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기승전 노브라 그냥 설꼭지.'

지난 6월 21일 첫 방송 된 JTBC2 <악플의 밤> MC를 맡은 설리가 직접 읽은 자신을 향한 '악플'이다. 설리는 방송 내내 자신을 둘러싼 루머와 모욕적인 악플에 대해 과거일 뿐이라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다른 MC들 역시 대체로 당당하게 악플과 마주했다. 하지만 뭔가 찜찜하다. 그들은 왜 '지나쳐도 되는' 악플을 주제로 방송까지 하는 걸까? 
  
몇 주 전부터 온라인상에서 떠들썩했던 프로그램 '악플의 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제작진은 스타들이 악플에 주저앉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대응하며 올바른 댓글 문화를 만들고자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했다. 그런 의도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악플의 밤은 '오히려 악플을 미화하고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6월 21일 JTBC2 ‘악플의 밤’이 첫 방송됐다. MC 설리는 ‘기승전 노브라 그냥 설꼭지’라는 자신을 향한 악플을 직접 읽었다.
 지난 6월 21일 JTBC2 ‘악플의 밤’이 첫 방송됐다. MC 설리는 ‘기승전 노브라 그냥 설꼭지’라는 자신을 향한 악플을 직접 읽었다.
ⓒ 악플의 밤 방송 캡처

관련사진보기

 
'착한' 주제 의식에 가려진 '나쁜' 기획의도

첫 회는 MC 특집이었다. 신동엽∙김숙∙김종민·설리는 자신을 비난하는 온라인 댓글을 읽고 제 생각을 밝혔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방송의 '주제 의식'은 명확했다. 스타를 향한 비판은 허용하지만 무분별한 비난은 없애자. 온라인에서만 볼 수 있던 눈살 찌푸리게 하는 악플을 피해 당사자가 직접 진위를 가리는 게 이 방송의 핵심 포인트다.

그렇다면 악플의 밤의 기획 의도는 무엇일까? 건전한 댓글 문화를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도 있겠지만 더 솔직하게 말하면 당연히 '높은 시청률'일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으로 악플을 소재로 이용했고 악플 당사자인 스타들을 무대에 세웠다. 방송에서 설리는 자신들이 앞으로 다룰 악플이 어떤 조건 아래 있는 것인지 설명한다. '기분은 나쁘지만 인정은 가능한 악플' 또는 '고소는 애매한데 한마디는 하고 싶은 악플'이 그것이다. 방송에서 나오듯 악플은 대체로 재미있다. 법정 제재는 피하면서도 선정적이고 과격하기 때문이다. 
 
 '악플의 밤’ 기획의도는 건전한 댓글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지만, 더 솔직하게는 높은 시청률이다. 시청률 제조기라 불리는 김숙이 제작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악플의 밤’ 기획의도는 건전한 댓글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지만, 더 솔직하게는 높은 시청률이다. 시청률 제조기라 불리는 김숙이 제작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 JTBC2

관련사진보기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공격성'을 언급했다. 이런 공격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익명성을 보장한 가상 공간의 악플이다. 방송은 관음적이고 공격적인 대중의 욕망을 교묘히 투영해 시청률 상승을 노린다. 시청률이 방송국 경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방법은 정직하고 선해야 한다. 그것이 공익을 대변하는 미디어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다.  

'기획'과 '연출' 모두 나쁘지는 않다

악플을 처음 보면 재미있듯이 '악플의 밤'도 처음 보는 포맷이라 신선하고 유쾌하다. 좋은 기획의 조건과 그것을 구현하는 연출이 잘 결합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에 적힌 프로그램 탄생 배경처럼 SNS가 발달하고 각종 의견이 댓글로 쏟아지는 현시점에 악플과 소통을 시도하는 건 참신하다. KBS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이나 '오늘밤 김제동'과 같이 시사 프로그램이 댓글을 활용해 시청자와 소통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처음이다. 약간만 비틀면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악플의 밤'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출자 역할은 중요하다. 수많은 제작진과 상의하며 처음에 만든 기획안대로 프로그램에 녹여내야 하기 때문이다. 무대 장치부터 작은 소품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검토해야 하며, 카메라앵글∙조명∙출연자 의상까지 어느 것 하나 놓쳐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출하는 것이 바람직한 연출일까?

시청자가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게 스토리텔링을 전개해야 한다. 주어진 이슈에 관해 시청자의 관심을 끊임없이 유발해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만들어야 한다. 낯설지만 새로운 장치도 활용해야 한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치를 통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어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활용한 장치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도록 잘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

'악플의 밤'은 어떤가? 대체로 연출이 잘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기획 의도를 살리기 위한 장치들이 프레임 곳곳에 숨어 있다. 배경을 보자. 검은 천정에 목욕탕 느낌의 붉은 원형 세트장, 그리고 그 안에 진짜 물이 흐르고 주위에는 선인장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의도하는 바가 뭘까? '목욕탕', 이곳은 보통 개인의 가장 은밀한 공간이자 동행한 사람과 비밀 얘기를 주고받기도 하는 곳이다. 과거 신라 시대 때는 목욕이 '죄를 씻는 행위'라고 인식돼 형벌을 대신하기도 했다. '선인장'은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공격적인 사물이다.
 
 목욕탕 세트장, 선인장 등 기획의도를 잘 살리려는 제작진의 연출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목욕탕 세트장, 선인장 등 기획의도를 잘 살리려는 제작진의 연출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 JTBC2

관련사진보기

 
이 둘을 결합하면 제작진의 기획 의도가 보인다. 온통 주위를 둘러싼 공격적인 악플 사이에 놓인 스타가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얘기를 털어놓고 시원한 마음으로 잊자는 것이다. 여기에 '검은 천장'은 밤 분위기를 연출하며 출연자들을 편안하게 만들고, '붉은 목욕탕'은 마음속 깊은 얘기를 분출하게 자극한다. 그렇게 무대 장치는 출연자 심리를 지배하고, 출연자는 제작진 의도에 한층 가까워진다. 

출연자들은 시청자 앞에 자신을 아프게 만드는 판도라 상자를 열어젖힌다. 시청자는 그런 장면에 재미를 느끼거나 감동을 한다. 신동엽이 자신을 '늙은 여우'라고 한 악플에 "'늙은'이 기분 나쁜지 '여우'가 기분 나쁜지 생각을 하게 되네요"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보고 웃게 되고, 설리가 당당하게 자신의 '노브라' 가치관을 얘기하는 모습에 감동한다. 여기까지는 성공이다. 제작진 의도대로 출연자들이 자기 허물을 그대로 벗어 던지며 시청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악플'은 웃고 넘길 게 아니다

이 포맷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악플은 '사이버 범죄'의 일종이다. 인터넷상에서 남에게 비방∙험담을 일삼는 언어폭력이다. 이는 근거를 갖춘 부정적 평가와는 구별된다. 악플 때문에 고통받는 이는 수없이 많다. 가장 큰 사건은 2008년 배우 최진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다. 그 후 '최진실법'이라 불리는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등이 만들어졌지만, 악플은 사라지지 않고 더 활개를 치고 있다. '스타에게 악플은 피할 수 없으니 부딪쳐라'거나 '악플 중에도 인정할 건 있다'는 식의 제작진 의도가 옳은 방향일까?

첫 방송에서 네 명의 MC는 당당했다. 신동엽은 자신을 향한 공격에 "특정 세대나 계층을 비하하는 욕설은 없어져야 한다"면서도 나이 차이 때문에 새로운 재미가 생긴다는 긍정적 답변을 내놓았다. 김숙∙김종민 역시 나름의 근거 있는 악플은 인정했고, 무작정 들어오는 공격성 악플은 무시했다. 악플의 중심에 있었던 설리 역시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마약 논란'이나 '관종(관심에 목매는 사람) 논란'에는 "범법행위는 절대로 저지르지 않는다"며 "'대관종'이니까 관심 좀 달라"고 대응했다. 

많은 스타가 MC들과 똑같은 반응으로 악플과 마주할까? 악플에 시달리는 사람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도 있다. 악플을 남기는 '악플러'는 사라질까? 오히려 법정 제재에서 벗어나 자기 행위를 합리화하며 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말들을 내뱉는 이들이 생기지 않을까? 
 
 설리는 악플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지만 스타가 악플을 용서할 의무는 없다.
 설리는 악플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지만 스타가 악플을 용서할 의무는 없다.
ⓒ JTBC2

관련사진보기

 
'미움은 관심의 일종이다.'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가 저서 <미움받을 용기>에서 말한 주요 내용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열에 하나는 나를 사랑하고, 두셋은 관심만 있고, 일곱은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악플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주는 메시지일 뿐이다. 악플은 피해자가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한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관심으로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옳은 방식일까?

이 말이 통하려면 악플을 '악플'이라고 규정할 게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 '비판'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악플은 엄연한 범죄행위다. 우리 대부분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예수처럼 살 수 없다. 그런 삶을 개인이 선택할 수는 있지만 누구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악플 피해자에게도 그렇다. 예수는 자신에게 십자가를 지게 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감당했지만 스타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악플을 용서할 의무는 없다. 

'틀딱' '설꼭지' 같은 혐오 또는 성희롱이나, '마약을 했다'는 허위사실 유포는 경고로 끝낼 사안이 아니며, 예능에서 웃고 넘어갈 사안도 아니다. '예능은 예능으로 끝내야지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제작진이 가졌다면  또는 '이런 예능으로 댓글 문화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안일한 자만심이다.

진짜 본심이 담긴 기획 의도라 할 수 있는 시청률은 높아질지 모른다. 하지만 악플은 더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선인장이 될 것이다. 그것은 '악플의 밤'이 내민 선량한 기획 의도와는 반대로 가는 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