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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해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나란히 앉아 있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해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나란히 앉아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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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만 3년이 되어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의 문이 열린 것이 2016년 10월이었고 이 문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어졌으니 이제 곧 3년이다. 사건이 드러나는 초반기에는 세상 모든 이의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진상이 밝혀지고 사법적 절차인 형사재판 종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는 만큼 기억은 희미해진다.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는 흐릿해지고, 그만큼 '나쁜 놈'들이 슬금슬금 활보한다. 이것을 막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잊지 않도록 기록하고, 이 기록이 널리 퍼지도록 하는 것이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배웠던 제1원칙이다. 기록하는 자가 이긴다.

참여연대에서 권력 감시 운동을 담당하면서 배웠던 또 한 가지가 있다. '네이밍 앤 세이밍(Naming & Shaming)'. 잘못된 행위를 한 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 그들이 부끄러워하게 하라. 두루뭉술하게 검찰이 잘못했다거나 법원이 잘못했다거나 정부가 잘못했다거나 이런 식으로 그치지 말라는 것이다.

간간이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판결 선고 소식이 언론을 통해서 들려온다. 며칠 전에도 친박실세였던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 시절 국정원 자금을 상납받은 사건의 대법원판결 소식이 나왔다. 하지만 짧은 단신으로 처리된다.

다룰 게 너무 많은 언론매체에서 사건이 터진 지 3년이 지난 후 지금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보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는 한 번 세밀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최소한 재판에서 확인된 사실들만이라도.

기록하고자 한 것은 '자초지종'이고, 범죄와 부패의 장면 하나하나이다. 그래서 길어질 수밖에 없고 자칫 읽기에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었구나. 이런 짓은 역시나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

잊으면 안 될 권력자들의 범죄와 부패

연재방식으로 기록하려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들은 기본적으로 이렇다.

우선 박근혜의 국정원 자금 35억 원 상납사건이다. 최경환과 조윤선, 신동철, 안봉근의 국정원 자금 상납사건도 다룰 것이다. 친박계 공천을 위해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벌인 '청와대의 2016년 총선 공천 개입과 여론조사비 국정원 대납사건'도 다룰 것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주도하고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벌인 '청와대의 보수우익 시민단체 자금지원 화이트리스트 사건'도 다루고, 청와대의 보수단체 시위 및 정치개입 사주 사건도 다룬다. 이 사건들과 대척점에 있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도 빠뜨릴 수 없다.

최순실게이트의 다양한 사건들은 물론이다. 재벌그룹에 출연금을 강요하여 세운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 설립사건, 최순실이 장악한 각종 재단과 단체와의 사업계약 강요사건 등이다. 물론 삼성그룹과 연결된 최순실의 딸 정유라 승마지원 사건도 다룬다. 그 외에도 기억해야 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부패사건을 계속 다룰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의 자초지종을 꼼꼼히 기록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은 작년 봄이었다. 그리고 기록의 방법으로는 판결문을 사용하기로 했다.

어떤 사건을 재구성할 때 매우 유용한 자료는 판결문이다. 물론 형사 재판 판결문이 사건의 실체를 전부 보여주지는 못한다. 재판 자체가 재판의 결론을 도출하는데 필요한만큼만 다루기 때문이다. 또 과거에 일어난 일을 다시 구성하는 것은 인간 인식능력의 한계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판결문은 사건의 진행 과정을 파악하는데 유용한 자료이다. 증거자료와 양측의 공방을 거쳐 사실로 확인되거나, 최소한 사실이라고 믿어도 될 만큼 의심의 여지가 사라진 또는 최소화된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사건의 실체를 많이 알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실과 의혹이 구분되지 않는다. 집단지성의 상징인 위키피디아 같은 인터넷 자료도 비슷한 단점이 있다. 이런 단점을 판결문에서는 극복할 수 있다.

비실명 처리된 판결문에서 진짜 사람찾기
 

작년 여름부터 판결문들을 집중적으로 모았다.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판결문은 모두 비실명화 처리된 글이다. 피고인 박근혜는 A로 표시되고 '대통령'이라는 직책명도 'B'로 표시되는 방식이다. '삼성그룹'은 C, '삼성전자'는 D로 표시된다. 어떤 사건의 경우에는 비실명 처리해야 하는 것이 넘쳐나서 A에서 시작해 Z로도 모자라, AA, AB, AC... 이런 식으로 이어지다 DD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판결문은 웬만한 사람들이 보아도 대체 누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오마이뉴스>에서 자체적으로 국정농단 사건 판결문 자료실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일반인들은 보아도 알 수 없는 자료였다.

각종 자료를 교차 확인하며 비실명화된 것들을 실명화하면서, 판결문의 '범죄사실' 항목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검사와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사의 '판단' 항목도 살펴보았다. 그곳에서도 의외로 상세한 '행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간과하기 쉬운 게 판결문의 '무죄 부분' 항목이다. 법률적으로는 유죄가 아니어서 범죄행위는 아니지만 부패행위가 소상히 적혀 있는 곳이다(일반적으로 형사재판 판결문은 주문-범죄사실-증거요지-법령적용-판단-양형이유-무죄부분으로 구성된다).

물론 1심 판결문만 보아서는 안 된다. 같은 사건이라도 2심에 가면 새로운 사실이 나오기도 하고,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록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판결문을 실명화하여 누구나 볼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음에 맡기려고 한다.

첫 번째로 다룰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장에게 돈을 바치라고 한 이른바 '국정원 자금 청와대 상납 사건'이 될 것이다. 이어서 최경환의 국정원 자금 상납사건이다. 마침 최경환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판결이 얼마 전 선고된 바 있다. 이렇게 1주일에 한 사건 정도를 기준으로 소개하다 보면,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열린 10월에 이를 것이다. 뜨거운 마음으로 2016년 10월과 그 후 몇 달을 보냈던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지난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인용되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자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박근혜 구속” 등을 요구하며 자축하고 있다.
▲ 뜨거웠던 촛불 지난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인용되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자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박근혜 구속” 등을 요구하며 자축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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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주일에 한 번꼴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사건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들을 다룹니다. 각 사건의 핵심내용 소개에 그치지 않고 사건 관계자들의 범죄 또는 부패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권력부패를 기억하는데 주춧돌이 되고자 합니다.


태그:#박근혜, #국정농단,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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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운동을 시작으로, 권력감시와 사법개혁, 반부패 운동, 정치개혁 운동을 경험하였습니다. 약 20년 시민운동 경험을 또 다른 곳에서 펼쳐보려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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