늘 종업식 행사에 참석한 9학년 가운데는 고려인이 없었다. 

이 학교에는 김 루드밀라 교장선생님 말고도 3명의 고려인 선생님이 더 있다. 

김 루드밀라 교장선생님은 올해 나이 66세. 1952년 러시아 남부 캅카스에서 태어난 고려인 2세다. 발가드라드라는 곳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하리코프로 발령받아 이곳에 오게 됐다.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98년 정수리 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했단다.
 
9학년을 마친 학생들에게 성적 증서를 주고 있는 교장선생님. ⓒ 김진석
  
종업식에 참석한 정수리 학교 선생님들. ⓒ 김진석
 
- 우크라이나의 고려인 민족학교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고려인 2세인 신 빅토르(67세) 목사님과 부인 릴리아 김(66세)의 노력이 컸다. 당시 이곳에는 고려인들 3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식당, 미장원, 상점 등이 있었지만 한국말을 할 줄 전혀 몰랐다. 그래서 한국말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단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부인 릴리아 김은 이곳 국회의원이었다. 준비부터 학교가 만들어질 때까지 8년이 걸렸다. 1998년에는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 '정수리 학교'라는 이름은 어떤 사연을 담고 있나.
"학교 설립에 크게 기여한 신 빅토르 목사님이 만든 이름이다. 정수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급소다. '우리 고려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곳인 '정수리'를 생각하며 학교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정수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한국에 관한 교육은 어떤 게 있나. 
"정수리학교 재학생은 200명이 조금 넘는다. 이 가운데 고려인은 8명이다. 초등과정에서는 일주일에 3시간 한글 교육과 태권도를 가르친다. 중등과정에서는 5시간의 한글 교육, 그리고 마지막 10학년과 11학년은 한글 교육과 더불어 한국지리, 책 읽기를 가르치고 한국어 올림피아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김 루드밀라 교장선생님에 따르면, 지난 21년 동안 20여 명의 고려인 학생들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예브게니는 지금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IT회사에 다니고, 블라디슬라바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고, 리나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고..." 그렇게 졸업생 이름과 활동 사항을 잘 알고 있다.
 
종업식에서 학생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김 루드밀라 교장선생님. ⓒ 김진석
  
9학년을 마친 학생들에게 성적 증서를 주고 있는 김 루드밀라 교장선생님. ⓒ 김진석

오후 2시. 교장선생님은 나를 2층 작은 교실로 안내했다. 그곳에서는 9학년을 마친 학생들의 종업식이 열리고 있었다. 교실에는 학생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선생님들이 모여 공연과 종업식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김 루드밀라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성적증명서와 상장 등을 나눠주고, 학생들은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전했다. 

"우리 학교는 하리코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체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해요. 올해 학년을 마친 이 학생들의 성적이 전부 우크라이나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어요."

김 루드밀라 교장선생님은 학교와 학생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를 운영하는 게 매년 어려워지고 있어요. 학생 수도 점점 줄고, 시설과 재정, 그리고 한국어 교육에 대한 자료 등이 부족하거든요. 하지만 꿋꿋하게 학교를 지켜나갈 겁니다. 우크라이나 여러 도시에 살고 있는 고려인의 아이들이 이곳으로 올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겁니다."

그녀는 마치 등대지기처럼 언제나 이곳 정수리학교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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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식을 마치고 학생들과 기념사진 쵤영. ⓒ 김진석
  
정수리 학교의 김 루드밀라 교장선생님이 손녀딸 김 리아(3세)와 함께 학교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김진석
태그:#정수리학교, #우크라이나, #키예프, #하리코프, #고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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