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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명운을 건 통영의 소중한 보물은 섬이다. 570여 개의 섬 중 유인도는 41개, 무인도는 529개로, 통영의 호위무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8월 8일 제1회 섬의 날을 맞아 통영 섬 중 유인도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 기자말

하늘을 달린다는 느낌으로 바다를 가로질렀다. 포효하듯 하얀 거품이 엔진 사이로 솟는다. 읍도에서 출항해 연도로 향했다. 점점 다가갈수록 연도의 집성촌은 대여섯 채. 방파제 옆 계류장에 배를 댄 뒤 철제로 만든 작은 부잔교를 건넜다.

잔교 아래 해안 끝의 갯바위에 서서 섬을 둘러봤다. 품안에 안을 정도로 작은 섬이다. 오른편 끝의 마을을 좌우 해안이 팔 벌려 끌어안은 반원형이다. 좌측 짧은 해안은 갯바위로 이뤄져 있고 우측 반원형 계류장의 앞은 굵은 모래 갯벌이 형성돼 있다.
  
연도의 끝, 갯바위 해안 끝의 갯바위에 서서 섬을 둘러봤다.품안에 안을 정도로 작은 섬이다. ⓒ 최정선
 
연도에는 이장이 없다
 
방파제에서 섬마을까지 시멘트 임도가 정비돼 있다. 마을로 향하던 중 제주도에서 본 손바닥 선인장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노오란 꽃을 함박 피웠다. 손바닥 선인장은 멕시코가 원산지로 제주 월령리가 유명하다. 해류를 타고 제주로 밀려와 나대지에 퍼진 선인장이 연도에도 퍼진 걸까. 우리 일행은 바위에 자생 중인 선인장 무리에 매료됐다.
  
바위에 핀 노오란 선인장 꽃 마을로 향하던 중 제주도에서 본 손바닥 선인장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노오란 꽃을 함박 피웠다. ⓒ 최정선
 
연도 선착장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작은 텃밭과 마주했다. 이곳엔 다수의 채소가 심어져 있는 텃밭 백화점이다. 섬마을 골목까지 걸어가는 동안 사람의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다. 흑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만 보인다.
 
읍도에서 불과 500여m 떨어진 연도는 일명 '솔섬'이라 불린다. 암반이 대부분인 읍도와 달리 연도는 토질이 좋고 소나무가 많다. 섬의 형세가 하늘을 나는 '솔개'와 닮아다 하여 '鳶(연)'자를 썼다는 설도 있다. 섬마을은 서북쪽으로 산이 둘러져 있고 남쪽으로 바다를 향해 트인 곳에 앉아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촌이다.
 
섬마을 앞 해변에는 서너 척의 파손된 배들이 방치돼 있다. 간조기라 물이 빠져 해변의 바닥이 길게 드러나 있다. 여느 통영 섬과 마찬가지로 앞바다엔 굴 양식장이 있다. 그곳의 민낯이 그대로 보인다.

읍도가 행정상 오륜리에 속해 있는데 반해 연도는 도선리 소속이다. 오륜리는 두 섬의 남쪽 맞은편이지만 도선리는 연도의 동북쪽이다. 오륜동은 다섯 개의 작은 포구가 있다하여 오합포(五合浦)라 부르다 오륜으로 개칭됐다.

맞은편 도선리는 고성에 속했던 도선부곡(道善部曲)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도선부곡은 현(고성에서) 동쪽 20리 지점에 있다'라고 쓰여 있다.
  
이장이 없는 연도의 실제 이장 읍도엔 이장이 있는데, 연도는 이장이 없다. 연도의 이장은 도선마을에 있지만 실제 이장 노롯을 톡톡히시는 분이 바로 임용문(54년 생)님이다. ⓒ 최정선
 
읍도엔 이장이 있는데, 연도는 이장이 없다. 연도의 이장은 도선마을에 있다. 연도의 첫 집에서 임용문(54년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연도에선 생계를 위해 바지락과 자연산 굴 채취가 성행했단다. 섬에 채취한 바지락은 매년 전화 주문으로 소진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고스럽게 뭍에 나가 팔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섬 아이들은 자라면서 수영을 배운다. 초등학교는 읍도로 가지만 중학교부턴 뭍으로 나간다. 섬의 어린 중학생들은 하교 후, 도선리 칡섬 끝에서 배를 기다리다 지치면 헤엄을 쳐 연도로 왔다고 한다.

물질하는 섬사람들은 물때 달력이 있다. 과거는 물때의 시간을 외워 그 시기를 가늠했다. 물이 많이 나는 10~12 물때를 허리사리에서 한꺾기, 두꺾기의 간조기라 한다. 이때 바다 수심이 불과 100~150여m밖에 되지 않아 헤엄을 쳐서 섬으로 갈 수 있다.

솔개섬에서 꽃섬으로
 
섬의 모양이 솔개가 나래를 펼치고 나는 '솔개섬'인 연도. 섬마을이 평지에 형성돼 편안한 느낌을 준다. 섬엔 대여섯 채의 집이 있다. 좁은 골목길을 두고 집들의 경계가 나뉜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요란스레 개가 짖는다. 덩달아 다른 개도 짖는다. 어찌나 소리가 요란한지 큰 개인 줄 알았다. 요크셔테리어만한 녀석이 사납게 짖어댄다. 할머니 한분이 나와 '그만해!'라고 소리치신다. 요란한 개 두 마리와 살고 계신 분은 임병순 할머니다.
  
연도의 우물 옛날에 사용했던 공동우물터로 두 개가 나란히 있다. 과거 섬주민의 생명줄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수돗물에 그 자리를 양보했다. ⓒ 최정선
 
할머니 집을 지나 우물과 맞닥뜨렸다. 옛날에 사용했던 공동우물터로 두 개가 나란히 있다. 옆엔 빨래판으로 사용했을 돌판도 묻혀있다. 오랜 세월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켜서일까. 군데군데 부서지고 파여 있다.

과거 섬주민의 생명줄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수돗물에 그 자리를 양보했다. 우물 위로 샛길이 나있다. 이 길은 밭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우물을 지나 나지막한 언덕에 올라서자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의 최고 높은 곳에 밭이 있다니 천상의 밭이다.
 
다시 내려왔다. 개짖는 소리에 마을 전체가 꽃밭인 걸 눈치 채지 못했다. 집집마다 꽃이 가득하다. 여름꽃의 여왕 장미는 물론이고 요즘 핫한 수국, 접시꽃, 나리꽃, 능소화, 꽃치자, 비비추 등 열거하기도 어렵다. 대충 내가 아는 꽃만 읊었다. 회색빛 보로크로 쌓은 담장에 축 늘어진 넝쿨장미가 아리땁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방향의 왼편 허름한 기와집에 들어섰다. 사료를 비롯해 농기구 등이 너부러져 있어 창고인 듯하다. 앞마당엔 한 줄로 늘어선 고구마, 가지가 꽃을 피웠다. 채소꽃도 어여뻐 천상의 꽃과 견줄 만하다.
  
연도의 화원 연도에서 제일 꽃이 많은 집이 있다. 집 곳곳이 꽃의 별천지지만 이곳의 꽃은 다른 집보다 10배는 많다. ⓒ 최정선
 
연도에서 제일 꽃이 많은 집이 있다. 집 주인은 임용문님이다. 안주인 이명연(60년 생)님은 꽃을 좋아해 온 동네를 도미노처럼 꽃밭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알고보니 선착장 부근 바위에 본 선인장도 안주인의 손길로 빚어낸 마술이었다. 집 곳곳이 꽃의 별천지다. 다른 집보다 꽃이 10배는 많다. 

가운데 마당이 있고 주변에 화단과 장독대가 있다. 안주인의 손때 흔적이 역력하다. 밖에서부터 꽃들이 이어져 집안 곳곳에 화원을 이룬다. 통영 섬에서 본 여느 집과 비교 안 되는 온전한 꽃 세상이다. 임용문님은 섬 전체를 꽃섬으로 가꾸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자식들이 말리기도 하고 자신도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고 한탄을 털어놓으셨다.
 
집 뒤채로 가자 그물망을 쳐둔 양계장이 보인다. 그 안에 장닭 몇 마리 놀고 있다. 양계장 오른쪽의 기와집 안엔 흑염소가 사육되고 있다. 앞엔 텃밭이 조성돼 있다. 가까이 바닷풍경을 배경으로 놓인 정자가 눈에 띈다. 정자는 임용문님이 정성들여 만든 작품이다.

연도는 우리나라 굴지의 수산기업인 한성기업 사장의 고향이다. 지금은 거의 폐가가 되어버렸지만 수산업으로 승부수를 던진 기업인의 섬이다. 이 섬은 원래 평택 임씨 집성촌이다. 임진왜란 이후 임씨가 입도하면서 사람이 정착했다. 섬의 거주민이 적다 보니 학교도 없었다. 그래서 과거엔 섬아이들이 읍도초등학교를 다녔다.
  
물빠진 연도의 해변에서 바지락 캐는 모습 호미로 주워 담은 바지락이 금세 수북하다. 씨알은 좀 잔 것 같다. ⓒ 최정선
 
임병순 할머니가 바다에서 바지락을 캐신다. "섬에 뭐 볼게 있어 왔는교?" 퉁명스럽고 느린 말투와는 달리 손으로 호미를 엄청 빠르게 움직이신다. 어느 섬을 가나 교과서처럼 같은 질문을 듣는다.

자신들이 벗어나고 싶은 섬에 찾아온 이방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물음이다. 할머니의 검게 그을린 얼굴엔 깊은 주름이 역력하다. 쭈글쭈글한 손으로 고무대야에 주워 담은 바지락이 금세 수북하다. 씨알은 좀 잔 것 같다.

짧은 섬탐방을 끝내고 방파제 앞에 섰다. 오른쪽으로는 '가오치 마을'이 있고 왼쪽은 '마상촌 선착장'이 보인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달려 서쪽으로 향했다. 때 묻지 않은 섬사람들의 순박함과 훈훈한 정을 느낀 하루다.
 
출출한 허기를 채우고자 메뉴를 서로 읊는다. 결국 배의 키를 잡은 운전수 마음. 고성 포교마을의 하모횟집으로 향했다. 고성 포교마을 앞바다는 제법 번잡하다. 계류장에 먼저 닿은 배옆으로 정박했다.

포교마을은 과거부터 하모를 잡아 일본에 수출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의 장점은 바로 잡은 싱싱한 하모를 회로 먹을 수 있다는 점. 하모회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콩고물에 비벼먹는 하모회 맛이 일품이다. 뼈째 씹이지 않고 부드러운 흰살이 입안에 맴돌아 단백했다.
 
* 가는 길
연도도 읍도와 마찬가지로 오가는 도선은 없다. 도산면 오륜리 마상촌 선착장에서 사선이나 임용문님의 배편을 이용하면 된다. 단 조건은 민박할 경우만 임용문님의 배를 이용할 수 있다.
- 마상촌 선착장(대도호선착장): 경남 통영시 도산면 도산일주로 342-35

* 잠잘 곳
- 임용문님이 운영하는 민박이 유일하다. 집 주변에 꽃이 지천이라 화원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낚시나 갯벌 체험도 가능하다.
- 통영구가네펜션: 통영에서 하룻밤을 보내고자 한다면, 광도면 죽림 신도시와 가까운 펜션을 추천한다. 전 객실이 바다 뷰를 자랑하는 곳으로 통나무집이 멋스럽다. 캠프파이어가 가능해 밤바다와 7080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젊음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이자 조용하고 오붓한 느낌은 가족끼리 즐길 수 있는 숙소로 손색이 없다.
주소: 통영시 광도면 덕포로 237

* 먹거리
- 하모회: 연도 부근 통영과 고성에서 여름철 보양식 갯장어인 하모회를 맛볼 수 있다.
- 바지락국: 연도에서 캔 바지락으로 시원하게 바지락 지리를 맛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선박운행 및 연도 탐방에 동행 해주신 장종철(해양구조경남서부협회장)과 김태정(해양특수구조대장), 구학성(가구를 만드는 사람들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태그:#통영, #통영섬, #연도, #통영구가네펜션, #섬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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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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