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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13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에도 백제 왕비의 목걸이가 간직한 아름다움은 현대 그 어떤 디자인의 목걸이보다 아름다웠다. 무령왕 왕관에 달린 금제 관식의 섬세함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무령왕 금제관식과 무령왕비 금제 구절목걸이는 각각 국보 154호 국보 158호로 등재되어 있다. 

눈앞에서 마주한 1300년 전 백제의 유물은 모조품이 아닌 진품이었다. 진품이 전하는 감동은 몇몇 박물관에서 마주하던 모조품의 감흥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령왕·무령왕비의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마주한 백제 문화의 정수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국보 154호인 금제 관식
 국보 154호인 금제 관식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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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58호인 금제구절경식
 국보 제158호인 금제구절경식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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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 역사유적지 팸투어'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

백제역사유적지구 홍보를 위한 관광객 유치와 관광 상품 개발을 통한 백제역사유적지구 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3차 백제문화, 역사유적지 팸투어'(이하 팸투어)가 열렸다.

팸투어는 백제세계유산센터가 주최하고 전라북도관광협회가 주관해 11일부터 12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번 행사에는 <인터넷언론인연대> 소속 매체 기자와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가했다.

팸투어 참가자들은 첫째 날인 11일에 익산 왕궁면 왕궁리 유적지, 미륵사지, 익산보석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정림사지, 궁남지 등을 찾았다. 둘째 날인 12일에는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발굴 관람을 비롯해 공주 공산성 국립공주박물관 등을 둘러보며 백제문화의 정수를 느꼈다.

참가들은 가장 먼저 익산 미륵사지를 찾았다. 국보 11호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우아한 자태를 눈앞에서 마주했다. 예전 학력고사 국사시험에서 4지 선다형의 문제로 곧잘 출제되던 '목탑양식의 백제 시대의 석탑'이 바로 '미륵사지 석탑'이기도 했다.
 
국보 11호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보 11호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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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무왕(600~641년 재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구조를 보여주는 사원 양식으로 단아하고 절제미가 이채로웠다.

이어 방문한 곳은 마찬가지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 무왕기에 조성된 왕궁리 유적지였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백제의 화장실 문화였다. 또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의 찡그린 표정은 절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익살맞았다.
 
왕궁리 유적을 복원하면서 만들어 놓은 모형
 왕궁리 유적을 복원하면서 만들어 놓은 모형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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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보석박물관에서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는 보석에 잠시나마 눈으로 호사를 누린 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정림사지와 백제 왕궁의 위엄을 재현해 놓은 백제문화단지를 방문했다.

백제 왕궁의 위엄은 '천정전(天政殿)'으로 대표되고 있었다. 이곳은 외국 사신의 접견이나 신년하례, 왕실의 행사의식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 시에만 사용하던 공간으로, 연중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이었다.

건물은 국가의 가장 큰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높은 기단 위에 외부는 2층 규모이며, 내부는 통층으로 건축해 건물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웅장함과 함께 엄숙성을 강조해 왕의 권위를 느낄 수 있었다.

부여군 이영희 문화해설사는 "천정전과 천정대는 당시 왕정에서 사용하던 건물로 상징적 의미는 있는 신성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부소산성 발굴 현장
 부소산성 발굴 현장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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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투어 이틀째인 12일, 참가자들은 백제시대 계획도시였던 부여 관북리 유적과 백제 왕실의 뒤뜰이었던 부소산성의 발굴 현장을 관람했다. 이어 공주 공산성과 함께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백제의 정수를 맛보았다.

먼저 찾은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에서는 백제인이 세운 계획도시의 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 전(田)자형 도로망은 현대 그 어느 계획도시보다 치밀하게 설계된 듯했다.

이날 해설을 맡은 백제세계유산센터 이동주 센터장은 "십자형 교차로에 위치한 도로 가장자리에는 마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게끔 하는 돌이 세워져 있는 등 과학적 설계가 돋보였다"고 말했다.
 
공산성
 공산성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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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인 공산성(公山城)은 웅진 시기 방어성이자 왕성이었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서·남쪽으로는 가파른 언덕 위 성벽을 쌓아 올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요새처럼 보였다.

실제 공산성은 문주왕이 자신의 재위 원년(475년)에 이곳으로 도읍을 옮긴 후 성왕 16년(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64년간 고구려에 맞서 왕도를 지켜냈다. 공산성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 선조·인조 때 현재와 같은 석성으로 개축됐다.

금강을 따라 가파른 등선 위에 쌓인 2.6km 길이의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1500여 년 전 쳐들어올 고구려 기마병에 대비하고 있는 백제 병사의 눈초리가 느껴졌다.
    
국립공주박물관 소장품인 글자가 새겨진 은고리(多利作 ‘銘銀製釧’)
 국립공주박물관 소장품인 글자가 새겨진 은고리(多利作 ‘銘銀製釧’)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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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국립공주박물관이다. 이곳에서 마주한 것은 서동 설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백제 무령왕의 유물이었다.

1971년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에서는 백제 시대의 유물 4600여 점이 쏟아졌다. 이 중 17점이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출토된 유물 가운데 왕과 왕비의 각종 장식품은 수준 높은 백제 공예기술을 자랑했다.

특히 지석을 통해 무령왕의 생몰연대가 밝혀지면서 백제 고고학 연구에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이날 마주한 무령왕릉 출토 금제관식의 섬세함은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연꽃이 새겨진 기왓장에서는 극락왕생을 바라는 간절한 백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1400년 전 무령왕 관의 표면을 덮고 있는 옻칠은 여전히 요요로운 먹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엄숙하게 치러졌을 무령왕 장례식의 슬픔 또한 전해져 오는 듯했다.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목관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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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에서 나온 지묘석.
 무령왕릉에서 나온 지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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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인의 넉넉함을 읽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이곳은 총 8개의 유적을 포함한 연속유산으로 공주시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군 4곳(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시 2곳(왕궁리 유적, 미륵사지)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유적은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삼국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 교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유네스코는 등재 당시 백제의 내세관·종교·건축기술·예술미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백제 역사와 문화의 특출한 증거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백제세계유산센터 이동주 센터장은 "이들 유적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으나 각 유적에 대한 가치홍보와 연계 방문을 통하여 공주, 부여, 익산이 매력적인 백제문화권 관광지임을 알리고 이로 인해 방문객 증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1박 2일 일정의 팸투어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백제인의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넉넉한 일정을 가지고 백제의 숨결을 맛보고 싶다. 1박 2일 일정은 짧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친지 사흘이 지났지만 당시 느꼈던 감동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백제 무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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