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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에 대해 생각한다.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조금 서글퍼진다. 다들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지만, 노동의 대가가 모두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건 아니다. 거대한 기계를 굴러가게 하는 수많은 톱니바퀴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당장 내가 없다고 기계가 굴러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돈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생계를 위해서. 한마디로 굶어 죽지 않으려고. 

그러니 직장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이라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치열한 삶의 연속이다. 100세 시대라고, 세상 좋아졌다고 하지만 100세까지 살 생각을 하면 또 한숨부터 나온다. 50, 60대 되면 은퇴 후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게 현실인데, 대체 뭘 해서 먹고 사나.
 
<최소한의 밥벌이>, 곤도 고타로 지음, 권일영 옮김, 우석훈 해제, 하완 그림, 쌤앤파커스
 <최소한의 밥벌이>, 곤도 고타로 지음, 권일영 옮김, 우석훈 해제, 하완 그림, 쌤앤파커스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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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다가 희한한 실험을 시도하게 된 괴짜가 한 명 있다. <최소한의 밥벌이>의 저자 곤도 고타로. 그는 32년 차 아사히 신문 기자이다. 3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신문사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고 어울리는 일은 영 어색한, 혼자 일하고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

시골에선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었던 도시 남자인 그가 화려한 도시 생활을 접고 지도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시골마을로 자진해서 들어간다. 아침에는 농사 짓고 오후에는 글 쓰는 '얼터너티브 농부'가 되겠단다. 기골은 장대하지만 벌레가 무서워 맨손으로는 지렁이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그가 과연 시골에서 그것도 깡촌에서, 농사 중에서도 제일 힘들다는 논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번듯한 직장을 두고 그는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했을까? 저자는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블랙기업(법에 어긋나는 비합리적 노동을 직원에게 강요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업)의 행태에, 돈이면 다 되는 자본주의에 신물이 났다.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들이 단숨에 분노로 폭발한 것은 야나이 다시의 신문 인터뷰를 읽었을 때였다.
 
패션업계의 강자 유니클로의 총수이자 패스트 리테일링(유니클로의 지주회사) 회장 겸 사장이 '세계 동일 임금'이란 것을 주장했다. 유니클로는 유럽과 중국, 인도 등지에도 점포를 낸 글로벌 기업이다. 그런 유니클로가 일본에 있는 매장의 점장 급여를 중국이나 인도 같은 수준으로 만드는 '글로벌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 일하건 같은 수익을 올리는 사원은 임금도 같아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에도 우수한 사원이 있다. 그런데 같은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나라가 다르다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는 일은 글로벌하게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다. 앞으로는 억대 연봉과 백만 엔대 연봉으로 나뉘고 중간층은 줄어들 것이다. 일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개발도상국 직원의 임금과 같아지기 때문에 연봉이 백만 엔 쪽으로 기울어지는 일은 어쩔 수 없다." (50~51쪽)

이게 무슨 개소린가. '세계 동일 임금'이라니. 나라마다 통화가치와 물가가 저마다 다른데, 그걸 무시하고 임금만 동일하게 한다고 그것이 세계화인가?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는 소리다. 그는 인간을 자기가 소유한 기계의 부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말 안 듣고 말썽 피우는 부품은 당장 새것으로 교체하면 그만인 존재.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수장으로 둔 기업의 수준이란, 더 볼 것도 없다.

이런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가 임계점에 이르러 그는 과감하게 이 지옥을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는 것'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판을 옮기는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남도 바꿀 수 없으니, 나를 바꿀 수밖에 없다. 그 길로 부장을 찾아가 자기를 최대한 먼 시골에 있는 1인 지국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한다. '얼터너티브 농부'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니까 '대안적 차원의 농부'라고나 할까. 그의 계획은 이렇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벼농사를 짓는다. 나머지 시간은 글쓰기에 몰두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글쟁이로 사는 것. 하고 싶은 일,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이 일에 몰두하려면 최소한의 식량이 필요하다. 벼농사를 지으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 흰쌀밥을 이제 내 손으로 마련하겠다. 될 수 있으면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생활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글쓰기. 그게 바로 얼터너티브 농부다.' (69쪽)

농사 지을 땅을 구하는 것부터, 필요한 도구들을 구하는 일, 무엇보다 농사의 'ㄴ'도 모르는 저자에게 농사일을 가르쳐 줄 스승님을 만나 농사를 배우면서, 시골의 삶이란 도시의 삶과 근본적으로 다름을 느낀다.

일단 돈보다는 인맥이다. 농사 지을 땅도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구할 수 있었고, 필요한 도구들도 대부분은 스승님에게 빌린 것이고, 운 좋게 만난 스승님도 돈을 받고 농사일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공짜로 가르쳐주신다. 어차피 시골에는 더 이상 농사를 배우겠다는 젊은이들도 없는 상황이라, 배우겠다는데 가르쳐주지 않을 이유도 딱히 없는 것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삭막한 도시와 다르게 사람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 점이 또 붙임성 없는 저자를 곤란하게 하기도 한다. 농사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에 물을 대는 일부터, 농약을 치는 일, 수확할 시기를 정하는 일까지 주변의 농가들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주위 사람들과 대략 비슷하게'. 이게 농촌 부락의 황금률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 아닌가. (200쪽)

"제가 협조성이 없거든요. 그러니 이해해주세요."라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무슨 걱정이겠는가. 논농사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노력해 꾸려나가는 일이다. 사람을 사람에게로 이끄는 최고의 '몸 쓰는 일'. 인간관계야말로 농사의 시작이자 끝이다. (203쪽)

농사를 지으려면 인간관계가 필수임을 깨달은 저자는 그 뒤로 이웃 농가의 사람들에게 넉살 좋게 인사도 하고, 도움받은 이웃들에게 주전부리를 선물하기도 하며 점점 넉살 좋은 시골 사람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아침에는 논에서 논일을 하고, 오후에는 글을 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초보 농사꾼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시련과 우스꽝스러운 일화를 쉼 없이 쏟아낸다. 동시에 자신이 농사짓는 이유, 자본주의 사회의 불합리성, 세계적 질서의 위험 등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한참 낄낄대며 웃다가도 정색하고 진지하게 읽게 되는 책이다.

드디어 수확의 계절. 그래서 수확은 좀 했는지? 결과적으로는 성공이다. 그것도 대성공. 본래 계획은 1년 동안 남자 혼자 먹을 양의 쌀 60킬로그램을 수확하는 것이었는데, 계획보다 1.5배가량 많은 85킬로그램을 수확한 것이다! 거기다가 농사를 지으며 신문사에 연재한 기사의 반응도 좋고, 전보다 원고 청탁도 더 많아졌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 따르면 저자는 2년째 계속 벼농사를 짓고 있단다. 작년보다 더 과감해져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모든 과정을 본인의 손과 발로 해내고 있다. 나아가 반찬거리도 직접 마련할까 생각 중이라고.

이사하야 시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낚시 천국이다. 또 그 지역은 멧돼지가 특히 많은 지역이기도 하니 여차하면 잡아먹을 생각으로 수렵 면허도 따두었다고 한다. 당분간 그의 '얼터너티브 농부 생활'은 계속될 것 같다.

생전 요리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은퇴 후에 너도 나도 치킨집을 차리는 걸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은퇴 후를 대비해 '돈이 될 만한 취미'를 찾아 헤매야 하는 지경이니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처럼 살짝 판을 옮겨 보는 것은 어떨까. 적어도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인생, 끊임없이 착취 당하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러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내가 그렇게 쉽게 세상으로부터 내쫓길 줄 아는가? 이 세상을 살아갈 빈틈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말겠다. 자아를 탐구하겠다느니, 뭐 그런 거창한 생각은 없다. 영원한 틈새 찾기. 나는 '구르는 돌'이다. 그래서 즐겁다. (350쪽)

이런 시대를 살아날 아이디어가 계속해서 떠오른다. 본업인 글쓰기에도 탄력이 붙었다. 이런 시골에 와 있는데도 작년보다 편집자들의 원고 청탁이 늘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틀림없이 내가 즐거워 보이기 때문이다. 활기 있게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게 보이니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352쪽)

최소한의 밥벌이 - 하루 한 시간이면 충분한

곤도 고타로 (지은이), 하완 (그림), 권일영 (옮긴이), 우석훈 (해제), 쌤앤파커스(2019)


태그:#최소한의밥벌이, #얼터너티브농부, #곤도고타로,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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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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