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여곡절 끝에 국회가 정상화됐다고는 하지만, 추경안 처리 불발부터 시작해 정경두 국방부장관 해임건의안 논쟁 등 여전히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국회를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 중에 국회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경찰 조사 불응도 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등이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한국당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실타래처럼 얽힌 이 사안을 한 올 한 올 풀어서 설명한다. - 기자 말
 
7월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경찰서. 취재진이 자유한국당 엄용수·여상규·정갑윤·이양수 의원의 출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이들은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7월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경찰서. 취재진이 자유한국당 엄용수·여상규·정갑윤·이양수 의원의 출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이들은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수사는 다양한 형식으로 시작된다. 고소·고발에 의해서 시작되기도 하고, 첩보에 의해서 이뤄지기도 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수사기관 스스로 사건을 인지하고 수사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기 전, '내사(內査)'라는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를 알아보는 단계다. 내사를 거쳐 혐의가 확정되면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한다.

내사 중이던 사건은 피의자를 입건하면서 수사로 전환된다. 수사로 전환된 사건은 피의자 소환으로 시작된다.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소환해 내사로 확보한 자료를 근거로 혐의 사실을 조사하게 된다. 즉,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를 부르는 것(소환)은 피의자가 입건됐다는 것과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피의자 소환장'은 그 자체로 상당한 공포감을 일으키곤 한다.

보통 피의자들은 '소환장'을 받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공포 또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간혹 피의자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5월과 2016년, 검찰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조아무개 전 한국당 의원과 이아무개 롯데그룹 부회장을 사례에서 '소환장'이 얼마나 두려운 대상인지 알 수 있다. 전직 국회의원과 대기업 임원에게도 이럴 정도니 일반 국민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부담감으로 다가올 법하다.

그렇게 두렵다면 "소환을 거부하면 될 것 아니냐?"라는 반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고인 소환'을 거부하는 것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피의자에게 소환장을 보내는 것은 '피의자 스스로 출석하라는 것'을 뜻한다. 즉,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피의자 소환 후 구속수사로 전환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최소한 그 시점에서는 '피의자를 구속할 의사가 없다'는 표현이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2... 소환 불응은 곧 '체포의 위험'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 과정에서 여야가 충돌했을 때 상대 당 의원·당직자 등을 폭행한 혐의(공동폭행)로 자유한국당에 의해 고발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왼쪽)과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피고발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는 모습.
▲ 경찰 출석하는 백혜련-윤소하 의원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 과정에서 여야가 충돌했을 때 상대 당 의원·당직자 등을 폭행한 혐의(공동폭행)로 자유한국당에 의해 고발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왼쪽)과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피고발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소환에 불응하면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강제소환할 수밖에 없게 된다.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출석해 조사받길 거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2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요구에 응하지 아니하거나 응하지 아니할 우려가 있는 때에는 검사는 관할 지방법원판사에게 청구하여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범죄혐의가 명확함에도 출석요구에 불응하면 체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스스로 걸어 들어와서 조사받을래? 끌려와서 조사받을래?'다. 소환장을 받은 피의자에겐 출석에 응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불응하면 체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이처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피의자 소환장'이 지금 십여 명의 한국당 의원 앞에선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지난 22일 오전 11시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패스트트랙 수사와 관련해 지금까지 채증 영상 자료 분석된 18명에 출석 요구를 했고, 그중에서 4명이 조사를 받았다"라며 "한 분은 조만간에 받겠다고 의사 표시를 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나머지 13명은 아직까지 출석 일자가 잡히지 않았다"라면서 출석 의사를 밝히지 않고 출석 일자도 정하지 않은 13명은 "모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라고 밝혔다.

이미 널리 알려졌다시피 한국당 의원들은 지난 4월 25일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의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 참석을 막기 위해 채 의원을 의원실에 가뒀다. 이에 더해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저지한다면서 국회사무처를 무단 점거해 법안 접수를 방해하기도 했다. 또 그들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 사건 때문에 국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고소·고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한국당 의원 13명, 민주당 의원 4명, 그리고 정의당 의원 1명에 대해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 민주당·정의당 소속 의원은 모두 경찰 소환에 협조한 반면, 유독 한국당 의원 13명만 소환에 불응했다.

한국당의 소환불응은 체포사유
 
지난 4월 25일 오후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보임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사진 왼쪽)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집무실에 사실상 '감금'돼 있는 모습. 자유한국당 의원 10여명은 채 의원의 출입을 막기 위해 집무실 입구를 소파로 겹겹이 막아 놓았다. 채 의원 집무실에는 자유한국당 송언석, 정갑윤, 민경욱, 이양수, 박성중, 김규환, 여상규, 백승주, 김정재 의원 등이 있다.
▲ 채이배 의원 "감금" 한 자유한국당 의원들 지난 4월 25일 오후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보임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사진 왼쪽)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집무실에 사실상 "감금"돼 있는 모습. 자유한국당 의원 10여명은 채 의원의 출입을 막기 위해 집무실 입구를 소파로 겹겹이 막아 놓았다. 채 의원 집무실에는 자유한국당 송언석, 정갑윤, 민경욱, 이양수, 박성중, 김규환, 여상규, 백승주, 김정재 의원 등이 있다.
ⓒ 채이배 의원실 제공

관련사진보기

 
'채이배 의원 감금 사건'은 언론을 통해 전 국민에 중계됐다. 그밖에도 각 정당 관계자들에 의해 촬영된 채증자료 역시 충분하다. 한국당은 혐의를 부인하지만, 채이배 의원에 대한 감금과 각종 국회법 위반 정황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그런데도 경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이는 "범죄혐의가 명확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라는 체포사유에 해당한다. 하지만 경찰은 체포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소환을 요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소환 대상이 일반 국민이었다면 어땠을까? 대부분 국민들은 경찰의 소환에 불응할 용기조차 낼 수 없겠지만, 소환에 몇 차례 응하지 않는다면 바로 체포영장이 청구됐을 것이다. 가까운 예가 있다. 검찰은 지난 5월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협박했던 유튜버 김상진씨가 소환에 불응하자 곧바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소환에 불응하면서도 체포 걱정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은 일반 국민에 비해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 의원들이 경찰의 소환에 불응하는 동안,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소환 자체의 부당함을 선전했다. 그는 지난 16일 '패스트트랙 대치'로 인한 경찰 조사를 언급하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발언을 인용했다. 그리고는 "아무리 협박하고 짓밟아도 새벽이 올 때까지 한국당은 투쟁할 것"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자택연금 당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단식투쟁을 하며 했던 말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정치군인들이 민주인사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언론을 강제로 통폐합하는 동시에 비판적인 기자와 교수를 해직시켰던 5공화국과 비교한 것이다.

문재인을 전두환에 빗댄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 원내대책회의 주재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는 훗날 국민들이 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5공화국 시절에는 체포영장도 필요 없이 정치인들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다는 사실이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소환에 전면 불응하는 한국당 의원들에게 체포영장도 청구하지 못하는 오늘날 경찰의 어떤 모습에서 5공화국 독재를 연상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가택연금에서 벗어나고자 목숨 건 단식을 하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고 말했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아무런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공식 회의석상에서 자신의 말을 인용한 나경원 원내대표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오히려 한국의 민주주의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여기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은 경기도 부천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당, #소환 불응, #채이배, #패스트트랙
댓글2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