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양주 마석에서 한센인과 이주민을 위해 30년간 일한 이정호 신부가 마지막 모임에 앉아 있다.
 남양주 마석에서 한센인과 이주민을 위해 30년간 일한 이정호 신부가 마지막 모임에 앉아 있다.
ⓒ 송하성

관련사진보기


 
"1990년 6월 1일, 세 살 난 딸 아이를 목말 태우고 성생농장의 좁은 인도를 오르며 '어떻게 될 것인가' 했는데 2019년 6월 1일 이 일을 이임하며 '무엇을 했나' 생각해 봅니다." 


30년 세월을 무던히도 살았다. 1990년 33살의 나이로 남양주 마석성생농장에 부임한 그는 한센인들의 소외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살았다. 학당을 만들어 한글 교육을 하고 함께 여행도 다니며 그들의 모자라는 것을 채웠다. 

한센인들이 나이가 들어 노동을 못 하게 된 뒤로는 성생농장에 가구공장이 들어섰다. 그곳에 외국인노동자들이 들어왔다. 그는 외국인노동자들이 겪는 산재 사고, 부당한 대우, 차별 등 수많은 어려움과 맞서 싸웠다. 법무부가 야간에 기습적인 불법체류자의 단속을 하자 외국인노동자들을 연행한 버스 앞에 드러누워 막은 일은 전설이 됐다. 

이정호 신부는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장이기도하다. 이제 센터장을 내려놓았으니 한 명의 성공회 사제일 뿐이다.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난 6월 1일 오후 4시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에모였다. 

"이정호 신부는 사제이면서 행동하는 실천가입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애쓰고 수고한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약자를 위해 애쓰는 삶은 바로 주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이경호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주교의 말과 성공회 남양주교회에 울려 퍼질 때도,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아직 신부님을 보낼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할 때도 표정에 변화가 없던 이정호 신부가 외국인노동자와 중도입국청소년이 감사 편지를 낭독하자 눈시울을 붉혔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플 때 고용주에 의해 학대받을 때 육체적, 정신적으로 우리를 돌봐주셨습니다. 훌륭한 보호자이자 말 그대로 우리를 구한 분인 신부님은 언제나 해로움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무지개 교실 어린이의 꽃을 받으며 비로소 활짝 웃는 이정호 신부
 무지개 교실 어린이의 꽃을 받으며 비로소 활짝 웃는 이정호 신부
ⓒ 송하성

관련사진보기



슬픔도 잠시, 미등록 외국인의 자녀들이 다니는 무지개교실 아이들이 꽃다발을 건네주자 이정호 신부가 활짝 웃었다. 이 신부는 "부모가 출근한 뒤에도 갈 곳이 없어 방치되는 미등록 이주민 자녀들을 위해 무지개교실 어린이집을 만든 것은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네팔과 방글라데시, 베트남, 필리핀 공동체의 대표들도 이정호 신부에게 감사패와 꽃다발을 안겼다. 감사가 가득한 꽃다발이었지만 누구도 즐겁게 웃지 못했다. 

"이주민을 위해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를 건립한 지도 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30년이란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보람도 느끼고 회한도 남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쓰러진 필리핀 로키, 방글라데시의 자카리아, 이란 고메즈, 중국교포 이송금, 나이지리아인 우구추크운제케, 네팔인 람 그리고 민우 등 강요된 죽음 앞의 대변자이자 보호자로 유족으로 맞섰고 공권력에 얻어맞으며 싸웠습니다. 1990년 6월 1일 인사발령으로 이곳에 발을 디뎠고 2019년 6월 1일 인사발령으로 이곳을 떠납니다" 

그렇게 그는 모든 슬픔과 안타까움과 기쁨을 뒤로한 채 남양주 진접 성공회교회의 평사제로 떠났다.  
이날 행사에는 안승남 구리시장(사진),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주교,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과 이주민과 남양주시민 등 200여명이 함께 했다.
 이날 행사에는 안승남 구리시장(사진),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주교,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과 이주민과 남양주시민 등 200여명이 함께 했다.
ⓒ 송하성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이정호 신부,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열심히 뛰어다녀도 어려운 바른 언론의 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